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달걀, 7개만 먹어도 치명적이라고?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7.08.1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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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에도 없는 단어 갖다 쓴 국내 언론의 ‘오버’…전문가들 “유해성 부풀리기 자제해야”

 

유럽에 이어 국내에서도 이른바 ‘살충제 달걀’이 발견되면서 소비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와중에 일부 국내 언론은 “오염된 달걀의 위험성을 과도하게 부풀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살충제 달걀이 국내에서 문제시된 것은 지난 14일이었다. 이날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산란계 농가에서 살충제 ‘피프로닐’이 검출됐다고 농림축산식품부가 15일 발표한 것이다. 피프로닐에 오염된 달걀은 앞서 유럽에서 먼저 발견됐다. 

 

8월16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이 이날 환불된 계란을 옮기고 있다. 국내산 친환경 농가 계란에서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전국 대형마트와 편의점, 온라인몰 등에서 계란 판매를 중단했다. © 사진=연합뉴스

 

‘살충제 달걀 스캔들’…유럽 이어 한국 강타

 

워싱턴포스트는 9일(현지시각) “벨기에 농림부에 따르면 독일 당국이 달걀에서 피프로닐 성분이 나왔다는 사실을 지난해 11월부터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 사이 오염된 달걀은 유럽 곳곳으로 퍼졌다. 네덜란드는 180개 농가를 임시 폐쇄하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피프로닐은 농가에서 사용이 금지된 물질이다. 오래 노출되면 두통이나 감각이상, 장기손상 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경우 피프로닐을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possible human carcinogen)’로 분류하고 있다. 

 

때문에 국내 언론은 15일 피프로닐에 오염된 달걀의 유해성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한겨레는 ‘독일연방유해평가원’의 보고서를 인용해 “몸무게 65kg 성인 기준으로 24시간 내 오염된 달걀 7개를 초과해 섭취하면 신체에 치명적 손상을 입힐 수 있다”면서 “16.15kg 아동은 24시간 내 1.7개 이상 먹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이후 조선일보, 뉴스1, 서울신문, YTN 등도 15~16일 같은 내용을 전했다. 

 

 

한겨레 등 “달걀 7개 먹으면 치명적 손상 입을 수도”

 

정말 피프로닐이 들어간 달걀을 7개만 먹어도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게 될까. 독일연방유해평가원은 9일 ‘동물성 식품의 피프로닐 양에 대해 자주 묻는 질문들(Frequently asked questions about fipronil levels in foods of animal origin)’ 보고서를 통해 달걀의 안전한 섭취량을 설명했다. 여기에 나온 원문은 다음과 같다.

 

Q: “급성참고섭취량(ARfD·독성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최대 허용섭취량)을 넘지 않는 선에서 한 사람이 달걀을 몇 개까지 먹을 수 있나요?

 

A: “벨기에에서 지금까지 측정된 피프로닐의 최대 검출량은 달걀 1kg당 1.2mg이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했을 때 몸무게 16.5kg의 아동이 달걀 1.7개(달걀 한 개의 무게 70g 기준)를 먹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 몸무게 65kg의 성인은 급성참고섭취량을 넘기지 않으면서 하루에 달걀 7개(한 번 또는 24시간 이내)를 먹을 수 있다.

 

최대치를 먹어도 급성참고섭취량을 넘기지 않는 한 건강상의 유해성은 나타날 가능성이 적다(health hazard is unlikely). 따라서 몸무게가 10kg인 대략 한 살짜리 아동은 하루에 달걀을  한 개씩 먹어도 급성참고섭취량을 넘기지 않을 수 있다. 급성참고섭취량을 초과한 섭취가 곧 건강상의 실질적인 위험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유효한 정보들에 따르면, 초과 섭취는 단지 오염된 달걀을 먹은 뒤에 위험이 나타날 가능성(possible)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독일연방유해평가원이 8월9일 발표한 보고서 ‘동물성 식품의 피프로닐 양에 대해 자주 묻는 질문들(Frequently asked questions about fipronil levels in foods of animal origin)’ 가운데 일부. © 사진=독일연방유해평가원 보고서 캡처

 

원문은 “위험 가능성 있다”… ‘치명적 손상’ 단어 없어

 

원문에서 보듯이, 독일연방유해평가원은 건강상의 위험에 대한 개연성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언론이 언급한 ‘치명적 손상’이란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독일연방유해평가원의 자료는 국내 사례에 적용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평가원이 기준으로 삼은 피프로닐 검출량이 우리나라의 경우와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15일까지 조사해서 발표한 벨기에 달걀의 피프로닐 검출량은 달걀 1kg당 0.0031~1.2mg이다. 독일연방유해평가원은 이 가운데 최대치인 1.2mg을 기준으로 성인과 아동의 달걀 섭취량을 계산했다. 반면 우리나라 농림축산식품부는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남양주시 소재 A농장에서 검출된 피프로닐은 0.0363mg/kg”이라고 밝혔다. 벨기에와 33배 이상 차이가 난다. 

 

국내 검출량을 기준으로 하면 오염된 70g짜리 달걀 하나에 들어 있는 피프로닐 양은 약 0.003mg이다. 그리고 피프로닐의 급성참고섭취량은 몸무게 1kg당 0.009mg이다. 즉 국내에서는 65kg의 성인이 하루에 오염된 달걀 195개를 먹어야 피프로닐의 독성이 나타나는 셈이다.  

 

국내 계란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며 교육 당국이 학교급식 긴급대책에 나섰다. 서울시교육청은 8월16일 각 학교에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전수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학교급식에 계란 사용을 중단토록 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날 점심시간에 서울 시내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학생들이 계란 반찬이 없는 급식을 먹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유럽이 기준삼은 피프로닐 검출량은 1.2mg, 한국은 0.03mg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실 김지영 주무관도 16일 시사저널에 “유럽의 사례를 우리나라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쨌든 (잔류허용) 기준치가 넘었기 때문에 달걀의 유통을 막고 폐기조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제 식품규격위원회 코덱스(codex)에서 규정한 달걀의 피프로닐 잔류허용기준치는 0.02mg/kg이다. 

 

중앙대 식품공학과 하상도 교수는 16일 “‘치명적’이니, ‘맹독성’이니 하는 형용사는 언론에서 지어낸 얘기”라며 “학술적으로 피프로닐은 저독성 성분으로 분류된다”고 밝혔다. 하 교수는 “피프로닐이 국내에서 사용이 금지돼있긴 하지만 농작물에는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나치게 유해성이 부풀려지면서 불안감만 가중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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