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2일 MB-朴 무슨 밀담 주고받았기에…
  • 박혁진 기자 (phj@sisajournal.com)
  • 승인 2017.08.14 12:37
  • 호수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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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108일 전 MB-朴 독대 이후 국정원 댓글팀 문재인·안철수 비방전 시작

2013년 검찰의 국가정보원(국정원) 댓글 수사 당시 정권의 턱밑에 칼을 들이댈 정도로 수사가 탄력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우연하게 발견된 하나의 파일 때문이었다. 국정원 댓글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당시 수사와 관련해 사석에서 기자에게 한 말이다.

 

“수사는 운이 많이 작용한다. 어떤 조그마한 단서 하나가 전체 물줄기를 바꾼다. 국정원 트윗팀(심리전단)이 대부분 30대 젊은 직원들로 구성됐는데, 딱 한 명 더 이상 승진이 불가능한 50대 ‘대우’ 사무관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사무관이 이메일에 관련 첨부파일을 하나 지우지 않고 있다가 그것을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하면서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012년 9월2일 청와대에서 열린 단독 오찬회동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당시 국정원 댓글 수사팀은 로그기록이 담겨 있는 이 첨부파일 하나로 다른 IP(한 컴퓨터에서 다른 컴퓨터로 데이터를 보내는 데 사용되는 프로토콜)를 추적하기 시작했고, 국정원의 광범위한 댓글 작업 실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댓글 수사팀은 IP 추적에 필요한 영장을 최소 100여 개 이상 청구했는데 법원이 이것을 100% 발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 발부율이 100%라는 것은 검찰 내부에서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법원이 그만큼 국정원 댓글팀의 광범위한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인정했단 의미다.

 

 

MB 정부 국정원, 내부 권력투쟁 후 정치 개입

 

국정원 댓글 수사팀은 2013년 6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한 후에도 이 IP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수사를 진행해 나갔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상에서 일어난 대선 개입 여부를 밝혀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국정원 댓글 수사팀의 수사는 거기까지였다. 수사팀의 방패막이나 다름없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갑작스러운 혼외자 의혹에 휘말리며 낙마했다.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지검장에게 잇따른 압력이 들어온 것도 비슷한 시기다. 결국 윤 지검장이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하는 상황까지 벌어졌고, 이후 댓글 수사팀은 공중분해됐다. 만약 당시 수사가 계속 진행됐다면, 수사는 심리전단의 대선 개입 활동을 넘어 최근 국정원 적폐청산 TF에서 발표한 국정원 민간인 사이버 외곽팀인 알파팀이 그 실체를 진즉에 드러냈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국정원 적폐청산 TF에서 발표한 국정원 사이버 외곽팀 관련 내용은 이명박 정부 시절 원세훈 전 원장 취임 이후 국정원 심리전단에서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민간인이 포함된 알파팀 등 총 30개 사이버 외곽팀을 운영했다는 게 골자다. 국정원의 사이버 외곽팀 운영, 직원들의 대선 개입은 이명박(MB) 정부 국정원이 국민을 위한 정보기관이 아닌 권력을 위한 기관으로 변질됐다는 방증과 다름없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은 내부 권력투쟁의 결과물이었다. MB 정부 국정원은 원세훈파와 반(反)원세훈파로 나뉘어 치열하게 권력다툼을 했다. 국정원 내에서 일어나는 일이 외부로 흘러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반원세훈파가 원 전 원장의 관용차량에 위치추적장치를 붙였다는, 이전 국정원에서는 농담으로라도 나오지 않았던 괴소문이 외부로 새어나왔다. 원 전 원장과 대립각을 세우다 지방으로 좌천됐다는 직원들의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7월24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선 개입 의혹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극한 내홍 끝에 권력을 잡은 원 전 원장은 국정원을 정권의 시녀로 전락시켰다. 진보 시민단체 회원을 미행하다 꼬리를 밟히는가 하면, 박원순 서울시장 재직 중 서울시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몰아 기소했다. 사이버상에서 대선에 개입한 사건이야말로 국정원의 정치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국정원장이 국정원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국정원이 보수 이데올로기를 지키는 ‘방위대’에서 보수정권 연장을 위한 ‘돌격대’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서부터다.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장면이 바로 2012년 9월2일 대선을 정확하게 108일 앞둔 시점에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무려 100분간 독대를 한 것이다.

 

200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대립한 두 사람은 이후 같은 당 소속이면서도 사실상 야당보다 더 껄끄러운 관계였다. 이명박 정권 출범 당시 친박(親박근혜) 인사를 배제시킨 것은 물론이고 2008년 제18대 총선 공천에서도 계파갈등이 심화됐다. 이명박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였던 세종시 수정 추진이 박 후보 측의 반대로 무산되는 결과를 불렀다. 신공항 백지화에서도 양측 의견이 대립했고, 제19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에서 친이(親이명박) 인사들이 차별을 받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이 대통령의 측근과 친인척 비리가 터지자 이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불거졌으며 새누리당 정책공약은 현정부와의 차별화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두 사람이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갑작스럽게 독대를 하자 그 의미를 두고 해석이 분분했다. 청와대와 박 후보 측은 민생경제, 치안 강화를 주제로 100여 분간 배석자 없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고 했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야당은 청와대의 선거 개입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MB-朴 독대, 일종의 ‘아그레망’

 

이날 두 사람이 100여 분간 나눈 독대 내용은 여전히 봉인돼 있다. 이날 독대 후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권력 주변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사저널과 만난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국정원이 각종 포털이나 인터넷 사이트에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고,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댓글을 단 여론전을 한 시점은 대선 100여 일을 전후한 시점부터다”라고 말했다. 

