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 끝나자 세계가 끝나버렸다?
  •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2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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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유럽사 편)]

 

‘로마제국’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로마제국 쇠망사’, 혹은 ‘로마제국의 멸망’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같이 뜬다. 아마 18세기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이 쓴 동명의 저서가 워낙 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로마제국이 한참 발흥하기 시작하던 서기 98년부터 비잔틴이 함락되던 1590년까지의 역사를 6권의 책에 담은 이 대작은 그 유려한 문체와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후대의 많은 역사학자뿐 아니라 화가, 연극연출가, 영화감독 등 비주얼 아티스트들의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왔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근대의 모든 역사적 기술이 그렇듯이, 로마제국의 망한 이유를 당시 사회를 주도했던 인간의 심리와 행동 특성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연재에서 보아왔듯이, 이런 유의 설명은 ‘왜 하필 그때 로마제국 사람들이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면 답을 내놓기 어려워진다. 

 

현대의 대표적 진화심리학자로, 유명한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가장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자손을 낳아 그 자손이 성공적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존재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기에 가장 유리한 전략을 택해 살아간다. 그러니까 로마도 열심히 살아 그 정도의 제국을 건설했을 것이다. 그러던 로마인들이 왜 그렇게 갑작스럽게 무너졌을까?

 

이번에도 기왕의 역사학이 찾지 못한 답을 기후변화 역사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클리프 해리스&랜디 맨 ‘Global Temperature’ 게재 그래프로부터 재구성. © 사진=이진아 제공

 

지중해 해안 지역 중에서도 특히 개발이 늦은 편이었던 고대 로마가 지중해의 최강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한랭기임에도 불구하고 지형적 요인으로 기온이 상대적으로 많이 낮아지지 않았으며 삼림자원이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풍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기후변화라는 거시적 환경요인과 로마라는 땅의 생태학적 특성이라는 미시적 환경요인이 맞물려, 로마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하지만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바로 그런 거시적 환경요인과 미시적 환경요인의 조합이 로마의 쇠락을 촉진하기도 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런 환경 변화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근시안적으로 이익을 추구하기에 급급했던 로마인의 대응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로마의 건국 시기에 대해서는 날짜까지도 정확히 전해지고 있다. 기원전 753년 4월 21일, 후대 로마의 역사가들이 기록한 날짜다.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 중,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이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 날짜가 어떻게 나온 건지는 몰라도,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로 봐서는 로마의 고대국가 형성 시기는 그보다 빨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아시아의 페니키아가 기원전 2000년 무렵에 이미 상당한 규모의 국가였고 고대 그리스에서 오래 된 도시국가들이 기원전 천 몇 백 년이라는 건국 시기를 내세우는 데 비하면 상당히 늦은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기원전 5세기 경 에트루리아의 청동 조각상. (출처: 위키미디어)

 

전설상의 왕국 시대를 거쳐 공화국 시대에 접어드는 기원전 500년 무렵부터 로마는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기 시작한다. 위 그래프에서 보듯 정확히 한랭기에 진입하면서부터다. 춥고 건조해지는 날씨에 카르타고 등 기존 지중해 강자들이 흔들렸기 때문에 생태학적 특성상 그런 한랭기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을 수 있었던 로마가 주역이 된 것이다. 

 

로마 사람들이 먹고사는 방식은 다른 지역들과 비교해볼 때 심하게 파괴적이었다. 대개 전통사회에서는 아주 먹고 살기 곤란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생계기반인 자연생태계를 웬만하면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갔다. 하지만 로마는 식민지에서는 물론 본국에서도 마치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인 양 자연생태계를 다루는 경향이 있었다는 사실이 사료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이런 특성은 종전의 역사학에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사는 주로 고대 로마인들이 그 왕성한 에너지를 지중해역 전체로 펼쳐가며 벌이는 드라마틱한 사건의 전개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 도널드 휴즈의 《그리스인과 로마인의 환경문제: 고대 지중해의 생태학》, 존 펄린의 《숲의 여행: 목재와 문명 이야기》 등의 기념비적인 환경역사서가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거의 공통적으로 로마인의 무분별한 개발 방식 및 그것이 제국의 운명에 미친 영향을 다루기 시작했다.

