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봉춘 세탁소’ 문 좀 닫게 해주세요”
  • 홍주환 인턴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2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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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셀프 디스 중인 ‘마봉춘 세탁소’ 직원들을 만나다

 

‘이제라도 장겸시 내보내군 마봉춘살리면 좋으리’에는 요새 뜨는 세탁소가 있다. ‘지저분한 뉴스는 세탁기에 돌려줘야 제맛!’이라며 MBC도 깨끗이 빨아 다시 쓰자며 6월30일 오픈한 ‘마봉춘 세탁소’다.

 

페이스북 페이지(@mbclaundryproject)인데, 여기에는 MBC 뉴스, 김장겸 MBC 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등을 패러디한 영상, 합성 사진이 다양하게 올라와 있다. 이들은 나체로 등장하기도 하고 ‘MBC 파괴몬’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한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인 ‘천지창조’에 합성된 김장겸 사장의 얼굴. 이 작품은 팩트 없는 뉴스가 창조되는 순간을 그린 작품으로 패러디돼 ‘뉴스창조’라는 새 이름이 붙었다. 네티즌들은 ‘마봉춘 세탁소’의 게시물을 ‘약 빨고 만든 콘텐츠’라고 부른다. 

  

세탁소를 만든 사람들은 MBC 구성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회사를 ‘셀프 디스’ 하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마봉춘 세탁소의 주축인 김상혁(가명)씨와 황정호(가명)씨는 2012년 MBC 파업 당시 파업에 참여했던 MBC의 전직 기자·PD·작가들 중 한 사람이었다. 회사와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 얼굴도 이름도 감춰야 했다.

 

MBC 직원인 ‘마봉춘 세탁소’ 운영자들은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왼쪽), 김장겸 MBC 사장의 얼굴 가면을 쓴 채 인터뷰를 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겉으론 웃겨도 속내는 절박하다

 

두 사람은 많은 동료 기자·PD들이 해직당하는 모습을 직접 봤다. 둘은 해직되진 않았다. 대신 다른 동료들과 함께 ‘유배지’라고 불리는 비(非)제작부서로 가야했다. 유배지에 발을 붙인 뒤부터는 프로그램 제작에 참가하지 못했다. 

 

회사는 일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 발령받은 부서에서는 할 일이 없었다. 하루에 하나라도 업무가 있다면 다행이었다. 그나마 사소했고 자신의 직군과 무관했다. 김씨는 유배지에서의 생활을 “너희가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고, 너희는 이제 회사에 필요 없는 존재라고 계속 주입시키는 것 같았다”고 떠올렸다.

 

그들이 일선에서 떠나 있는 동안 MBC는 점점 달라져갔다. “MBC는 망가지고 국민의 신뢰를 잃었죠.” 황씨는 자조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자정을 위한 MBC 구성원들의 1인 시위나 성명 발표 등이 이어졌지만 변화는 없었다. 김재철·안광한 전 사장부터 현재의 김장겸 사장에 이르기까지 MBC에 씌어진 ‘편향적이다’, ‘정권에 장악됐다’라는 오명은 갈수록 짙어질 뿐이었다.

 

예전에는 MBC의 현실에 함께 분노하던 시민들도 점점 무관심해져 갔다. MBC가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잃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황씨는 “이제 MBC가 어떤 상황인지, 김장겸 사장이 누구이고 어떻게 MBC를 망쳤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러던 찰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며 ‘촛불정국’이 시작됐다. 시민들은 ‘적폐 청산’을 외쳤고 적폐 리스트 중에는 MBC가 포함된 ‘언론 적폐’가 있었다. 민심은 탄핵을 이끌어냈고 정부는 교체됐지만 MBC는 그대로였다. 

 

“다른 적폐들은 조금씩 바뀌고 있는데 MBC는 전혀 바뀌지 않는다는 절박함이 강했죠. 특히 MBC는 국민의 재산이니까요. 그런데 MBC가 바뀌려면 시민들의 지지가 필요하고, 또 그러려면 시민들이 지금 MBC의 상황이 어떤지, 김장겸 사장이 MBC를 얼마나 파괴했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희 둘을 포함해 MBC 내 구성원 5~6명이 뭉쳐 ‘마봉춘 세탁소’를 만들었어요.”

 ‘마봉춘 세탁소’는 MBC의 현실을 어떻게든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는 절박한 웃음을 콘텐츠에 담았다. 개업한 지 아직 한 달밖에 안 됐지만 인기는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문을 연 지 하루 만에 ‘좋아요’ 1000개를 돌파하더니 현재는 4000대를 바라보고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 들어오는 응원의 메시지도 점점 늘고 있다.

  

콘텐츠 제작자도 많아졌다. 원래 처음 결의했던 5~6명이 만들었지만 지금은 MBC 내 여러 부서 구성원들이 참여해 함께 만들고 있다. 황씨는 “제작부서에 있는 사람 중 일이 늦게 끝나면 새벽에라도 영상을 만들어 보내준다”며 “마봉춘 세탁소는 MBC의 현실을 알릴만한 콘텐츠를 만드는 그 누구에게라도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탁소 직원들은 하루빨리 세탁소의 폐업을 바란다

 

이 같은 노력 덕택에 외부로부터 오는 반응을 느낄 수 있게 됐다. 반면 내부, MBC 경영진 측에서 나오는 반응은 아직 없다. 두 사람은 그게 못내 아쉽다고 말한다. 

 

“사내 게시판에 경영진의 성명이 나올 법도 한데 아직까지는 없는 상황이에요. 아마 마봉춘 세탁소의 존재는 알고 있을 거예요. ‘무(無)대응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아닐까 예상합니다. 경영진 측에서 대응하면 그만큼 마봉춘 세탁소가 영향력 있다는 반증일 테니까요.” 

마봉춘 세탁소의 최종 목표는 딱 하나, 세탁소의 조속한 폐업이다. 마봉춘 세탁소의 폐업은 곧 MBC 내에 돌릴 빨랫감이 없다는 얘기다. 물론 김씨와 황씨는 아직 MBC에 빨랫감이 많다고 본다. 김장겸 사장 퇴진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MBC 사장 선임 구조 개편을 위한 ‘언론장악 방지법’이 필요하고, MBC 구성원 및 시민과 함께 경영진에 대한 견제장치도 강화돼야 한다. 프로그램 제작 환경의 독립성 확보 등도 중요하다. 마봉춘 세탁소의 폐업은 아직 먼 이야기일 수 있다.

 

마봉춘 세탁소가 제작한 콘텐츠는 더 다양한 것들이 예정돼 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의 형식을 빌린 ‘MBC 빨래 챌린지(가제)’ 같은 것도 기획 중이다. 

 

“앞으로도 더 웃기고 풍자 가득한 콘텐츠를 만들 테니 마봉춘 세탁소에 계속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어서 세탁소 문 닫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를 원하시면 ‘좋아요’, ‘공유’를 많이 눌러주세요.(웃음)”

가면 쓴 두 사람의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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