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선 블랙리스트 사건 ‘2라운드’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7.08.0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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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블랙리스트 존재 알았을 수 있지만 객관적 증거 없다” vs 특검 “항소할 것”

 

법원이 최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블랙리스트 개입 사건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거센 비난 여론이 확대되고 있다. “조 전 장관이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재판부가 판단하면서도 “객관적 증거는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조 전 장관은 7월27일 열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조 전 장관에게 국회 위증죄만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는 “(조 전 장관이) 지원배제 행위를 지시∙승인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조 전 장관이 정무수석에 취임하기 전에 이미 문제 단체들에 대한 조치 보고서가 작성됐고, 정무수석실 소통비서관이 지원 배제 업무를 했으며, 정무수석실이 의견을 내고 점검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조 전 장관이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알았을 가능성을 재판부가 일정 부분 인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린 배경은 무엇일까.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관여한 혐의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7월27일 오후 석방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블랙리스트 인수인계” 증언…法 “개괄적 보고에 불과”

 

‘증거 부족’이 이유였다. 재판부는 2014년 9월 당시 조 전 장관을 비롯한 정무수석실이 영화 ‘다이빙벨’의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저지를 위한 구체적 대책 마련을 논의하고 지시한 사실을 인정했다. 당시 정무수석실은 시민단체를 동원해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상영이 될 경우 영화관 좌석을 일괄로 매입하는 방법 등을 논의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지원금 삭감 방안까지 정무수석실에서 논의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이 “정무수석 부임 후 ‘알고 계시라’는 정도로 관련 업무를 설명했다”고 증언한 것을 언급하면서 조 전 장관이 부하 직원들을 통해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보고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에 대해 “개략적으로는 보고한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 지원 배제 사실까지 보고한 것으로 볼 수 없고, 다른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전임자였던 박준우 전 정무수석이 후임자인 조 전 장관에게 블랙리스트 관련 인수인계를 해줬다고 증언했지만 재판부는 이 인수인계를 ‘개괄적인 설명’만을 해준 것으로 판단했다. 또 정무수석실에서 자금지원 배체 단체를 정리한 정무리스트가 발견됐지만, 작성자와 작성 경위가 불분명해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봤다.

 

부하 직원들이 법정에서 한 증언도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 박아무개 전 정무비서관실 행정관은 법정에서 “2014년 12월 무렵 당시 정무수석 보좌관으로부터 ‘조 수석(조 전 장관)이 지원배제 문제로 난감해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지만 정작 말을 했다는 해당 보좌관이 대화 내용을 부인해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았다. 엇갈린 진술을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점이 결정적 판단 근거로 작용했다. 법원은 조 전 장관이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2015년에 블랙리스트 관련 서류에 서명하거나 보고한 흔적 등의 증거가 확보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정관주 전 비서관은 조윤선 당시 정무수석에게 블랙리스트 업무를 보고한 사실이 없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정 전 비서관이 법정에서 ‘조 당시 수석에게 한 번 정도 보고를 했다면 지원배제 업무가 중단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후회가 된다’고 진술한 내용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이를 근거로 “정 전 비서관이 블랙리스트 명단을 기존부터 진행되고 있던 업무로 여기고 자신보다 먼저 부임한 조 전 수석에게 보고하지 않았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부터),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정관주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이 7월27일 오후 선고 공판을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부하는 ‘유죄’ 받았는데 상관은 ‘무죄’?

 

블랙리스트 사건의 핵심 위치에 있는 청와대 정무수석과 문화체육부 장관을 지낸 조 전 장관은 무죄로 빠져나가고, 교육문화수석과 실무를 담당한 비서관들은 유죄 판단을 받은 점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경우, 블랙리스트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는 비서관의 진술 내용이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는 점도 주목된다. 재판부는 김 전 수석에 대해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범행을 문체비서관으로부터 보고받고 이를 승인함으로써 교문수석실 배제 지시가 문체부에 하달되도록 했다”며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당시 정무수석실 소속 신동철 비서관과 정관주 전 비서관도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 혐의에 대해 모두 실형을 선고 받았다. 과연 이들이 조 전 장관 모르게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실행을 했겠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판사 출신인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월31일 “재판부가 특검에서의 진술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법정에서의 증언만 부각시켜 그것을 믿은 것”이라며 “신동철 비서관의 진술, 김상률 정무수석의 진술이나 증거만 가지고도 재판부도 (조 전 장관이) 알았을 것 같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직접적으로 승인하거나 지시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검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적용된 블랙리스트 관련 직권남용 및 강요 혐의가 1심에서 모두 무죄로 판결 난 것에 당혹해 하면서 일찌감치 항소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형에 비해 형량이 크게 낮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다른 피고인들에 대해서도 판결문 분석을 마친 뒤 항소 여부를 결정짓기로 했다. 특검 관계자는 “1심 판결 다음 날부터 세밀한 판결문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항소 대상 등 구체적인 내용은 분석을 마친 뒤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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