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원대 범죄수익 중 실제 환수는 800억원뿐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3 10:40
  • 호수 145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탕 크게 해서 평생 먹고살자’ 여전히 통해… 범죄수익 환수율 2.68% 불과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을 주요 과제로 삼으면서,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최순실씨가 부정축재한 국내외 재산을 환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또 과거 부정축재 재산 환수와 관련된 법률 제정을 지원하고, 검찰의 범죄수익 환수 기능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범죄수익 환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실제 환수되는 범죄수익의 비율은 2%대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법원 판결로 확정된 범죄수익 추징금은 3조1318억원이다. 이 중 환수된 금액은 841억원으로, 환수율은 2.68%에 그쳤다. 시사저널은 실제 사기 혐의 등으로 복역한 범죄자들을 통해 범죄수익 환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 실태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실제로 법의 ‘구멍’을 이용해 해외금융계좌에 거액의 돈을 나눠 예치하는 방법으로 범죄수익 환수를 피해 가는 경우가 많았다.

 

 

“10억 미만씩 나눠서 해외계좌 예치하면 돼”

 

사기 혐의로 복역한 김아무개씨(35)는 “(해외금융계좌에 예치된 돈이) 10억원 미만이면 신고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돈을 10억 미만의 금액으로 나눠서 해외금융계좌 여러 곳에 예치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렇게 할 경우 국내에서는 규제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형을 살고 나와서 충분히 그 돈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한탕 크게 하고 평생 먹고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형을 받게 될 경우 범죄수익보다 추징금이 낮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5000억원대의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로 구속된 이들에게 6억원대의 추징금이 부과된 사례가 있었다.

 

300억원대의 사기 행각을 벌이고도 적발되지 않고 다른 건으로 복역했다는 이아무개씨(34)는 “도박 등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신고를 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잘 적발되지 않는다”며 “이로 인한 수익은 보통 해외금융계좌를 이용해 맡겨놓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익금을 회수하기 위해 추징금이나 몰수보전 등의 조치를 내리지만, 재산이 없을 경우 당장 추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수익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는 경우가 많다”며 “해외로 흘러간 자금의 경우 돈 세탁 등을 통해 국내로 다시 유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세탁돼 들어온 돈은 국내 은행에 예치하는 데도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해외금융계좌 신고제’에 따라 해외금융계좌에 10억원 이상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국세청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10억원 미만의 돈을 해외금융계좌에 보유할 경우에는 신고할 의무가 없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해외에 은닉된 범죄수익 환수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지난 3월 해외로 유출된 불법 범죄수익이 국내에 환수된 바 있다. 불법 다단계 사기범이 피해자 1만 명으로부터 빼돌린 2580억원 중 19억6000만원이 해외로 유출됐다. 이 중 미국으로 빼돌려 부인 명의로 구매한 빌라가 미국 국토안보국을 통해 몰수됐고, 이를 공매한 돈인 11억원 중 절차비용을 뺀 나머지 9억8000만원이 국내 피해자 691명에게 배분됐다. 그나마도 국내로 범죄수익이 환수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으나, 환수 규모는 전체 피해액의 7%에 그쳤다. 해외에 은닉된 범죄수익의 조속한 국내 환수를 위해 법무부·검찰청·국세청·관세청·금융정보분석원(FIU) 등 국내 관계기관뿐 아니라 적극적인 국제사법공조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향후 해외금융계좌 신고금액 기준은 10억원에서 5억원으로 낮아질 전망이다. 정부는 8월2일 ‘해외금융계좌 신고 제도와 관련된 법률개정안(국세기본법)’을 오는 9월1일까지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신고금액 인하 방안에 대해 국세청과 협의를 진행한 뒤 해외금융계좌 신고금액 기준을 5억원으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연중 매월 말일 기준으로 해외금융계좌 최고 잔액이 5억원을 초과할 경우 계좌보유 내역을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이 금액 기준 역시 미국이나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아 ‘지나치게 관대한 규제’라는 지적이 많다. 미국의 해외금융계좌 신고 기준은 1만 달러(약 1000만원), 일본은 5000만 엔(약 5억원), 호주는 5만 달러(약 5000만원) 등이다.

 

지난 7월, 당시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던 봉욱 대검 차장은 “범죄수익 환수 업무 실태를 점검해 필요한 인력을 확충하고 법률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그는 또 “해외로 유출된 범죄수익을 외국의 법집행기관이 환수한 경우에도 횡령·배임죄 이외에는 우리나라가 반환 받거나 피해자에게 돌려줄 법적 근거가 없어 문제”라며 “특히 최근 해외로 범죄수익을 빼돌리는 사례도 늘고 있어 보다 적극 대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차명 보유나 가족 개입할 경우 환수 어려워

 

검찰의 이 같은 지시는 최순실씨의 불법 재산 형성 의혹을 해소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와 주목을 받았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최씨 일가의 불법적 재산 형성 및 은닉 의혹과 관련해 최씨 일가의 재산 규모를 약 2730억원으로 파악했으나, 수사기간 부족 등으로 불법적 재산 형성 혐의를 발견하지 못해 조사 기록 등을 검찰에 이첩한 바 있다. 특검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미승빌딩 등 최씨 재산 77억9735만원에 대해서만 추징보전명령을 신청했다. 추징보전명령은 향후 재판 결과에 따라 추징금을 부과하기 위해 범죄로 얻은 부당 이득이나 재산을 임의로 처분할 수 없게 동결시키는 조치다. 특검이 파악한 전체 은닉재산 규모 중 2.85%에 그치는 액수다.

 

범죄수익이 제대로 환수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범죄수익을 차명으로 보유하거나 가족들이 자금의 이전에 개입할 경우, 범죄수익과 범죄 관련성을 입증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 현행법상 범죄수익이 상속되거나 증여돼 은닉되더라도 당사자가 범죄수익임을 알지 못했거나 범죄 피해 재산인 경우에는 몰수할 수 없다는 맹점도 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 대한 추징이 대표적이다. 2014년 인천지방법원은 유 전 회장 일가에 대한 추징보전명령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유 전 회장이 사망한 이후 인정된 678억원의 추징보전명령 금액 중 361억원이 소멸됐다. 부인 권윤자씨와 차녀 유상나씨 등 범죄 혐의가 없는 가족에 대해 상속된 금액은 추징보전명령에서 제외됐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