 

원세훈 전 원장의 공소장에서도 이런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 국회 법제사법위원들이 2013년 10월 법무부로부터 확보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소장변경허가신청서와 별지 등을 보면 다음과 같은 공소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자료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문재인 대선후보를 비방하는 인터넷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받은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아무개씨가 2012년 12월1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자신의 오피스텔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정원 직원들은 지난해(2012년) 9월1일부터 12월18일까지 5만5689회에 걸쳐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를 지지·찬양하거나, 민주당과 문재인·안철수 후보를 반대·비방하는 트위터를 했다.”

 

2012년 9월1일은 MB와 박근혜 후보 두 사람의 회동 하루 전이며, 12월18일은 대통령선거 하루 전이다. 국정원은 수만 건의 댓글이나 트위터 작업을 했는데 주로 아래와 같은 내용들이었다.

 

- 대통령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다. 찰스나 재인이가 대통령 할 바에 차라리 개나 소 시키세요”(9월2일, 국정원 직원 작성)

- 문재인 종북은 사회에서 배제돼야 빙고! 옳은 말씀(9월3일, 리트윗)

- 50~70년대를 살아본 세대들은 박정희 이름 석 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9월13일, 리트윗)

- 박근혜의 친근한 미소, 문재인의 놀란 토끼 눈, 안철수의 느끼한 능구랭이 얼굴(9월18일, 국정원 직원 작성)

- 문재인이 왕수석 시절에 청와대 80%가 주사파였죠(9월24일,리트윗)

- 노무현이 괜히 자살한 게 아니다. 이런 자를 등에 업고 대선 나온 문재인 뻔뻔(11월21일, 국정원 직원 작성)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주장을 오래전에 한 바 있다. 그는 2013년 12월20일 국정원 대선 개입과 관련,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연관돼 있다고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이 전 대통령의 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그는 이날 ‘대선 전 2012년 9월2일 100분간 ‘단 두 분’께서 무슨 말을 나누었나요?’란 팻말을 들고, 두 사람의 독대 후 국정원 댓글 작업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정 전의원은 이와 관련해 8월11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청와대 있던 지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9월2일, 밑에 사람들을 다 물리고 단독해서 만났다. 1시간 예상했는데 30분을 더 했다. 그리고는 급격하게 친해졌다. 대선 가지고 협상했을 가능성이 있고, 그 대화기록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지금 보면 댓글만 가지고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최순실 관련 얘기도 했을 것이다. 아마 (MB가 박 후보에게) ‘모든 걸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나 치지 마라’ 그랬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이후에 황우여 전 부총리한테 또 들었다. ‘(박 후보가) MB를 절대 못 친다. 자기는 결점이 없는지 아냐.’ 그게 나중에 보니 댓글, 최순실 이런 얘기였었던 거다. 실제로 독대 후인 9월8일인가 9월9일에서부터 댓글 수가 확 늘게 된다. 두 사람의 독대로 일종의‘아그레망’(외교사절을 파견하는데 상대국에게 얻어야 하는 사전 동의)이 형성된 것이다.”

 


NLL 대화록 유출도 비슷한 시점 공개

 

국정원이 댓글 작업과 함께 2012년 대선에 개입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또 하나의 사건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의혹이다. 역시 두 사람의 독대 후 벌어진 일로, 청와대 보관용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담록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폐기됐다는 주장이었다. 의혹의 핵심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국가정보원 원본과 청와대 사본으로 나뉘어 보관됐지만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 폐기를 지시하면서 청와대 보관용은 파쇄되고 국정원 원본만 보관돼 있다는 것이다. 한 보수언론을 통해 이 내용이 보도되자 새누리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역사기록을 말살하는 충격적 행동”이라며 문재인 후보를 공격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이 대선 유세 현장에서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며 당시 정상회담 대화록에 담겨있는 것과 거의 유사한 내용을 언급했다. 이 논란은 문재인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했고, 국정원은 기다렸다는 듯 사본을 검찰에 제출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불거지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곳이 바로 국정원이다. 이는 국정원이 지난 대선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선거에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의 시점이 두 사람의 독대 후에 벌어졌다는 점은 적어도 두 사람 간 대화에서 세부적이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 합의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돼 있는 시점에서 모든 의혹의 칼날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기관인 국정원이 대통령의 재가 없이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상식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전직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기자에게 “원세훈 전 원장이 독자적으로 판단했다고 하지만, 대선 개입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혼자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았겠지만 큰 틀에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전에 알았을 가능성은 99%”라고 말했다. 국정원의 각종 선거 개입에 대한 이 전 대통령의 사전 인지 여부는 향후 국정원 적폐청산 TF 조사 과정에서 계속 논란이 될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커진 시점에서 두 사람이 위기를 느꼈을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후 안전판을 마련해야 했고, 박 후보는 대통령 당선이란 절대적 목표가 뚜렷했었기 때문에 물불을 가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권력의 내리막에 있던 이 전 대통령이 먼저 제안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8월8일 서울중앙지검은 8월30일 예정된 원 전 국정원장의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두고 참고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국정원 적폐청산 TF에 자료 이첩 협조요청 공문을 보냈다. 검찰은 적폐청산 TF가 밝혀낸 내용이 2012년 대선 당시 원 전 국정원장의 선거 개입 의혹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증거가 되리라 판단한 것이다. 검찰은 자료를 넘겨받으면 공소장 변경을 염두에 두고 재판부에 변론 재개를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재판부가 예정대로 선고하더라도 검찰은 전면 재수사를 통해 원 전 국정원장을 추가 기소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최종 목적지는 원 전 원장 윗선이란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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