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한·중·일 역사전쟁의 패자는?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2 10:43
  • 호수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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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5일 문재인 대통령이 건국절 논란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이 교통정리에 나섰지만 논란이 정리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대통령의 권위가 예전 같지 않고 대통령이 국민 전체의 지도자라기보다 특정 이념집단의 리더라는 생각이 더 강해진 탓입니다.

 

저는 이런 논란 자체가 부질없다고 봅니다. 통일이 돼야 광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해방된 상태에 불과하며 남한 주도로 통일이 되는 날 비로소 광복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건국절 논란에서 알 수 있듯, 우리의 관심사는 오로지 현대사에만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짓을 보면 역사가 없는 신생국가를 방불케 합니다. 그러니 걸핏하면 ‘단군 이래 최대 최고’ 어쩌고저쩌고하는 표현을 예사로 씁니다. 단군을 언급하면 세월의 길이가 최소한 반만년입니다. 흔히 남한의 상태를 단군 이래 가장 잘 먹고 잘산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난 5000년간 우리가 지금보다 더 잘산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과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8월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재작년 말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국정교과서 파동도 마찬가집니다. 이때도 전선이 형성된 곳은 오로지 현대사 분야였습니다. 논쟁을 해도 좋으니 고대사, 상고사에도 관심이 쏠려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네요.

 

지금 한·중·일 세 나라는 역사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최종 승자가 누가 될까요. 승자는 불확실하지만 패자는 정해져 있습니다. 대한민국입니다. 중국은 반만년 역사와 넓은 영토를 바탕으로 역사교육이 저절로 되는 나랍니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은 훌륭한 역사교잽니다. 세계 4대 문명 중 문명이 면면히 이어져온 문명은 황하문명밖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 중국과 역사전쟁을 해서 이길 나라는 별로 없습니다.

 

일본도 만만찮습니다. 일본은 섬이라서 영토가 비교적 명확하고 천황(天皇)이라는 특수한 존재가 있어 국민통합이 잘됩니다. 천황은 단순한 왕이 아니라 모든 일본인의 조상으로 간주됩니다. 게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莊八),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 같은 뛰어난 역사소설가들의 작품과 《료마덴(龍馬傳)》 같은 NHK 대하드라마가 일본인을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습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역사는 중국 못지않게 오래됐지만 고조선을 부정하거나 아는 게 없어 실제 역사인식은 2000년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영토는 세 나라 중 가장 작은 데다 그마저 반 토막입니다. 이러면 단결이라도 잘돼야 하는데 삼국 중 분열이 가장 심합니다.

 

우리 풍토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까닭은 우리가 뿌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뿌리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모르고 그러다 보니 자부심이 약합니다. 정신적 사대주의도 심각합니다. 삼국지나 수호전의 영웅은 줄줄 외면서 고구려의 명림답부, 백제의 사법명 같은 민족영웅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선 대한민국은 백전백팹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공세는 갈수록 거세질 것입니다. 현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뿌리인 상고사(上古史)에 대한 관심과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고사를 강조하면 유사역사학자로 비난하는 풍조도 고쳐야 합니다.

 

자신의 역사는 반만년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역사에 대한 인식은 신생국가 수준밖에 안 되는 기묘한 나라가 작금의 대한민국입니다. 우리가 남북통일도 하고 역사전쟁에서도 이기려면 방법이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역사교육을 통한 국민통합(nation-building)이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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