 

지중해역의 최강자 고대 로마를 낳았던 배후지 아펜니노 산기슭의 무성한 숲은 포에니 전쟁 후 급속히 개발되어 성과 주택으로 뒤덮였다. 카르타고를 제거하고 교역을 장악해서 큰 부를 거머쥐게 된 사람들은 신흥 귀족이 되어, 고향 로마의 농경지를 사들이거나 강제로 빼앗아 정복지에서 포획한 노예의 노동력으로 라티푼디움이라는 대농장을 건설, 운영했다. 땅이 비교적 넓었던 식민지에선 말할 것도 없다.

 

1세기 남서부 독일 지방에 세워진 로마 대농장의 장원 모습 복원도

 

로마 공화국 말기 농업 관련 저술을 많이 남겼던 콜루멜라는 이 방법을 가리켜 “땅을 사람에게 비유하자면, 사형집행인에게 내주는 거와 마찬가지”라고 했다. 땅에 대해 아무런 애정도, 지식도 없는 사람이 그보다 더한 노예들에게 맡겨 당장 수확을 증산하라고 몰아치면, 결과적으로 그 땅은 빨리 소모되고 침식되어 못쓰게 되고 만다. 한랭기였기 때문에 이런 경향은 더 심했을 것이다.

 

점점 본토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산림이 고갈되어갔다. 루크레티우스, 세네카 등 환경관리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현자들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로마의 위정자들은 자신들에게 더 쉬워 보이는 전략을 택했다. 우월한 체력과 항해술 및 선박제조술, 그리고 역사적으로 악명 높은 무자비한 정복욕을 활용하는 것이다.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지금의 프랑스 및 독일 지역인 가울 정복에 힘을 쏟은 것은 이 지방에 끝없이 펼쳐진 삼림, 그 안에서 자라나는 곧고 단단한 목재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카이사르는 공화국 체제를 무너뜨리고 로마 제국으로 가는 문턱을 만든 인물이다. 이미 본토의 땅을 망칠대로 망친 상태에서 로마의 선택은 뻔했다. 제국시대 로마 사람들은 끝없이 영토를 확장하고 식민지를 만들었으며, 그 식민지를 닥치는 대로 착취해서 초토화시켰다. 로마의 황제와 귀족, 그리고 시민들까지도 끝없이 물질적인 탐욕을 추구했다. 

 

로마의 생활 문화 자체가 자원 낭비적이었다. 유리를 많이 사용하는 건축과 일상 집기, 아마 납중독 때문이었던지 혈액순환이 잘되지 않는 고질적 건강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우나의 남용, 벽돌을 구워 이중으로 만들어 그 사이에 장작을 땐 열기를 순환시켜 건물 전체를 데우는 고급 중앙난방법… 자원, 특히 목재를 엄청나게 낭비하는 이런 관행들로 인해 로마는 물론 지중해 전역의 생태계가 파괴돼갔다. 에드워드 기번의 말대로, “로마가 끝나자 세계가 끝나버렸다.” (물론 이때 세계란 지중해 세계를 말한다.)

 

로마는 한랭기동안 발흥해서 온난기를 거치는 동안 오히려 쇠퇴하는 방향으로 변해갔다. 한랭기에 지중해권역 다른 곳보다 좀 더 해상활동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생활방식을 통해 스스로 파멸의 기반을 만들어갔기 때문이다.클리프 해리스& 랜디 맨 ‘Global Temperature’ 게재 그래프 및 위키미디어 지도 자료를 기초로 재구성. © 사진= 이진아 제공

 

로마제국 시대는 해양족 활동에 이상적인 온난기였다. 그런 조건 속에서 로마는 ‘팍스 로마나’라고 불리는 번영을 구가했다. 하지만 그 번영은, 비유를 해서 말하자면, 마치 지나가는 동안 레일들을 모두 파괴해서 못 쓰게 만들면서 앞으로 내달리는 폭주 기관차 같은 것이었다. 낭비적인 생활관행과 그를 뒷받침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한 치 앞을 안 보고 환경을 파괴해갔던 로마인들, 기후변화가 온난기 정점을 지나 하강국면에 접어들자 이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흔들리기 시작했다. 동·서 로마로 분열되어 동로마제국은 실질적으로 소아시아 문명권에 다시 귀속되고, 서로마제국은 기후가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살 길을 찾아 나선 게르만 민족들의 손에 일찌감치 헤게모니를 넘겨주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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