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부영 계열사 7곳 조직적·고의적으로 은폐했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7.07.25 10:33
  • 호수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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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고발장에 이중근 회장 불법 사실 보고 시사…“고의성 없었다”는 이 회장 측 해명과 배치

 

공정거래위원회 제1소위가 예고한 대로 7월5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14조(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등의 지정 등)를 위반한 혐의다.

 

부영그룹은 2002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및 채무보증제한기업집단에 지정됐다. 2008년 7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 조건이 2조원(자산총액 기준)에서 5조원으로 상향 조정되면서 잠시 제외됐다가 2010년 재지정됐다. 올해 5월 기준으로 부영그룹의 자산은 21조7155억원, 매출은 2조3875억원, 계열사는 22곳에 이르고 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지정되면 매년 공정위에 소속 회사 재무현황과 주주현황, 친족현황 등의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이 회장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친족이 경영하는 7개 회사를 계열사에서 누락해 허위 보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신고가 누락된 계열사는 흥덕기업·대화알미늄·신창씨앤에이에스·명서건설·현창인테리어·라송산업·세현 등이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2016년 10월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00년 초 동서에게 광영토건 주식 명의신탁

 

이 회장은 “고의로 누락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 측은 공정위 답변서에서 “친족이 독립 경영을 하는 회사여서 현황 파악이 어려웠다. 계열 미편입으로 특별히 이익을 얻지 않았고, 미편입 기간 중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 등 규제를 위반한 사실도 없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 계열사는 대부분 이 회장의 친족이 대표이사이거나 최대주주다. 흥덕기업은 이 회장의 누나인 이봉림씨와 조카 유상월씨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대화알미늄 역시 이 회장의 처제인 나남순씨와 동서 이영권씨가 85.4% 지분을 가진 대주주다. 명서건설은 이 회장의 여동생 이춘엽씨와 조카인 재성·재환씨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현창인테리어는 조카사위인 임익창씨가 최대주주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 회장이 ‘몰랐다’거나 ‘고의가 아니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공정위는 판단했다.

 

무엇보다 흥덕기업과 대화알미늄, 신창씨앤에이에스 등 3개 회사는 부영 계열사에 90% 이상 매출을 의존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 회장 부속실 추천으로 부영 협력업체에 등록된 후 일감을 넘겨받아 급성장했다는 점에서 고의성이 의심되고 있다. 이들 기업이 계열사 명단에서 빠질 경우 공정위의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은 1995년부터 7년간 광영토건 주식 49만1608주(지분율 24.6%)를 동서인 이영권 대표에게 명의신탁을 했다가 2013년 돌려받았다. 이런 사실만 봐도 현황 파악이 어려웠다는 이 회장 측의 답변은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2010년에도 친족이 지배하는 계열사를 누락 보고했다가 공정위로부터 시정 조치를 받았다. 이번에도 친족 회사가 계열사에서 누락된 게 불법이라는 사실을 이 회장 역시 파악하고 있었을 것으로 공정위는 보고 있다. 앞서 관계자는 “부영 내부 보고서에 이미 ‘흥덕기업과 대화알미늄, 현창인테리어 문제가 터질 경우 공정위에서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고 언급돼 있다. 부영그룹을 퇴직한 고위 관계자의 진술도 확보했다”며 “그럼에도 최장 14년간 계열사에서 누락한 것은 조직적이고 고의적인 은폐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현재 지주회사인 ㈜부영과 광영토건, 남광건설산업, 부강주택관리, 신록개발, 부영엔터테인먼트(옛 대화기건) 등 6개 회사의 주식을 측근 이름으로 명의신탁한 혐의도 받고 있다. 6개 회사 중에는 이 회장의 부인 나길순씨가 소유하고 있는 회사도 있었다. ㈜부영을 제외하면 명의신탁 규모도 35%에서 100%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서도 이 회장은 고의성을 부인하고 있다. 이 회장 측은 공정위 조사에서 “(이 회장이 운영하던) 우진건설산업이 1979년 부도가 나면서 정상적인 금융거래나 회사 운영이 불가능했다”며 “㈜부영 등 6개 회사의 주식을 친족 및 임직원 등 차명으로 기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공정위의 판단은 달랐다. 이 회장은 2007년 12월 ㈜부영 주식 49만8139주(3.5%)를 회사 임원인 이아무개씨에게 명의신탁 했다. 광영토건 주식 176만3386주(88.2%)와 남광건설산업 주식 70만 주(100%), 부강주택관리 주식 3만 주(100%), 신록개발 주식 1만7500주(35%)를 친족이나 임직원에게 차명으로 맡긴 시점도 2000년 전후였다.

