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밖의 스티브 배넌은 더욱 강력하다”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2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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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친구였던 배넌 전 수석전략가는 트럼프의 적 될까

 

8월18일 사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기자들 앞에 서서 짧은 얘기를 했다. “스티브 배넌은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트럼프 정부 탄생의 주역이며 실세로 평가받았던 배넌은 백악관 수석전략가로 화려하게 워싱턴에 입성했지만 퇴장은 너무 초라했다. 미국이 주창하는 고립주의의 배후로 사람들은 배넌을 주목했다. 특정 중동국가 출신의 입국 규제, 파리기후협정 탈퇴,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등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트럼프 정부의 정책 상당수는 그의 작품이었다.

 

올해 초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배넌의 사임설이 나온 적이 있었다. 3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등 트럼프의 가족과 대립하고 있다는 설이 나오면서부터다. 그 시점은 4월6일 미군이 시리아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을 때로 짐작된다. 군사 개입에 소극적인 배넌과 인도적인 이유에서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반카·쿠슈너 부부는 충돌했다. 트럼프가 후보 때 그나마 우호적이었던 폭스뉴스의 루퍼트 머독 회장도 배넌의 사임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언했다는 설도 있었다. 

 

트럼프 정부 탄생의 주역이며 실세로 평가받았던 배넌은 백악관 수석전략가로 화려하게 워싱턴에 입성했지만 퇴장은 너무 초라했다. © 사진=AP연합

 

“북한과 전쟁하면 안된다”는 배넌의 인터뷰가 문제?

 

미국 언론에서는 배넌의 해임이 최근에 고려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백악관을 새롭게 구성하기 위해 라인스 프리버스 비서실장과 숀 스파이서 대변인 등이 물러났다. 그리고 해병대 장군 출신인 존 켈리가 새로운 비서실장으로 임명됐고, 그가 배넌 사임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보수 온라인 언론인 ‘뉴스맥스(News Max)’는 배넌이 해임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국내에는 유명하지 않은 매체지만 이곳의 CEO인 크리스토퍼 루디는 트럼프의 측근 그룹으로 분류된다. 뉴스맥스가 제시한 해임 이유를 정리하면 이렇다. 

 

일단 북한 정책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한 부분이 문제였다. 샬러츠빌에서 백인 우월주의자와 반대파가 충돌하자 ‘대안우파’와 협력이 어려워진 것도 문제였다. (‘대안우파’는 스티브 배넌과 강하게 연계돼 있다) 여기에 배넌이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자고 주장한 건 경제계의 심기를 자극했다. 게다가 배넌이 백악관에서 여러 인물을 공격한 건 조직의 평화에 마이너스를 가져왔다. 쿠슈너를 비롯한 대통령 가족들과 관계가 악화된 건 치명상이었고 공화당 내부에서도 배넌을 향한 비토가 강해졌다. 

 

일각에서는 인터뷰를 문제 삼기도 한다. 8월16일 진보 매체인 ‘The American Prospect’에 게재된 기사에는 배넌이 중국과 북한에 대해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을 재확인한 부분이 등장했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 반대, 중국에 대한 무역 전쟁 찬성으로 요약되는 배넌의 생각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언론플레이로 받아들여졌고 ‘유지’와 ‘해임’의 미묘한 균형이 무너졌다는 얘기다.

 

배넌의 역할은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을 선거에서 승리로 이끈 전략가로 한정돼 있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주의 발언과 정책에 이론적 토대와 논거를 제공해 온 사람이다. 속사정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유럽, 일본 등 주요 우방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국제파(트럼프의 가족들도 여기에 속한다)의 저항에 배넌은 밀렸다. 그는 한창 백악관 내 갈등설이 불거져 나올 때 “여기(백악관)서 나는 매일 싸우고 있다. 재무부와 골드만삭스의 로비스트와 싸우고 있다”고 말하며 국제파를 몰아세우며 자신의 전쟁을 정당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반카와 사위인 쿠슈너는 배넌과 대립한 '국제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 사진=AP연합

 

배넌의 공격 대상은 트럼프 둘러싼 ‘국제파’

 

어쨌든 물러났고 원래 자신의 자리였던 보수매체 ‘브레이트바트’로 돌아왔다. 백악관의 대변인이 배넌의 사임을 발표하던 그 시간, 그는 브라이트바트 편집회의를 위해 앉아 있었다. 브라이트바트는 배넌을 위한 일종의 ‘진지’다. 그래서 배넌을 아는 사람은 오히려 백악관 안에 있던 배넌보다 백악관 밖 브라이트바트에 있는 배넌이 더욱 강력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배넌은 백악관을 떠날 때 “뭔가 혼란이 있는 것 같아 밝힌다. 난 백악관을 떠나 의회와 미디어 등 트럼프 대통령의 적과 싸울 거다”고 말했다. 잘린 게 아니라 스스로 물러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외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실현을 위해 더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저지하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물론 배넌의 충성심을 믿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해석본도 있다. 배넌의 말은 곧 ‘압력’이라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공약 이행을 요구할 거다”와 같은 뜻으로 해석됐다.

 

한때 브레이트바트 뉴스 대변인을 지냈던 커트 바델라는 “아마도 배넌은 해방됐다고 생각할 거 같다. 그는 백악관에 남아있는 국제파에 최대한 타격을 주기 위해 브라이트바트를 공개적으로 사용할 것이다”고 말했다. 배넌의 분노를 받을 국제파는 트럼프 정부를 온건하게 만들 거라고 우려(?)하는 보좌진들이다. 허버트 맥마스터 국가안보 보좌관, 디나 파월 경제담당 선임보좌관,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쿠슈너와 이반카 부부가 여기에 해당한다. 배넌이 그리는 미국의 핵심은 반(反)이민주의와 보호주의를 현실로 만드는 건데, 이 과제를 백악관 밖에서도 수행할 수 있다고 그는 믿고 있다. 어제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배넌의 분노를 어떻게 돌리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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