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비정규직 증가에 시름 깊은 일본
  • 일본 도쿄 = 임수택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08 15:20
  • 호수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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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비정규직 문제’ 한국과 정반대의 길 걷는 일본 고용시장의 변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의 대기업 총수들과 ‘호프 미팅’을 가졌다. 여기서 정부가 대기업에 당부한 것은 ‘일자리 늘리기’였다. 이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 초기 성패가 일자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전환도 포함된다. 그만큼 한국에선 젊은이들의 취업난 해소와 정규직 고용 문제가 첨예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전혀 다른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한국보다 10~20년을 앞서간다는 일본의 지금 상황은 곧 우리의 머지않은 미래를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해서 더욱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필자가 방문한 7월 말 일본 도쿄 도심과 주변의 많은 곳에선 신·재건축 공사가 한창이다. 일본 경제는 완전히 터널에서 벗어나 되살아난 듯하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시부야 주변이 새롭게 단장되고 있다. 토지 가격이 제일 비싼 긴자도 최근 새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도쿄 주변 다마(多摩) 지역은 새로운 비즈니스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경기 호전과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도심이 활기차다. 미쓰이 부동산과 노무라 부동산은 도쿄의 중심지 니혼바시(日本橋) 일대에 수조원 규모의 재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지금 일본의 고용시장은 일대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도심 중심과 주변 지역의 개발, 도쿄 올림픽 준비, 인구 감소 등으로 인해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종신고용제의 붕괴로 대기업에 들어간다 해도 안정적인 수입이나 미래가 보장된다는 환상은 이미 무너졌다. 100세 시대를 맞이해 개인의 행복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성향이 늘고 있으며, 성공 이외의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도 뚜렷해지고 있다.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여 비교적 쉽게 부업을 할 수 있다는 점과 자신이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의식도 바뀌고 있다. 일본 젊은이들은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더라도 일본에서의 생활이 안전하고 편리하고 자기실현이 쉬운 사회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트렌드 속에서 노동시장 구조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도쿄의 한 증권사 주식시세 전광판을 중노년 남성이 들여다보고 있고, 청년 남성은 지나치고 있다. © AP 연합

 

일본 기업의 정규직 구인난 지속돼

 

한국과 중국 중심의 해외 컨설팅 사업을 하고 있는 케이즈뷰의 고우야마 사장은 최근 “기존 컨설팅 업무에서 인재파견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고우야마 사장은 현재 베트남 인력을 모집해서 현장에 알선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인재파견·건설 분야를 비롯해 정보서비스·경비·의료복지·운송·서비스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산업에서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의 인력부족뿐만 아니라 정규직 사원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기준으로 유휴구인배율이 1.01배다. 즉 기업에서 사람을 구하는 비율이 구직희망자보다 더 많다는 뜻이다. 지난 2004년 이후 1배를 넘은 것은 처음이다. 파트타임 숫자까지 포함하면 1.51배로, 버블이 피크였던 1990년 7월의 1.46배보다 더 높다. 이 같은 현상은 도쿄도 내에서만 보면 훨씬 더하다. 도쿄도 내의 유휴구인배율은 2.08배로 매달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운송·우편 업무나 숙박·음식·서비스업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이처럼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정규직을 구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고용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정사원이 부족한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비정규직 사원 비율은 버블 붕괴 이후인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에 걸쳐 크게 상승했다. 하지만 당시엔 경기침체로 인한 비정규직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 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비정규직이 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고용 인식의 변화 때문이다. 첫째는 근로시간이나 업무 내용 등의 면에서 비정규직 취업 형태가 자신에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정사원으로 일할 만족할 만한 회사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수입이나 전문 능력을 발휘하는 데 비정규직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단시간 근무 자체를 선호하는 데다가, 지방으로 전근하지 않아도 되는 매력 때문이다. 즉 돈보다는 자기만의 여유를 갖고 자아실현과 공동체 활동을 선호하는 자발적 비정규직 선호자들로 인해 정규직 인력 부족 사태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일본 상황, 얼마 후 우리의 모습 될 것

 

일본에서 정규직이 줄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이유에는 임금에 비해 노동 강도가 높다는 점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2015년 12월 과로와 업무 스트레스로 덴쓰의 직원이 자살한 사건은 상징적인 예다. 일본의 세계적인 광고 회사 덴쓰는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장이다. 하지만 직원의 자살을 계기로 기업의 과도한 노동량과 스트레스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기업들은 인재 유치를 위해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덴쓰는 ‘잔업 제로’를 추진하고 있다. 2019년까지 총노동시간을 2014년에 비해 20% 줄여서 잔업을 제로에 가깝게 한다는 계획이다. 로봇에 의한 업무자동화, IT(정보기술) 분야의 투자 또한 노동 시간을 줄이는 데 목적이 있다. 밤 10시 이후에는 소등하는 제도도 도입했다. 덴쓰의 시도는 일본 내 다른 기업들에도 전파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택근무 확대, 노동시간 선택 자유제도, 남녀의 육아 휴가 제도 등 여러 가지 근무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최근 일본 노동시장의 특징은 인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임금 상승 폭이 낮다는 점이다. 여성이나 고령자의 단시간 노동자가 증가하고,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숙박·음식점·의료복지·소매업 등에서의 노동 수요 증가로 인한 현상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일본의 생산연령인구 감소가 낳은 불가피한 현상이기도 하다. 기업 입장에선 정규직 인재확보를 위해 시급을 올릴 수 있지만, 문제는 노동생산성이 올라가지 않으면 인건비 부담 탓에 지속적인 임금 상승이 어렵다는 점이다. 단시간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노동생산성을 높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일본 기업들은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동화 등에 더 투자할 수밖에 없다. 실제 최근 기업들은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 등에 투자해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생산연령인구 감소로 인한 구조적 인력부족, 젊은이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단시간 근무 선호 등 고용 인식의 변화, 임금상승과 노동생산성 향상 비대칭 등의 문제 해결이 대기업·중소기업 할 것 없이 일본 경제의 중요한 과제로 부상되고 있다. 또한 이는 불과 얼마 후 바로 우리의 모습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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