 

이때는 이미 이 회장이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가능한 때였다. “회사 부도 이후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할 수 없었다”는 이 회장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 회장은 2013년 12월 명의신탁 한 주식을 모두 돌려받을 때까지 최장 21년간 본인이 보유한 거액의 주식을 타인 소유처럼 허위로 보고했다”며 “고의적인 은폐 의도가 있는 것으로 내부에서는 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회장과 장남 성훈씨가 100% 지분을 보유한 신록개발과 부인 명의 회사 부영엔터테인먼트 등의 경우 계열사에서 누락시킨 사실이 2010년 공정위에 적발되면서 시정 조치를 받았다. 이 회장은 이 공문에 직접 서명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 회장은 자신과 부인의 주식을 타인 소유의 주식으로 허위 보고했다. 이는 감독기관을 무시하고, 법상 규제를 잠탈할 의도가 있는 것으로 공정위 측은 판단하고 있다. 때문에 검찰수사가 본격화되면 이 회장 역시 책임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상조 위원장이 이끄는 공정위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위반 1호 기업으로 부영그룹을 검찰에 고발해 주목된다. © 사진=연합뉴스

 

국세청 고발 사건과 병합 수사 가능성

 

부영그룹은 현재 국세청의 고발로 강도 높은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2015년 말 부영그룹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세금 탈루 혐의가 포착되면서 이 회장이 검찰에 고발됐다. 통상적으로 국세청 고발 건은 공정거래조세조사부에 배당하는 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특수1부에 이 사건을 맡겼다. 검찰이 그만큼 사안을 중대하게 판단했다는 의미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공정위 고발 사건 역시 역외탈세 의혹 사건과 함께 특수1부에 배당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검찰에서 국세청 고발 건과 이번 공정위 고발 건을 병합해 수사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이 회장에 대한 다각적인 수사가 불가피하다”며 “검찰 역시 새 정부의 개혁 대상 1호로 꼽히고 있다. 외부의 비판 시각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수사력을 집중해 결과를 보여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강도 검찰수사로 이중근 神話도 ‘흔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에 대한 검찰의 고강도 수사가 예고되면서 이 회장의 ‘성공 신화’도 흔들거리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부영은 지역의 중소 건설업체 중 한 곳이었다. 이 회장은 틈새시장이던 임대주택 사업에 진출했다. 임대료를 받아 현금을 확보하고 분양전환으로 시세차익을 거두면서 부영그룹을 재계 16위권으로 성장시켰다. 부영그룹의 고속성장 배경에는 이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작용한 것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주요 건설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그나마 자금력이 있는 재벌 계열 건설사의 경우 모기업의 지원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견 건설사들은 벼랑 끝에 내몰렸다. 극동건설과 벽산건설, 성원건설, 쌍용건설, LIG건설 등이 줄줄이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이 시기 부영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냈다. 전국의 임대 아파트를 분양전환하면서 현금 보유율이 크게 높아졌다. 이렇게 쌓은 현금으로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섰다. 2011년 무주리조트(현 무주덕유산리조트)와 제주 앵커호텔(현 부영호텔)을 인수했다.

 

부영그룹이 최근 인수한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본관 © 시사저널 고성준

2015년 이후에는 부동산 투자에 진출해 굵직한 빌딩을 차례로 인수했다. 인천 송도 대우자동차판매 부지와 강원도 태백 오투리조트, 경기도 안성 마에스트로CC,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본관, 을지로 삼성화재 본관, 인천 송도 포스코건설 사옥 등을 차례로 인수해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최근에는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KEB하나은행 본점 건물(옛 외환은행 본점) 인수에 9000억원대의 인수가를 써내 우선협상자로 선정됐고, KB명동사옥 인수에도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 그동안 쌍용건설과 한국토지신탁 등의 인수전에 부영이 명함을 내밀었고, 현재는 대우건설이나 SK증권의 인수 후보로도 부영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의 이번 고발로 부영의 ‘성장동력’이었던 부동산 사업이 큰 위기를 맞게 됐다. 검찰 조사가 부동산 매입에 동원된 자금 조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회장 역시 검찰 조사를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부동산 사업의 의지와 자금동원을 위한 실행력 모두가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부영그룹의 경우 지배구조 특성상 이중근 회장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이 회장은 현재 지주회사인 ㈜부영의 지분 93.79%를 보유하고 있다. 장남인 이성훈 부영 부사장(1.64%)과 학교법인 우정학원(0.79%), ㈜부영(3.24%)의 지분까지 합하면 100%에 가깝다. 22곳의 계열사 역시 비상장으로, 이 회장이 이 회사들을 거느리는 구조다. 이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이 회장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사법처리를 받게 되면 그룹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는 구조여서 향후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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