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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이 해결했다던 ‘대구 여대생 살인사건’ 무죄로 남은 이유

DNA 검출됐지만 면소 판결…공소시효 긴 특수강도강간으로 기소했다 “입증 부족” 판단

조유빈 기자 ㅣ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7.07.19(Wed)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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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당시 대구 계명대 재학생이었던 정은희양이 학교 주변 고속도로에서 23t 트럭에 치여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고 현장에서 30m 떨어진 곳에서 고인의 속옷이 발견되는 등 성폭행을 의심할 수 있는 정황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라는 판단을 내렸다. 

 

13년이 지나고서야 범행의 윤곽이 잡혔다. 2011년 스리랑카인 K씨가 성매매 권유 혐의로 검거되면서, K씨의 DNA가 정양의 사망 당시 속옷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2010년 시행한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에 따라 뒤늦게 DNA를 비교할 수 있었다.

 

검찰은 정양이 피고인을 비롯한 스리랑카인 세 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뒤 고속도로로 달아나다 변을 당한 것으로 판단하고 재수사를 시작했다. 이미 공범 두 명은 2001년과 2005년 스리랑카로 돌아간 상태라 기소가 중지됐다.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지른 K씨에게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1심과 2심 뿐 아니라 대법원까지도 모두 K씨가 ‘무죄’라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정양의 속옷에서 나온 DNA와 K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것은 성폭행을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씨에게 최종적으로 무죄 판단이 내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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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경찰의 허술한 초동 수사 내용이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유족들은 사체에 속옷이 없어진 채 겉옷만 입혀진 점, 사고 현장에서 3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정양의 속옷이 발견된 점을 들며 “딸은 단순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성폭행 당한 후 살해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정양이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하다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속옷은 정양의 것으로 보기 어려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하지 않았다”며 서둘러 사건을 종결시켰다. 

 

이후 유족들은 청와대, 법무부, 인권위 등에 60여 차례에 걸쳐 탄원·진정서를 내고 “경찰이 제대로 된 수사를 하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담당 형사를 직무 유기로 고소하고 항고와 재항고,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사건 발생 후 기나긴 법정 싸움을 거치면서 유족들은 경찰이 공개하지 않았던 일부 수사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속옷에서 정양의 혈흔 뿐 아니라 신원을 알 수 없는 자의 정액 성분이 검출됐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정양이 죽기 전 성폭행 당했음을 암시하는 결정적 증거가 가족들에게 은폐됐다.

 

이듬해 경북대 법의학교실은 정양 부검감정서를 통해 “고속도로를 횡단한 점, 집의 반대방향으로 가려 한 점,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3%로 운동에 크게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라는 점 등은 흔히 보는 보행자의 교통사고와는 다르다. 사고 전 신변에 중대한 위협을 받아 매우 긴박한 상황임을 암시해준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3년 9월이 되어서야 K씨는 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효’가 발목을 잡았다. 이때는 이미 사건이 발생한지 10년이 지난 이후였다. 흉기 등을 지닌 채 또는 2명 이상이 합동해 강간의 죄를 범한 사람은 특수강간죄에 해당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특수강간의 시효는 10년으로 이미 시효가 끝나 검찰이 이 혐의를 적용해 K씨를 기소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검찰은 특수강간 대신 시효가 15년인 특수강도강간 혐의를 적용해 K씨를 법정에 세웠다. 검찰은 K씨가 성폭행을 당하는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공포를 느껴 도망치다 사망했다는 인과관계는 밝힐 수 없어 살인죄 적용은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 1심, 강도 혐의 입증 못해 면소 판결 

 

K씨가 기소된 후,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15년 전 사망한 여대생 유가족의 민원을 해결해줌으로써 억울함을 풀어줬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유족들이 역대 정부마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민원을 보내왔지만 해결되지 않았다”며 “그러나 민원을 접수하고 당시 경찰의 초동수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돼 다시 조사하도록 함으로써 가족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은 풀리지 않았다. 재판부가 K씨의 혐의를 무죄라고 판단한 것이다. 2014년 5월 1심 재판부는 “특수강도강간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의 혐의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큼 확정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며 사실상 무죄에 해당하는 면소 판결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K씨 일행의 강도짓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특수강도강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특수강간 범행이 완료되기 전에 특수강도 행위가 이뤄져야 하는데, 특수강도강간 행위가 입증되지 않아 면소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 2심 “강간 가능성이 있으나 공소시효 지나 처벌 불가능”

 

항소심 과정에서는 공범의 지인이라는 스리랑카인 H씨가 새로운 증인으로 등장했다. H씨는 사건 이후 공범으로부터 범행 과정과 전반적인 내용을 전해 들었다고 검찰에 진술했고, 검찰은 그를 항소심 증인으로 세웠다. 검찰은 증언 등을 바탕으로 공소장을 변경하고 정양이 K씨 등 스리랑카인 세 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달아나다 고속도로에서 덤프트럭에 치여 숨진 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특히 검찰은 K씨 일행이 정양을 만난 상황과 성폭행을 위해 이동한 방법, 피고인 일행이 정양 학생증 등 소지품을 가져간 내용 등 1심 재판에서 구체적으로 거론되지 않은 내용을 공소장에 담았다. 또 K씨 등의 특수강간 외에 특수강도 범행이 함께 이뤄졌다는 정황 증언을 처음 덧붙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증거부족’을 이유로 또다시 무죄라는 판단을 내렸다. H씨의 증언에 신빙성이 없고,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2015년 8월 2심 재판부는 “피해자 속옷에서 나온 정액 유전자가 피고인 유전자와 상당 부분 일치하는 감정 결과 등으로 볼 때 피고인이 단독으로 혹은 공범들과 함께 피해자를 강간하는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으나 이는 공소시효(10년)가 끝나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성폭행의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시효가 이미 지나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대법원 “증언 신빙성 부족하고 금품 빼앗은 증거 없어”

 

대법원 역시 7월18일 같은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증언이 전해들은 내용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부족하고, 금품을 빼앗은 증거도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결국 이 사건은 19년이 지난 지금도 ‘영구 미제’로 남게 됐다. 법무부는 K씨를 강제추방 형태로 본국으로 돌려보낸 뒤 사법공조 절차를 거쳐 K씨를 스리랑카 현지 법정에 세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리랑카의 성폭행 공소시효는 20년으로 한국보다 길다. 그러나 스리랑카는 국제 형사사법공조 조약에 가입돼 있지 않아 사법공조 절차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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