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채용 도입한 공공기관, 得일까 失일까
  • 김예린 인턴기자 (yerinwriter@naver.com)
  • 승인 2017.08.01 10:46
  • 호수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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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아닌 실력 우선” vs “노력 무시한 역차별” 팽팽

 

정부가 하반기부터 공공기관에 블라인드 채용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공공기관도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불필요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고 실력 위주로 평가하는 공정한 방식이라고 환영하는 목소리와 기업과 학생 모두에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반론이 팽팽하다. 전문가들은 무작정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할 것이 아니라, 지원자의 직무 관련 역량과 의지를 판단할 수 있는 채용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기준·체계 없어 혼란”

 

블라인드 채용은 입사지원서와 면접 등 채용 과정에서 편견을 야기할 수 있는 요소(학력·출신지·신체조건·가족관계·외모 등)를 배제하고 실력만으로 평가해 채용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7월부터 전국 332개 모든 공공기관에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전면 도입하고, 149개 지방공기업도 8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취업준비생들의 반응은 첨예하게 엇갈린다. 먼저 학력이나 출신지 등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실력으로 뽑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정한 방식이라는 평가가 있다.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 중인 중앙대 졸업생 정아무개씨(27)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다소 소홀히 했던 학생도 대학 기간 동안 충분히 역량을 쌓을 수 있다. 학력이 지원자의 역량을 가늠하는 척도로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김아무개씨(25)도 “블라인드 채용을 하면 고정관념을 버리고 능력을 중점적으로 볼 수 있어서 채용하는 회사의 업무능력이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사진=연합뉴스

반면 외모 등 외적 요소를 배제하는 데는 찬성하지만, 학력 등 노력으로 얻은 요소까지 평가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있다. 성균관대 재학생 김아무개씨(27)는 “출신학교·학점 등 노력으로 얻은 부분까지 가리고 자기소개서와 직무능력만으로 뽑으면, 학교 공부에 충실한 것보다 자기소개서·국가직무능력표준(NCS) 시험에 투자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특정 직군은 학점과 학과를 반영한다고 하는데, 상위권과 하위권 대학 수업 수준은 큰 차이가 있어 같은 학점도 동일하게 볼 수 없다”면서 “취지는 이상적이나 한국 사회의 교육격차나 경쟁구조를 반영하지 못한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대학 측에서도 불명확한 기준과 전공 공부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박혜진 단국대 취업컨설턴트는 “블라인드 채용을 처음 도입하는 공공기관은 학력이나 스펙 없이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거를 수 있는 정교화된 기준과 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같은 대학 허희원 취업컨설턴트도 “학생의 본분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인데 학점·학교가 중요하지 않게 되면 누가 공부하겠나. 학교생활을 충실히 했는지 정성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평가항목이 세분화돼야 한다”고 전했다.

 

공공기관의 입장도 극명하게 나뉜다. 이전부터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해 온 곳들은 공정성의 측면에서 찬성하는 분위기다. 코레일 인사 담당자는 “채용을 공정하게 진행하기 위해 출신 학교나 지역 등을 심사위원이 전혀 느끼지 못하도록 해 왔다. 선입견을 둘 수 있는 부분을 배제하고 개개인의 능력으로만 평가하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도로교통공단 인사 담당자 역시 “기존에는 수도권 학생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블라인드를 하고 나서는 학력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져 비수도권의 비율이 더 높아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공공기관들 사이에는 채용 과정에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 한국벤처투자 인사 담당자는 “학점 등 대부분의 요소가 블라인드 되니까 어떤 기준으로 뽑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적합한 인재를 채용하려면 대부분의 기관처럼 서류는 자격요건으로만 두고 필기시험을 활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다른 인사 관련 정책과 충돌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우체국금융개발원 인사 담당자는 “지역인재나 고졸을 많이 채용하라고 가이드라인이 내려오는데, 블라인드 채용에서는 학력을 보지 말라고 하니 지원자가 고졸인지 지역인재인지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NCS를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는 이런 혼란과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 ‘블라인드 채용 가이드북’을 마련하고 채용 컨설팅과 인사 담당자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이 공단의 관계자는 “공공기관에서 인재 선발기준과 체계를 자체 개발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이번에 구성된 블라인드 확산지원단을 통해 각 기관이 블라인드 채용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한에서 특성에 맞게 채용 툴을 마련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필기전형과 면접, 직무 관련 역량·경험 중요

 

학생과 공공기관이 혼란에 빠진 것과 반대로 학원가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학벌과 스펙을 보지 않는다는 말에 공공기관 채용에 대한 기대심리가 높아진 결과다. 공공기관 취업전문학원인 공기업단기 관계자는 “학벌과 상관없이 노력하면 공기업에 입사할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생기면서 상담 문의가 크게 늘었다”며 “공기업 설명회를 한다고 문자발송만 했는데도 2시간 만에 130명이 지원했다”고 말했다. 서류평가 비중이 줄어든 대신 면접이 강화되면서 스피치학원을 찾는 발길도 늘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스피치학원 관계자는 “블라인드 채용 발표 이후 사람들이 두 배 정도 늘었고, 공기업 면접과 관련해서 반을 증설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취업준비생들은 바뀐 채용 시스템과 관련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인사 담당자와 취업 전문가들은 필기전형과 NCS 필기시험 및 면접, 그리고 직무 관련 경험을 강조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블라인드 확산지원단 관계자는 “블라인드 채용 시 서류에서 평가하는 건 기본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필기와 면접에서 그 사람이 우리 회사에 얼마나 맞는지, 직무에 얼마나 적합한지를 더 자세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지원하는 기관과 부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류정석 CDC취업컨설팅 대표는 “해당 공공기관이 가진 세부과제와 부서별 역할을 제대로 파악하고, 자신이 그러한 과제 수행에 있어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를 인턴 경험과 특정 기술 등 직무 관련 역량을 드러내면서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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