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행보를 통해 다시 돌아 본 그의 어록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0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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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또 다시 벼랑 끝에 선 안철수의 행보 그리고 그의 메시지

 

국민의당 제보 조작 파문은 정당의 구태 행위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국민들에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분노했지만 위기의 순간에도 대선 후보였던 안철수 전 대표는 제보 조작 파문에 대해 침묵을 유지했다. 언론에서는 매일 안 전 대표의 입장 표명을 기다린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마침내 잠행(潛行)을 깨고 언론을 통해 드러낸 그의 한 마디. “모든 책임을 제가 지고 가겠다.” 이후 그가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느냐에 대해 언론과 전문가들의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때마침 식물정당이 된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으로 흡수 통합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자 다시 한 번 안 전 대표는 칼을 뽑아 들었다.

 

예상치 못한 그의 당 대표 출마 선언. 분명 많은 이들이 안 전 대표의 출마에 대해 극구 만류했으리라 생각한다. 제보 조작 파문으로 인해 그의 새정치 브랜드는 치명상을 입었고 구속된 이들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안철수의 인재 영입 1호’ 또는 ‘안철수의 최측근’이라는 키워드로 국민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선당후사’를 외치며 안 전 대표가 다시 국민의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으니 그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2011년 교수 재직 시절부터 여론의 추이와 민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온 그가 민심의 흐름을 거스르고 출마하기까지는 물론 많은 딜레마와 고민이 존재했을 것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8월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전당대회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안 전 대표가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조기 등판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 더불어민주당으로의 흡수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5년 전, 대선에 출마하기 이전에도 그는 양당제를 싸잡아 비판했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양당제가 우리나라 정치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좌 또는 우가 아닌 중도적 입장에서 사안에 따라 진보 또는 보수의 입장을 표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정치 지론(持論)이다. 이런 면에서 안 전 대표는 또 다시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으로 흡수 통합된다면 한국 정치의 퇴보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의 선의(善意)를 믿고 싶다.

 

그가 조기 등판한 두 번째 이유는 바로 당권 장악을 통한 대선주자로서의 재도약에 있다. 대선 패배 이후 상당수 전문가들이 그의 정계 은퇴를 예상했지만 안 전 대표는 예상과 달리 차기 대선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표방했다. 내년에 치러질 지방선거, 2년 후 총선, 다시 2년 후 대선으로 이어지는 향후 5년의 흐름은 차기 대선을 모색하기 위한 끊임없는 당권 투쟁의 연속이다. 이 과정에서 동교동계가 아닌 자신이 당의 중심을 잡고 확고하게 공천권과 영향력을 행사해야 향후 대선을 안정적으로 돌파할 수 있다. 극중주의를 표방한 이유도 새로운 가치를 토대로 ‘안철수와 새 인물’을 찾아 당을 자기중심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의지 표명이다.

 

그러나 안 전 대표의 이번 당 대표 출마는 아쉽게도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은커녕 공감도 주지 못하고 있다. 2014년 새정치연합을 창당했을 때 그는 “낡은 정치를 타파하고 새 틀을 만드는 정치를 하며 삶의 정치, 국민을 묶어내는 통합의 정치를 구현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선거가 닥쳤다고 해서 승리를 목적으로 연대하는 것은 새정치가 아니기에 끝까지 독자 세력화할 것이라는 그의 외침에 많은 국민들이 기대와 희망을 보낸 지 얼마 안 돼 그는 “새정치에 맞는 참신한 인물을 확보하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기존 정당을 탈바꿈시키는 것도 의미 있다”는 한 마디 이유로 민주당과의 통합을 진행해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기존 정당의 수장에 올라섰다.

