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재량사업비 비리 ‘권력형’으로 비화되나
  • 정성환 호남지역본부 본부장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7.08.02 16: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속된 브로커 A씨 “현직 도의원도 여럿 연루”…검찰 수사 칼끝 어디까지 갈지 주목

 

전북도의회 재량사업비 비리 사건이 ‘권력형’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찰 수사의 칼날이 개인 비리를 넘어 지역 정치권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정가에서는 “리베이트에 연루된 의원이 한 두 명이 아닐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검찰 역시 지역 도의원들의 사무실을 대상으로 잇달아 압수수색에 나섰다. 수사 상황에 따라 지역 정가의 ‘지각변동’까지 예상되고 있다.

 

‘재량사업비(주민 숙원사업비)’란 의원들이 지역구나 상임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재량껏 사용할 수 있는 ‘선심성 예산’을 말한다. 전북도의회의 경우 의원 38명이 1년 동안 임의로 쓸 수 있는 예산이 190억 원가량이다. 의원 1인당 5억5000만원 수준이다. 도청 예산 4억5000만원과 도교육청 예산 1억원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일선 시·군의원의 경우 자치단체 상황에 따라 1~3억원 가량이 배정된다는 게 전·현직 지방의원들의 얘기다.

 

주민참여예산 성격인 만큼 지방의원들이 골목길 정비나 경로당 보수, 농로 포장, 학교 화장실 개선 등 다양한 민원을 빠르게 해결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문제는 엄청난 예산이 지방의원의 ‘생색내기용’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의원의 경우 재량사업비를 리베이트 창구로 삼는 등 역기능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8월2일 전주지검 수사관들이 재량사업비 비리와 관련해 전북도의회 의원실 2곳을 압수수색하고 관련 서류 등을 들고나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혐의 부인 브로커 A씨 구속 후 수사 ‘급물살’ 

 

이번에 불거진 전북도의회 재량사업비 비리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수사 초기만 해도 검찰은 구속된 브로커 A씨의 단순 비리에 집중했다. A씨는 2012년부터 2016년 9월까지 “재량사업비 관련 사업을 수주해 주겠다”며 의료용 온열기나 배관설비 업체 3곳으로부터 2억5000여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A씨는 업자들에게 “재량사업비 관련 사업을 수주해 줄 테니 매출액의 40%를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7개월여 간의 수사 과정에서 검찰 칼끝이 정치권으로 급선회했다. 현재까지 검찰은 전·현직 전북도의원 2명과 브로커 2명을 구속했다. 7개월에 걸쳐 수사력을 집중한 것 치고는 성과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브로커 A씨가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검찰은 A씨가 평소 도의원뿐 아니라 국회의원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일감 수주를 자신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7월19일 구속된 전북지역 한 인터넷 매체 대표 A씨가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혐의에 대해 일부 진술을 했다. A씨는 구속 이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재량사업비 리베이트와 관련된 전북지역 유력 지방의원 등의 이름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A씨의 긴 침묵에 속앓이를 해왔던 검찰이 다양한 수사기법을 통해 현직 의원으로 향하는 물고를 튼 것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현재 구속된 두 명의 브로커 외에 제3의 브로커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한 때 유력 지방의원이기도 했던 B씨는 의원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재량사업비 브로커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근 B씨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검찰은 현재 B씨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하기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져 구속영장 청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구속된 브로커에 대한 검찰 수사가 강도를 더해가면서 거론되는 지방의원 수도 7~8명으로 확대되고 있다. 검찰은 내주 초까지는 수사를 일괄 매듭짓겠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현재 구속된 A씨와 또 다른 2~3명의 업자를 상대로 의원들의 개입 여부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앞서 검찰은 6월2일 전북도의회 한 전문위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전방위로 수사를 확대해 왔다. 전주지검 관계자는 “사건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늦어도 다음 주 초에는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혀 검찰수사가 끝을 향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지역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 사건의 본질을 A씨 개인의 단순한 변호사법 위반 사건이 아니라 지역 정가 인사들이 대거 연루된 ‘권력형 비리’로 보고 있다. 검찰이 A씨를 상대로 한 조사에서 전·현직 지방의원들과 직접 연결되는 진술과 물증을 확보할 경우 수사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수사 결과 따라 내년 지방선거 ‘지각변동’ 가능성

 

