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이 울렸던 오후 2시, 명동의 재구성
  • 손구민 인턴기자 ()
  • 승인 2017.08.23 18: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케치] 행인 많은 명동의 민방공 훈련은 어땠을까

오후 1시40분. 사이렌이 울리기 20분 전, 명동역 인근에 모여 있던 노란 조끼를 입은 민방위 요원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2시 정각에 예정된 사이렌이 울리면, 그 즉시 시민들을 지하철역 안으로 대피시키기 위해서였다. 한 민방위요원은 “우리로선 오래 준비해온 훈련”이라며 주어진 동선에 따라 바삐 이동했다.

 

같은 시각, 명동에 나와 있는 시민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바삐 가게를 드나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평범한 명동의 오후였다. 길을 걷던 한 시민은 “민방공 훈련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훈련을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후 2시. 명동거리 사방에 사이렌이 울렸다. 지하철역에서 나오려던 시민들은 출입구 앞에서부터 요원들에게 통제 받았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아무 말 없이 훈련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일부는 불편을 토로했다. 정장을 입고 있던 한 시민은 “면접을 봐야하는데 늦었다”며 민방위요원들에게 사정했다. 다른 시민도 “약속시간에 늦었는데 여기 있으라고 하면 어떡하냐”며 한숨을 쉬었다. 민방위요원들은 “어쩔 수 없다. 잠시만 협조해달라”는 얘기만 시민들에게 반복해야 했다. 훈련에 동참한 시민들은 대부분 차분하게 기다렸지만, 표정에서는 불편함을 읽을 수 있었다.

 

8월23일 오후 2시. 민방공 사이렌 훈련이 울린 뒤 텅 빈 명동 거리의 모습. © 손구민 인턴기자

 

시민 통제 15분, 차량 통제는 5분... 현장 혼란 원인

 

2시7분경, 지하철역에 갇혀있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번 민방공 훈련으로 거리가 통제돼야 할 시간은 15분이었다. 하지만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민방위 요원들은 통제력을 잃었다.

 

명동역 5~6번 출구를 통제했던 이종갑 주무관(명동주민센터)은 “거리 통제는 15분인데 차량 통제는 5분이다. 시민들이 차량이 다시 움직이는 걸 보고 이동해도 된다고 생각해 마구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제약은 곳곳에 숨어 있다. “명동 거리에 있는 모든 시민들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곳곳에 있는 시민들을 인솔할 수 있는 인력도 없다.”

 

민방공 훈련을 앞두고 대피 장소를 설명하는 정보성 기사가 그 어느 때보다 많았던 이번 훈련이다. 하지만 막상 대피 장소에 도착하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명동역 관리소 관계자는 “훈련 때 대피장소로 지정된 지하 대합실에는 사람이 거의 오지 않았다. 대부분 시민들이 지하상가 복도나 출입구 계단 쪽에 몰렸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명동역에 모인 민방위요원들은 이번 훈련이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시민들이 이전보다 협조적”이라고 말했다. 이 주무관은 “시민들에게 호루라기까지 불어가며 통제를 하다보면 일부 시민은 욕설을 해가며 협조를 거부하기도 한다"며 어려움을 말했다. 다른 민방위요원은 “잠시 동안 겪는 불편함을 통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주려는 취지인데 시민들에게 욕까지 먹을 때는 힘들다”고 말했다.

 

1년여전 민방공 훈련 당시 명동의 모습. 2016년 5월16일 오후 2시, 사이렌이 울렸지만 올해와 달리 명동은 여전히 분주했다. © 연합뉴스

사이렌에 놀란 외국인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행인들은 그나마 훈련에 참가했지만 명동의 수많은 소상공인들은 여기에서 제외되다시피 했다. 2시에 울린 민방위 사이렌은 이들의 영업을 멈추지 못했다. 한 신발가게 직원은 “2시부터 2시15분까지 가게 내에서는 아무런 대피 권고나 지시사항이 없었다. 손님들도 그대로 있었고 사이렌이 울린 소리만 들었을 뿐이었다. 민방위훈련이라고 딱히 한 건 없다”고 말했다.

 

명동 밀리오레 상가의 한 자영업자는 “그 시간 동안 가게를 비워놓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훈련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1층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직원들도 별도로 훈련에 관한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밀리오레 앞을 담당하던 주무관은 “상인들도 함께 훈련에 참여하게끔 할 방법이 딱히 없다. 상주하는 건물 지하로 대피하는 것을 권고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거리와 건물은 따로 행동하고 있었다.

 

명동만의 특징은 다수의 외국인 관광객이다. 명동에 흩어진 민방위요원들은 외국인들에게 나눠줄 훈련 소개 안내문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안내문을 보지 못한 외국인들에게 갑작스런 사이렌은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타국에서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지하철에 갇히고 사이렌을 듣는다면? 깜짝 놀랄 일이다. 영국에서 온 올리버씨는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에 당황했다. 무슨 사건이 일어났나 싶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걷고 있어서 의아했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