 

그러나 이후 친노 세력에 의한 민주당의 일방적 의사결정 과정에 한계를 느꼈다는 그는 국민의당을 다시 창당해 ‘제4의 길’이라는 독특한 노선을 표방했다. 1년 전,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안 전 대표는 “제4의 길은 보수는 진보적 가치를 찾아가고 진보는 보수의 길을 탐색하는 역발상이 더해진 길”이라며 새정치에서 제4의 길이라는 다소 모호한 방향으로 지향점을 탈바꿈시켰다. 새정치의 모호함에 이어 난데없이 등장한 제4의 길은 도대체 어디로 향하는 길이며 국민의당은 정확히 어떤 진보적 가치를 찾아가고 어떤 보수의 길을 탐색한다는 건지 추상적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시 실체가 모호한 ‘극중주의’를 들고 나섰다.

 

안 전 대표는 당권 장악을 위한 조기 등판의 명분으로 ‘극중주의(極中主義)’ 실현을 강조했다. 사실 극중주의라는 말은 새로운 용어가 아니다. 국내에서는 2년 전, 김환영 중앙일보 기자가 자신의 칼럼을 통해 ‘극단적인 중립, 중도가 필요하다’며 극중주의(Extreme Centrism)의 필요성을 이미 지면에 옮겼기 때문이다. 김환영 기자는 ‘모든 정파에 대해 중립적, 중도적, 객관적 자세를 취한다’는 의미로 극중주의를 설명했지만 안 전 대표는 ‘이념으로부터 벗어난 실용 및 합리주의 노선’이라고 극중주의의 개념을 소개했다. 다만, 안 전 대표의 설명과 달리 프랑스의 최연소 대통령 마크롱이 자신의 정책 노선을 극중주의라고 표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안 전 대표가 5년 전에 강조한 새정치는 그래도 명분이 있었다. 기득권에 집착하고 지역주의에 편승하는 기존 정치의 구태를 제거하고 양당제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척결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많은 대중에게도 읽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 그가 언급한 ‘제4의 길’,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극중주의’는 명분도 없고, 여전히 실체가 모호한 미사여구뿐이다. 정치적, 학문적으로 정립돼 있지 않은 용어일 뿐만 아니라 가운데 지점을 표방하는 중립적 영역을 극도로 추구하겠다는 극중주의 논리는 향후에도 모호한 스탠스만 지속적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한 마디로 비전이나 신념이 갖춰야 할 필수 요소인 방향성이 없다.

 

이쯤에서 안 전 대표가 교수 시절 청춘콘서트를 통해 많은 대학생들에게 해준 그의 어록을 세 가지만 살펴보자. 안 전 대표는 교수 시절부터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왔다고 강조했고 함부로 약속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안 전 대표는 과거 교수 시절 “원칙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지킬 때 의미가 있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과감히 버리고 원칙에 충실하면 당장은 손해인 듯 하지만 결국 그것이 옳은 결정이었음을 알게 된다”고 언급해 많은 학생들에게 감동을 줬다. 지금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안 전 대표는 정말 손해를 보면서까지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가? 그의 답변을 듣고 싶다.

 

필자가 기억하는 그의 두 번째 어록은 다음과 같다. “나는 영리하고 빠른 조직과 느리더라도 건강한 조직 중 하나를 택하라면 느리더라도 건강한 조직을 택할 것이다.” ‘영혼이 있는 승부’ 라는 자신의 도서에서 직접 강조한 이 메시지는 수많은 벤처기업가와 성장이 더디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위해 달려 나갔던 많은 기업가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해줬다. 빠른 조직보다 정도를 걸으며 천천히 발전하는 조직이 가장 좋은 조직이라고 안 전 대표는 수많은 강연에서 강조했다. 지금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안 전 대표는 정말 느리더라도 건강한 조직을 추구하고 있는가? 그의 답변을 듣고 싶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기억하는 그의 세 번째 어록은 다음과 같다. “기업의 핵심가치는 실제로 모든 사람이 수용 가능하다고 믿을 정도의 설득력을 전제로 구체화돼야 한다.” 기업이든 정당이든 조직의 핵심가치가 모호하고 구체화돼 있지 않으면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없고 모두가 조직의 핵심가치를 공유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안 전 대표는 정말 국중주의가 설득력을 전제로 구체화됐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의 답변을 듣고 싶다.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다가 온 기회는 오히려 불행이라고 강조해 왔던 안 전 대표의 또 다른 어록이 자꾸만 무겁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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