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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영화’ 향한 익숙한 장치들 ‘옥에 티’

올여름 한국영화의 최대 기대작으로 꼽히는 《택시 운전사》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22(Sat) 11:30:00 | 14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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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억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극영화만 해도 《꽃잎》(1996), 《박하사탕》(2000), 《화려한 휴가》(2007) 등 여러 편이 한국사의 가장 비극적인 기억 중 하나인 1980년 5월의 광주를 스크린에 불러들였다. 광주는 때론 한 인물의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때론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자들의 울분으로 기억됐다. 《택시 운전사》가 이들 영화와 다른 점은 분명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광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두 명의 ‘외부인’이다. 광주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푸른 눈의 외국인 기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으로 향하려 하고, 그런 그를 택시에 싣고 달리는 기사는 밀린 사글세를 걱정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이들을 앞세워 《택시 운전사》가 복기한 것들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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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지키려던 사람들의 광주 목격 이야기

 

만섭(송강호)은 아내와 사별 후 홀로 어린 딸을 키우는 택시 운전사다. 그가 광주로 향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외국인 손님을 태우고 광주에 갔다가 통금 전에 돌아오면 10만원을 준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돈이면 몇 달간 밀린 사글세가 해결된다. 만섭의 택시에 탄 손님은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 일본 도쿄에 있던 그는 광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카메라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결정적 순간마다 기지를 발휘해 통행금지 관문들을 무사히 통과한 뒤 광주에 도착한 두 사람. 이들의 눈앞에 펼쳐진 건 전쟁터처럼 총성과 시체, 부상자가 난무하는 처참한 광경이다.

 

제작진은 2003년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했던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의 수상 소감을 모티브 삼아 이 영화를 만들었다. 목숨을 건 잠입취재로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렸던 그는 시상식에서 “용감한 한국인 택시 운전사 김사복씨와 광주의 젊은이들이 없었다면 (광주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는 말을 남겼다. 김사복은 힌츠페터가 끝내 다시 찾지 못한 익명의 존재로, 이름 역시 가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므로 극 중 만섭이 어떤 인물로 비춰지는가는 결국 그 인물을 대하는 영화의 태도와 연결된다. 직접 취재가 가능했던 힌츠페터와 달리 택시 운전사는 실존했으나 상당 부분 극화된 인물일 수밖에 없다.

 

《택시 운전사》는 ‘상식을 지켰던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만섭을 조명한다. 그는 소위 운동권이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으로 가득한 사상가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대학생들의 시위를 지긋지긋해하며 “비싼 등록금 들여 대학까지 보내놨더니 데모나 하고 있다”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이다. 그래도 만섭에겐 상식이 있다. 택시비를 받았으면 손님을 어떻게든 원하는 곳에 데려다줘야 한다는 소명의식,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애타는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인지상정 같은 것들이다.

 

그는 과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5년간 일하며 외화를 벌어들인 산업 역군이었고, 나이대를 짐작하건대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다.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분기점들을 통과해 온 만섭은 당시를 살았던 가장 보통의 인물이자 1980년대 한국의 시대상 자체를 대변하는 인물인 셈이다. 이 영화가 초반 1시간 정도를, 먹고사는 것이 세상 제일의 고민인 만섭의 일상과, 말 안 통하는 외국인 손님과의 우스꽝스러운 갈등 등에 할애하며 서사를 구축해 나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토록 평범했던 당대의 사람이 광주의 상황을 목격하고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가를 가장 상식적인 수준으로 그리기 위함인 것이다.

 

이후 영화는 광주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남의 일’로 여겼던 만섭이 그것을 ‘나의 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짚어나간다. 만섭과 피터가 만나는 광주의 시민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이다. 광주의 택시기사 태술(유해진), 대학가요제 출전을 꿈꾸는 대학생 재식(류준열), 윗선의 강압에 맞서 어떻게든 광주의 상황을 사실대로 내보내려는 지역신문 최 기자(박혁권) 등이 그들이다. 만섭은 이들과 함께하며 광주에서 얼마나 무수한 개인들의 삶이 잔혹하게 산산조각 나고 있는지를 목격한다.

 

《택시 운전사》가 만섭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해 보인다. 영화 후반, 그는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를 하며 제 목숨 하나만 부지하려 했다는 데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낀다. 대단히 크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막연한 절망감이 드는 참이다. 만섭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며 태술에게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것은 1980년 광주를 망각하거나 그에 대해 침묵을 지켜온, 혹은 시대적 비극이었다는 모호한 말로 개인의 부채의식을 내려놓으려 했던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했던 한마디이기도 하다. 《택시 운전사》는 만섭의 이 한마디를 위해 달려가는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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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뒤 눈물’이란 상업 흥행 영화의 기본 공식

 

아쉬움이 남지 않는 건 아니다. 외부인의 눈으로 광주를 본다는 것이 영화의 중요한 설정이었던 만큼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진 피터의 캐릭터가 일단 아쉽다. 저널리스트로서 피터의 고민은 만섭이 겪는 심적 변화에 가려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택시 안에서 만섭과 언어가 통하지 않아 일어나는 우스꽝스러운 갈등, 갓김치를 먹고 당혹스러워하는 에피소드가 피터를 묘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대목들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이는 《택시 운전사》가 올해 여름 극장가 한국영화의 기대작 중 한 편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는 ‘1000만 영화’를 향한 관습적 설정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웃음 뒤 눈물’이라는 상업 흥행 영화의 기본 공식은 이번에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만섭의 발목을 잡는 딸을 향한 부성애, 실화 소재임을 인지할수록 강렬해지는 울림은 여지없이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것이 익숙한 장치에서 으레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반응이나 실화의 힘이 아닌 《택시 운전사》만의 연출을 통해 느끼게 되는 감동과 눈물인지는 모호하다. 영화적 개성보다는 보편적 공감을 획득하는 데 주력한 듯한 연출은 부담 없지만, 동시에 예상 가능한 흐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택시 운전사》는 한국 근현대사의 그늘을 다루는 대작 영화들이 가져야 할 좋은 태도를 보여준다. 동시에 이러한 영화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들 역시 생각하게 만든다. 실화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면서도 단순 유희나 감동적인 스토리로 귀결시키지 않으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무엇을 버리고 또 다른 어떤 것을 취해야 하는가. 이후 등장할 영화들이 받아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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