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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판소리 ‘토킹 블루스’의 매력

단순한 블루스 기타 코드 위에 얹은 ‘이야기 노래’

박종현 월드뮤직센터 수석연구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30(Sun) 19:00:00 | 14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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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전 필자는 미국 시카고 인근의 작은 도시에서 열린 ‘루츠뮤직’(roots music·미국 땅에 뿌리를 둔 여러 음악들의 총칭) 축제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마주한 한 음악가의 무대가 필자에게 유독 진한 여운을 안겼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원로 음악가 로버트 존스(Rev. Robert B. Jones)의 무대였다. 스스로를 ‘이야기꾼’이라 소개하는 그는 기타를 들고 무대 위 의자에 앉아 자신의 삶을 담은 ‘노래 이야기’를 들려줬다. 첫 번째 이야기는 대략 이랬다. 

 

“어릴 적 교회에서 가스펠과 블루스를 배웠어. 기타가 좋았지만 집이 가난했으니 일을 해야 했지. 블루스클럽에서 접시를 닦으면서 쉴 때 기타를 쳤어. 사장이 ‘비비 킹(B.B. King)’ 스타일로 노래를 부르면 무대에 세워주겠다고 했어. 내가 좋아하던 이도 내게 말했지. 무대에서 비비 킹을 멋지게 부르면 고백을 받아주겠다고. 그렇지만 난 그 스타일이 안 맞았고, 그냥 내 블루스를 하기로 했지. 결국 무대에 못 올랐어. 그이는 날 떠났고. 그게 삶이지. 그렇지만 봐, 지금 내 스타일로 이렇게 연주하잖아. 그게 삶이야.”

반복되는 단순한 블루스 코드가 깔리는 가운데 이야기가 20~30분가량 이어졌다. 이야기 흐름에 따라 그의 손에 들린 기타 연주의 속도와 주법이 달라졌다. ‘토킹 블루스(Talking Blues)’다.

 


 

토킹 블루스, 말이면서 음악인 오묘한 장르

 

토킹 블루스는 20세기 초 아프리카계 미국인 커뮤니티 안에서 시작됐다고 여겨진다. 그들이 지니고 있던 보다 전통적인 구술 장르의 전통에 기반해 확립된 것이다. 자신들에게 가장 친숙한 음악적 요소들 위에 개인 혹은 사회의 서사를 얹어 읊어내는, 말이면서 또한 음악이기도 한 오묘한 장르다.

 

토킹 블루스는 한국의 판소리와 여러모로 닮았다. 기타는 마치 한국 판소리의 북처럼 이야기를 받치고 북돋운다. 설명과 노래를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꾸려 나가는 것도 판소리의 ‘아니리-소리’ 구조와 닮았다. 

 

“그거 알아? 그땐 온통 ‘비비 킹’이어서, 그 스타일 아니면 무대에 안 세워줬어. 근데 봐봐.”(비비 킹 스타일을 일부러 따라 하는 느낌으로 노래를 한다),“내 목소리에 안 어울리잖아.” 

이런 식이다. 성장·가난·사랑과 같이 삶에서 건져낸 소재라든가, 재담을 통해 판을 쥐었다 폈다 하는 방식 등도 판소리와 닮았다. 한국의 판소리뿐 아니라, 일본의 노(能), 인도네시아의 와양 쿨릿(Wayang Kulit) 등도 토킹 블루스와 비슷한 유형으로, 세계 음악에서 ‘극음악(Musical Theatre)’으로 분류된다.

 

토킹 블루스 안엔 수많은 모습이 있다. 필자가 시카고에서 마주한 로버트 존스의 노래는 교훈적·교육적 메시지가 강조된 경우다. 인종적 마이너리티로서, 혹은 노동자로서, 서민으로서 겪는 ‘팍팍한 삶’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사실적으로 구술하는 보다 ‘본격적인 넋두리’들도 있다. 이러한 노래들은 청자들에게 슬픔과 흥겨움의 두 정서를 함께 건네곤 한다. 온갖 고단한 노동의 경험을 재담의 형태로 읊는 우디 거스리(Woodie Guthrie)의 토킹 블루스 《중노동 얘기》의 첫 부분은 다음과 같은 허세로 시작한다. 

 

“중노동에 대해 논하자면 말이지, 말하고 싶은 게, 난 늘 힘든 일을 좋아하는 남자란 거지. 난 일하러 태어났고, 일해서 내 길을 다졌어…(후략)”

 

당대의 사회적 이슈를 논하는 형태로 쓰여

 

이른바 ‘포크 리바이벌’의 시기였던 1960~70년대는 미국의 음악가·지식인들이 ‘미국적인’ 음악들을 재발굴해 당대 사회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때였다. 토킹 블루스 역시 당대의 사회적인 이슈를 논하는 형태로 쓰였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조니 캐시(Johnny Cash)의 《베트남에서 노래했네 토킹 블루스》가 그랬다. 이 짧은 노래는 캐시 부부가 베트남으로 여행 갔다가,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뒤 병원을 방문해 위문의 노래를 부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노래의 말미에는 직접적인 반전의 메시지를 담았다. 

 

“(전략) 내가 만일 다시 간다면 말이지, 내가 노래해 줘야 할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네 / 전쟁이 끝나기를, 다들 집에 돌아가서, 평화 속에 머물게 되기를 바란다네.”

서정적인 멜로디로 잘 알려진 쿠바 노래 《관타나메라》도 피트 시거(Pete Seeger)에 의해 토킹의 형태로 재창조됐다. 스페인어로 이루어진 원곡의 사이사이로, 이 곡의 작사자인 사회주의 혁명가 호세 마르티(Jose Marti)의 일대기가 읊어진다. 이로써 단순히 듣기 좋은 이국 민요가 아닌, 진보와 평화 등의 가치와 연결되는 민중가요로서 이 노래의 의미가 새로워진다.

역사적으로 여러 미국적인 장르들과 소통해 오던 한국 음악 속에 토킹 블루스를 연상시키는 순간들이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사람들》이다. 블루지한 스리핑거 주법의 반복 속에서 토킹과 노래를 교차시키며 당대의 사회상을 그려내는 서사곡이다. 그야말로 한국어 포크 음악의 토양에서 아름답게 꽃핀 ‘이야기 음악’의 예다. 토킹 블루스의 형태와 그 정서까지도 직접적으로 활용해 한국어로 멋지게 풀어낸 최근의 사례로는, 가수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의 《300/30》이 있다. 

 

“처음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은 박형입니다. 박형은 노원구 상계동에 사는 블루스 하모니카 연주자입니다…(중략) 삼백에 삼십으로 신월동에 가보니 / 동네 옥상으로 온종일 끌려다니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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