검찰수사 칼날이 점차 자신들을 향하면서 전북도의원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검찰 수사의 타깃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나는 아니다. 다른 의원인 것으로 안다”며 ‘폭탄 돌리기’를 할 정도다. 한 전직 도의원은 “실제로 업자들이 찾아와 리베이트 10%를 제안하며 공사를 요구해 왔다”며 “상당수 의원들이 이 같은 유혹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A씨가 검찰 조사에서 거론한 것으로 전해진 한 전북도의원은 “사실대로 밝혀질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또 다른 전북도의원은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고, 다른 의원은 혐의점이 약해 일단 검찰 수사선상에서 비켜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전주지검은 8월2일 A씨가 거론한 2명의 전북도의원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이들 의원의 혐의점을 밝히는데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이날 오전 의원들 사무실에서 수사관을 급파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관련 서류 등을 확보한 터여서 향후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지역 정가에서는 ‘2차 후폭풍’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지역 수해 상황에서 해외 연수를 떠난 4명의 충북도의원들이 최근 논란을 빚었다. 주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외유를 떠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학철 도의원의 경우 국민을 ‘레밍(lemming․쥐의 일종)’에 비유하며 비난 여론이 더욱 불이 붙었다. 현지 주민들이 당차원의 징계와 함께 도의원직 사퇴까지 요구할 정도였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재량사업비 커넥션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후폭풍’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내년으로 예정된 지방선거에서 ‘지각변동’이 올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유럽 연수에서 돌아온 김학철(왼쪽), 박한범 충북도의원이 7월23일 충북도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검은 거래 악용된 재량사업비 논란

 

전북 재량사업비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면서 생색용 사업과 검은 거래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재량사업비에 대한 논란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재량사업비를 사용하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거나 자신과 관련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리베이트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부 의원들은 타 지역 의원과 ‘품앗이 집행’을 하거나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 의원 몫을 가져다 사용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전북도의회 등에 따르면, 상당수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가 아닌 다른 지역구에 재량사업비를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에만 도내 학교에 8개 사업을 지원한 B의원은, 이 가운데 6건을 다른 지역구에 썼으며 공사를 담당한 업체도 모두 같은 업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영수·노석만 전 도의원은 업체들에게 일감을 몰아주고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로 기소돼 법의 철퇴를 맞기도 했다. 전북도의회는 지난 6월 재량사업비가 자칫 비리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의원들의 재량사업비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한 전직 전북도의원 K씨는 “상당수 의원들이 재량사업비를 놓고 업자들과 짬짜미를 통해 10%가량 리베이트를 주고받는 것은 상식”이라며 “나 역시 업자가 찾아와 거래를 제안했을 때 자괴감이 들었다. 동료 의원들이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재량사업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예전부터 가졌다”고 털어놓았다.

 

한 전직 군의원도 “의원들의 본연 임무는 행정에 대한 견제와 감시인데, 행정기관으로부터 예산을 받아내 쓰는 의원들이 과연 행정에 대해 날카로운 견제와 감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겠느냐”며 “이번 일을 계기로 ‘재량사업비’라는 그릇된 관행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감사 또는 심사해야 하는 지방의회의 기능을 상당 부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지방의회가 자치단체 예산 집행 과정에서 ‘거름막(필터)’ 역할을 못하게 막고 지방의회의 행정 종속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때 전북도의회에서는 재량사업비로 의원들을 통제하는 이른바 ‘집행부 장학생’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부 지자체의 경우 ‘재량사업비’는 사라졌지만 지방의원들의 생색내기용 지역구 사업비 챙기기는 여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전남의 한 도의원은 “지역구 사업을 외면할 수 없어 시·군과 상의해 전남도에 건의했다”고 털어놨다. 물론 이 도의원의 말처럼 소규모 주민숙원사업 예산 편성 절차는 예전과 다르다. 재량사업비가 폐지되기 전까지만 해도 도의원들이 자신의 재량사업비 몫에 맞춰 작성한 사업 목록을 집행부에 전달하면 그대로 예산이 세워졌다. 집행부의 가장 중요한 권리인 ‘예산 편성권’을 도의원들이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 이유다.

 

그러나 최근에는 각 시·군이 사업 추진을 건의하면 도가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 도의원들이 개입, 자신의 지역구 사업을 챙기면서 유권자들에게 생색을 내는 것이다. 일선 자치단체 관계자들은 “의원 재량사업비를 편성하지 않을 경우 행정이 마비된다”며 “‘재량사업비’라는 명칭은 사라졌지만, ‘주민 숙원사업비’ 등의 명칭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이를 없앨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