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委 문 두드리는 사람 크게 늘었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07.20 09:47
  • 호수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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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들어 2배가량 증가 ‘개혁’ 외치는 인권위에 기대·우려 교차

 

지난 9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과 멀기만 했다. 인권을 외치던 현장에 눈감았고 인권에 반(反)하는 모습으로 국제사회 비판을 받았다. 2009년 용산 참사, 2010년 정부의 민간인 사찰,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세월이 쌓여 사람들은 더 이상 인권이 위협받는 순간에도 인권위 도움을 기대하지 않게 됐다. 한 장애인단체 회원은 “진정을 넣어도 안 받고 수개월이 지난 후에야 반응하다 보니 점점 인권위를 찾지 않게 됐다”고 얘기했다.

 

5월25일 문재인 대통령은 무너질 대로 무너진 인권위 위상을 다시 높일 것을 지시했다. 그 방안으로 인권위를 헌법기관으로 격상하는 방안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정부의 약속에 탄력 받은 인권위는 6월8일 자체적으로 혁신 TF팀을 꾸리고 변화를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자 인권위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시사저널이 7월13일 받은 인권위 통계자료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지시가 있던 5월25일부터 4주간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상담·민원 수는 총 1만118건이었다. 이는 그 직전 4주간 접수된 5404건보다 두 배 정도 늘어난 수치다. 6690건이었던 전년 동기와 비교해도 1.5배가량 더 많았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인권위와 인권단체에선 ‘그간 잊혔던 인권위를 향한 사람들의 새로운 기대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009년 7월20일 인권위에서 열린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취임식에서 인권단체들의 모임인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소속 회원들이 취임 반대 시위를 벌였다. © 사진=연합뉴스

 

親정부·反인권 인사로 채워진 인권위

 

그러나 지난 9년이 어두웠던 만큼 그 그늘을 모두 걷어내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거란 우려도 많다. 인권위 내부에서도 “아직 인적, 제도적으로 이전 정권과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며 “앞으로 인권위가 사람들 기대에 맞게 바뀔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얘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인권위는 2001년 김대중 정부에서 탄생했다. 이후 참여정부 들어 2003년 이라크 파병 반대 성명, 2005년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등 사안마다 뚜렷한 목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인권 관계자들은 이 시기를 ‘인권위 황금기’로 기억한다.

 

인권위를 향한 불신의 씨앗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심어졌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인수위 때부터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고 통제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인권단체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지만, 이명박 정부는 그해 광우병 촛불집회를 거치며 인권위 조직 인원을 21%나 줄여 나갔다. 같은 시기 실행한 다른 기관의 감축 규모는 불과 1~2%였다.

 

인권위를 향한 여론의 비판은 2009년 7월 이명박 정부가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임명하면서 정점에 달했다.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연일 현 위원장 사퇴를 외쳤고, 당시 유남영·문경란 상임위원과 조국 비상임위원 등 인권위 내 60여 명이 현 위원장 체제에 반발해 동반 사퇴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들의 빈자리는 인권과 무관한 친(親)정부 인사로 채워졌다. 당시 인권위를 떠났던 유남영 변호사는 “인권에 대한 생각이 국제적 기준과 많이 달랐던 사람들로 인권위가 채워졌다”며 “정부에선 인권위 역할이 별 필요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현 위원장 체제에서 인권위는 인권과 동떨어진 행동으로 적잖이 공분을 샀다. 2009년 용산 참사와 관련한 인권위 회의 도중 현 위원장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돌연 회의를 파한 후 “독재라고 해도 좋다”고 발언한 일은 유명하다. 인권위 회의를 방청했던 인권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별 논의도 없이 회의 결론을 다수결로 정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오랜 시간 인권위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해 온 한 인권위 관계자는 “당시 지도부는 도저히 대화가 되지 않았다. 어떤 문제제기를 하든 결국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왔다”고 기억했다.

 

© 시사저널 미술팀

 

“후임 사무총장 인선이 개혁 분수령”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2015년 현 위원장이 물러난 후에도 인권위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요한 사안에서 인권위의 존재감은 더욱 희미해졌다. 인권위 한 관계자는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를 인권위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농민 백남기씨가 사망했을 때, 중국에서 집단 탈북한 여종업원들의 인권 얘기가 나왔을 때 인권위가 뭘 했느냐”고 지적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는 가장 안타까운 기억이었다. 또 “국가가 국민의 생명권을 지키지 못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안임에도 인권위는 아무것도 안 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인권위 내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지목하고 있다. 인권위 몰락을 단순히 수장만의 탓으로 돌릴 순 없다는 것이다. 인권단체 관계자는 “위원장은 플레이어들 중 한 명일 뿐”이라며 “현병철 위원장이 물러났을 때 조직은 이미 인권과 먼 친정부 인사들로 장악된 후였다”고 밝혔다. 현재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를 맡고 있는 유영하 변호사와 동성애에 앞장서 반대해 온 최이우 목사 등이 지난 정권에서 인권위원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반인권 인물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지만 위원장도, 위원들도 모두 그대로인 상태에선 어떠한 변화도 어렵다고 인권단체들은 입을 모은다. 

현재 이성호 위원장은 임기가 2018년 8월까지로 1년 남짓 남은 상태다. 따라서 6월부터 공석 상태인 사무총장 자리를 누구로 채우느냐가 당장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꼽힌다. 80여 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은 사무총장이 인권위와 시민사회의 가교 역할을 하는 만큼 반드시 외부 인사를 임명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명숙 활동가는 “벌써부터 인권위가 바뀌고 있는 듯하지만 그저 현 정부 눈치 보느라 그래 보이는 것일 뿐, 결국 사람이 바뀌는 게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최근 정부와 인권위가 강조하는 ‘인권위 권한 강화’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오히려 인권위가 변화와 쇄신보다 앞서 권한 강화를 주장하는 건 자기반성 없는 태도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인권위 관계자는 “지난 9년 동안은 인권위 위상이 약해서 못했었냐”며 “인권위가 자기 역할을 잘하면 위상은 저절로 높아진다”고 꼬집었다. 유남영 변호사는 “지금 우리 인권위가 갖춘 제도와 권한은 전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금 갖춰진 권한과 제도만으로 ‘인권을 위한 인권위’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인권위가 인권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인적쇄신이 필수적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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