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온 비극’ 예고된 참사
  •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25 10:05
  • 호수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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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온, 6년 만에 개발 ‘자화자찬’… 최고 헬기 제조사도 10년 이상 걸려

 

문재인 정부가 정권 출범 후 첫 사정작업의 일환으로 방위사업 비리 척결이란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 중심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수리온’이 있다. ‘수리온’이란 2012년 6월에 개발을 완료해 우리 군이 도입한 국산 헬리콥터다. 수리온은 등장할 때부터 최초의 한국산 헬리콥터이자 방산수출의 역군이 될 것이라고 각광받던 기체다. 치누크나 블랙호크에 손색없는 헬기라는 자화자찬도 나왔다. 개발부터 실전배치까지 굉장히 신속하게 이뤄졌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군의 자화자찬이 지금은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수리온은 외부에 붙은 현란한 수식어와는 달리 내부적으론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처음에 문제가 된 것은 기체진동이었다. 유럽제 기체에 미국제 파워트레인을 결합하면서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진동이 매우 심해 심지어 엔진을 기체에 고정하는 볼트가 깨진 사례도 알려졌다. 결국 진동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진동흡수장치 등을 장착하며 문제가 해결되는 듯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6년 1월엔 ‘윈드실드(조종석 전방 방풍유리) 파손’이 보고됐다. 유리의 강도가 약한 데다 깨지면 거미줄 모양으로 갈라지면서 조종사의 시야를 방해했다. 이 깨진 유리 때문에 ‘비 새는 헬기’라는 오명이 붙었다. 이어 4월엔 ‘중앙동체 프레임 일부 균열’의 문제가 드러났다. 이에 대해 방위사업청은 균열 부분이 비행안전성과는 무관하다면서 보강재를 강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1조2000여억원을 들여 개발한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이 전투용은커녕 헬기로서 비행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결과 드러났다. © 사진=연합뉴스

 

무리한 개발로 기체 진동·파손·균열·결빙

 

수리온은 2012년 전투적합 판정을 받을 때도 진동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조건부로 합격판정을 받은 바 있다. 수리온에서 발견된 문제점은 대부분 진동과 연관이 있었다. 헬기 개발에서 진동 문제는 알파이자 오메가다. 심지어 유수의 헬기 제작업체도 진동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힘을 들이고 있다.

 

2016년 9월이 되자 이젠 엔진 결빙 문제가 부각됐다. 사실 결빙을 막는 ‘방빙장치’의 문제로 수리온은 무려 3차례나 추락한 바 있다. 수리온은 2013년 1월에는 미국 알래스카에서, 2015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미주리에서 결빙시험을 실시했는데, 그 결과 엔진 공기 흡입구 등에 허용치를 초과(100g 이상)하는 얼음이 생기는 문제가 확인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부품 7개를 바꾸는 설계개선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는 2018년이 돼야 해결될 전망이다.

 

진동이나 결빙 등의 문제가 있음에도 정부는 수리온의 실전배치를 강행했다. 일단 배치부터 하고 이후에 생기는 문제는 나중에 해결하면 된다는 논리였다. 그러는 와중에 60여 대에 가까운 수리온이 생산됐다. 결함이 해결되지 않은 채 생산이 완료된 60대의 기체는 보완을 위해 별도의 비용을 들여야만 한다. 도대체 정부는 왜 이렇게 무리한 개발과 생산을 강행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수리온의 탄생 배경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우리 군은 1988년에 KLH사업을 통해 소형 정찰헬기를 130여 대 도입하고자 했다. 물론 당시만 해도 자체 개발은 아니고 해외 기종을 면허생산 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단 12대의 Bo-105 정찰헬기를 생산하고 종료됐다. 이후 1990년대 중반에는 ADD(국방과학연구소) 주도로 국산 중형 헬기를 개발하려는 KMH사업이 추진됐다. 모두 200여 대를 생산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지만 외환위기가 불어 닥치면서 제동이 걸렸다.

 

2001년 KMH사업계획은 부활했다. 이번엔 UH-1H  기동헬기와 함께 AH-1H 공격헬기도 같이 교체하는 야심 찬 사업으로 모두 500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공격헬기까지 만들겠다는 계획은 아직 무리라고 판단해 기동헬기만 먼저 만드는 것으로 2004년 12월 사업방향이 정해졌다. 이에 따라 KMH사업은 KHP사업으로 바뀌면서 기동헬기 250여 대만을 국산화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물론 최초의 헬기 개발이다 보니 독자 개발이 어려웠다. 벨, 시콜스키, 아구스타웨스틀랜드, 유로콥터 등 세계 유수의 헬기 제조사들이 모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개발기간이었다. 불과 73개월 만에 새로운 헬기를 만들어내라는 요구를 받아들일 만한 회사는 없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유로콥터가 파트너가 돼 개발이 진행됐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사업이 진행되다 보니 구조적 문제가 많이 드러났다. 우선 사업주체가 복잡했다. KAI가 체계통합을 담당하고, 항전장비는 국방과학연구소가, 동력계통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담당했다. 물론 KHP사업 자체가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KHP사업단이 구성돼 사업을 이끌고 갔지만 누구 하나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수리온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투영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헬리콥터를 만든다면서 개발에 주어진 시간은 불과 73개월(6년+1개월)이었다. 2006년 4월12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체계 개발을 결정해 2010년 시제1호기가 초도비행을 했다. 2012년 7월3일 전투적합판정을 받고는 개발을 종료했다. 한마디로 첫 국산 헬기를 6년 만에 완성했다는 말이다.

 

 

잘못된 국책사업 의사결정 구조가 ‘적폐’

 

6년 만에 독자 개발한 헬기를 만드는 게 가능할까. 베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유로콥터로부터 ‘쿠거’라는 기체의 설계를 받아다가 베꼈다. 차라리 그냥 베끼기만 했으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국내에서 가장 많이 쓰는 미제 엔진을 장착하겠다고 설계를 바꿨다. 6년이란 시간 안에 파워트레인 계통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러나 정부가 하는 일이란 한 번 동력이 붙게 되면 멈출 수가 없다. 국책사업이라는 명목 아래 밀어붙이다 보니 이미 짜인 일정 내에 모든 것이 이뤄져야만 이 일에 참여한 관계자들이 책임을 피해 갈 수 있다. 그래서 수리온에선 통합시험이란 이름으로 개발시험과 운용시험을 동시에 수행했다. 그러다 보니 실제 운용시험은 4개월이 전부였다. 소총이나 전투배낭도 1년이 넘게 시험하는데 항공기에서 이런 짧은 시험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수리온은 문제 덩어리이기만 하고 버려야 할 대상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분명히 100점짜리 기체는 아니고 언론에서 떠들던 ‘명품헬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국산 헬기를 만들어낸 우리 방산 업계의 저력만큼은 인정해야만 한다. 오히려 업체들에 충분한 시간을 주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경험 많은 외국의 유수 헬기 제작사들도 새로 만든 기체를 안정화시키는 데 10여 년의 기간이 걸리기도 한다.

 

7월17일 문재인 대통령은 방산비리가 안보에 구멍을 뚫는 이적행위에 해당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국형 헬기 수리온의 치명적 결함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수리온이 보여준 치명적 결함은 기체의 성능부족 이외에 더욱 근본적인 곳에 있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식으로 빠른 행동만을 요구하고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실패가 있어서는 안 되게 만드는 의사결정 구조야말로 진정한 적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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