‘대동강맥주 축전’에 담긴 메시지는…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19 14:46
  • 호수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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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Insight] 北, 미국·유엔 대북제재 별로 효과 없다는 점 강조

 

북한이 평양 대동강변을 무대로 대규모 맥주축제를 연다. 7월26일 개막해 8월말까지 이어지는 행사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동강 부두 일대와 유람선 선상에서 관광을 즐기며 특유의 대동강맥주를 맛볼 수 있다는 게 북한의 선전내용이다.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축전 기간 맥주 맛보기 경기가 진행되며 손님들이 평양의 야경을 보며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대동강’호의 유람 봉사도 있게 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달러벌이도 하고 북한의 체제선전 기회도 갖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주도로 대동강변을 주축으로 고층빌딩과 아파트를 밀집시킨 뉴타운을 속속 건설해 왔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번 대동강맥주 축전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다. 지난해 8~9월 첫 행사 직후 북한이 드러낸 반응을 꼼꼼히 살펴보면 축전 개최 속에 숨겨진 메시지가 드러난다. 당시 북한은 “대동강맥주 축전이 대북 고립·압살 책동을 짓부수고 강국을 건설해 나가는 주민들의 생활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인민의 낙원, 사회주의 문명 강국을 보란 듯이 건설해 나가는 우리 인민의 행복하고 낙관에 넘친 생활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게 북한 논리다. 김정은의 핵 위협과 미사일 도발에 대응한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가 별로 효과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데 방점이 찍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16년 8월 개최된 1회 평양 대동강맥주 축전에서 열린 공연무대 © 사진=조선신보 연합

 

대동강맥주, 외부에 잘 알려진 北 상품

 

대동강맥주는 봉학·용성·금강맥주와 더불어 북한의 4대 맥주로 꼽히고 있고, 다른 맥주가 추종할 수 없을 만큼 월등한 맛을 자랑한다는 평가다. 황해도에서 생산된 보리와 양강도에서 생산된 호프, 대동강의 지하수로 만들어지는 이 맥주는 북한이 생산하는 상품 가운데 이례적으로 외부에까지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대동강맥주 축전’에 참석했던 톰 컬리 전 미국 AP통신 사장은 공장을 방문해 “대동강맥주는 세계의 다른 맥주와 견줄 만큼 훌륭하다. 우리는 많은 미국 사람들이 이 훌륭한 맥주 맛을 보게 될 기회를 가질 것을 희망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엔 2012년 이코노미스트지 서울 특파원인 다니엘 튜더가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기사를 게재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자존심이 상한 국내 맥주업계의 반발이 이어졌고, 실제 남북한 맥주 맛의 우열을 둘러싼 논란도 일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대동강맥주 공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기인 2002년 문을 열었다. 한 해 전 러시아 방문길에 나선 김정일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발티카맥주 공장을 돌아본 뒤 귀국해 “세계 최고급 맥주를 만들어라”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은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180년 전통의 영국 어셔즈 양조장을 인수한 뒤 공장 설비를 그대로 해체해 평양으로 옮겨 맥주 생산라인을 가동했다. 북한의 맥주 맛이 좋은 것으로 느껴지는 건 영국의 선진 제조공법과 생산설비를 그대로 활용하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대동강맥주 공장은 현재 7가지 종류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보리·호프와 함께 흰쌀이 주원료로 이용되고 있다는 게 북한 매체의 보도다. 대동강맥주 1번은 보리 길금(맥아(麥芽)의 북한어) 100%로 만들어진 전통적 맥주이고, 7번은 흑맥주로, 초콜릿 향과 부드러운 쓴맛이 특징이란 설명이다.

 

우수한 맛과 넓은 선택 폭 등으로 인해 북한에서 대동강맥주의 인기는 한껏 치솟고 있다. 특히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맥줏집에 긴 줄을 설 정도라고 한다. 평양을 중심으로 퇴근 후나 주말에 동료나 가족들과 맥줏집을 찾아 여가를 즐기는 계층이 생겨난 것도 한몫했다. 김정은 지시로 문을 연 문수물놀이장에서는 치킨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치맥족’이 등장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맥줏집 풍경을 소개하는 보도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한 매체는 ‘경흥관맥줏집의 이채로운 풍경’이란 코너에서 “무더운 여름철인 지금 공화국에서는 곳곳에 꾸려진 맥줏집들에서 사람들이 거품이 하얗게 이는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며 웃음꽃을 활짝 피우는 것이 하나의 풍경으로 되고 있다”고 전했다. 평양 경흥거리에 자리 잡은 경흥관맥줏집도 “매일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는 보도다.

 

2016년 8월 개최된 1회 평양 대동강맥주 축전에서 참가자들이 건배하고 있다. ©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

 

김정일 “세계 최고급 맥주 만들어라”

 

대동강맥주는 미국의 대북제재 상징물로 등장한 적도 있다. 2011년 미국 진출이 좌절되면서다. 당시 뉴욕의 맥주 수입업체 미주조선평양무역회사는 미 재무부 외국자산통제국(OFAC)으로부터 대동강맥주의 미국 수입을 승인받았다. 이를 근거로 북한에서 약 42만 병(1만7460박스)을 들여올 채비에 나섰지만 결국 좌절됐다. 그해 5월 미 행정부가 북한 상품이나 서비스·기술이 미국에 직·간접적으로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명령 제1조를 새로 발효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대동강맥주 축전에 이어 9월에는 강원도 원산에서 국제에어쇼를 개최할 예정이다. 지난해 처음 열려 항공 마니아를 중심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받은 행사다. 원산 갈마비행장에서 미그(MIG)-15, 미그-21, 수호이(Su)-25 제트기 등을 동원한 곡예비행을 관람하고 관광하는 프로그램이다. 정부 당국자는 “대동강맥주 축전이 대북제재 속에서도 축전을 열 만큼 여유가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의도라면, 에어쇼는 유류공급 축소 등에 영향받지 않는다는 걸 주장하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북한은 김정은이 각별한 관심을 갖는 맥주 축전과 에어쇼에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핵·미사일 도발로 인해 촘촘해지는 대북제재의 벽을 넘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한 당국에 의해 장기 억류됐다 풀려난 직후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으로 평양 관광은 서방세계에 악명 높은 코스로 낙인찍혔다. 김정은의 도발 드라이브가 멈추지 않는 한 국제사회의 동참 속에 치러지는 진정한 축제는 어렵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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