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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스크린에서 사라진 여성들

여성 향한 폭력적 시각과 혐오, 배제 한국영화계의 여성 잔혹사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7(Sun) 17:30:00 | 14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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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는 이슈 중 하나는 여성 혐오와 폭력이다. 한국영화계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성을 향한 폭력적 시각과 혐오,   작품 안팎에서의 여성을 묘사하고 배제하는 방식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만 해도 지난해 벌어졌던 강남역 살인 사건을 연상케 하는 홍보 문구로 비난 여론이 형성돼 상영 반대 운동으로까지 번진 개봉 예정작 《토일렛》, 김기덕 감독의 여배우 폭행 사건을 둘러싼 논란 등이 잇따라 터졌다. 한국영화계에는 어떤 각성이 필요한가. 최근의 사례들을 중심으로 한국영화계의 여성 혐오와 여성 차별, 성폭력 문제 논란 등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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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영화 《토일렛》은 무엇을 말하는가

 

8월10일 영화 《토일렛》 측은 보도메일을 통해 8월 내 개봉 소식을 알렸다.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강남역 여자 화장실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강렬한 범죄 스릴러’라는 문구와 함께였다. 포스터 태그라인은 ‘모든 것은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분노 때문이었다. 완전범죄를 꿈꾼 그곳.’ 명백한 페미사이드(femicide·남성의 여성 혐오로 인해 벌어진 여성 살해) 사건의 충격과 분노가 사회적으로 채 가라앉기도 전에 사건을 자극적으로 영화화한 시도가 이뤄진 것이다. 공개된 줄거리 역시 충격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술집에 모인 남성 3명이 여성 2명과의 합석을 거부당한 뒤, 자신들을 험담하는 여성들의 뒤를 쫓아 화장실로 향해 칼로 위협하며 강간을 시도한다는 내용. 변명할 여지 없이 여성 혐오적 시각을 품고 있는 줄거리였다.

 

이 같은 내용이 공개되자 SNS를 중심으로 즉각 비난 여론이 형성됐다. 홍보 문구는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으며, 피해자와 그 가족을 고려하지 않은 경솔한 기획이라는 것이 골자였다. 페미니스트 영화·영상인 모임 ‘찍는페미’가 시작한 《토일렛》 상영 반대 해시태그 운동 ‘#토일렛_상영_반대’는 빠르게 확산됐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이상훈 감독은 8월10일 오후 자신의 SNS를 통해 “《토일렛》은 강남역 살인 사건과 무관한 영화”라며 “범죄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자 만든 작품이며, 완벽한 범죄는 없고 범죄자는 결국 그 벌을 받는다는 것이 메시지”라고 해명했다. 이 영화의 마케팅을 담당하는 홍보사 ㈜화요일 측은 다음 날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영화는 해당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기획한 저예산 독립영화이며, 우발적 범죄들에 대해 사회적 경각심을 주는 메시지를 담으려고 노력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또한 언론배급시사 공개 전에 원하는 경우 언론 관계자들에게 본편을 미리 공개해 객관적 평가를 받겠다고 덧붙였다.

 

본편 확인 결과,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과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홍보 문구보다 더욱 처참한 수준이다. 극 중 화장실은 여성들이 강간과 살해 위협을 받는 공간인 동시에, ‘몰카’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장소다. 자신들을 향한 험담에 화가 난 남성들이 여성 2명의 손발을 묶고 희롱하는 동안 화장실 안에는 몰카 설치 후 미처 현장을 빠져나가지 못한 또 한 명의 남성이 있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한 이 남성은 바깥 상황에 관여하지 않는다. 주인공 남성은 여성들을 협박하며 “뒷일을 생각해” 신분증을 촬영해 두는 치밀한 범죄행각을 보이기도 한다. 저항할 수 없는 여성들을 향해 욕설과 성희롱은 기본이고 물리적 폭력 역시 서슴지 않고 행사한다.

 

반면 《토일렛》 안에서 여성은 오직 ‘취집’을 위해 직업을 택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외모를 지닌 남성을 비하하는 존재, 남성이 가하는 위협의 피해자로만 묘사된다. 물론 극 중 여성들은 주인공 남성 무리의 외모를 두고 인신공격성 험담을 서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것이 강간 위협에 처하고 살해당할 명분이 되는가. “완벽한 범죄는 없고 범죄자는 결국 그 벌을 받는다는 것이 메시지”라는 감독의 해명도 석연치 않다. 말미에 이르면 이 영화는 화장실 몰카가 범죄자를 잡는 기능을 한다는 황당한 결론을 내놓는 듯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외연을 넓혀보자. 《토일렛》 같은 저예산 독립영화뿐 아니라 상업영화의 경우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비단 스릴러 장르에서 특히 빈번히 드러나는, 여성을 향한 폭력적 묘사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국 상업영화들의 스토리와 인물 구성에서 젠더 감수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을 먼저 지적할 만하다. 젠더 감수성이란 가부장제로부터 발생하는 성별 불평등과 젠더 문제들에 대한 감지 능력이다. 8월 현재 2017년 한국 상업영화 흥행 순위 10위 내에 오른 영화들의 대부분은 남자 캐릭터가 주인공이거나 남자 캐릭터가 떼를 지어 등장하고, 이들이 주도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순위권 내에서 제대로 된 이름을 지닌 채 한 명의 캐릭터로서 영화의 서사에 기여하도록 뚜렷한 역할을 부여받는 건 《군함도》의 말년(이정현),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최희서) 정도가 유일하다. 그나마도 말년의 경우, 위안부 피해자이며 남성 캐릭터들로부터 물리적 폭력을 감내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올여름 개봉한 대작 상업영화 세 편으로만 압축하더라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앞서 언급한 《군함도》를 제외하고 《택시운전사》와 《청년경찰》 안에서는 여성의 활약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택시운전사》에 등장하는 여성은 만섭(송강호)의 어린 딸이거나 만섭에게 밀린 사글세를 독촉하는 집주인 여성 정도가 전부다. 물론 이 영화는 여성 혐오나 여성을 향한 폭력과는 연관이 없고 그 자체로 높은 완성도를 지니지만, 여성 배제의 문제에 있어서는 논의 대상이 될 만하다.

 

《청년경찰》의 경우에는 문제가 좀 더 복잡하다. 혈기왕성한 두 경찰대 학생이 맞닥뜨리는 사회적 문제는 여성 납치, 난자 적출 사건이다. 영화는 이 부분을 다루며 피해자의 고통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긴 하다. 하지만 남성 성장 서사를 위해 여성의 희생은 옳은가, 상업영화는 이것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는 가능하다. 주인공들이 재기 발랄한 말장난과 코미디적 상황에 놓인 사이, 서사의 흐름상 보이지 않는 영화의 한구석에서는 여성 캐릭터들이 잔인하게 희생당하고 있음이 자명하다. 이 영화를 보고 마냥 기분 좋게 웃을 수만은 없는 심정적 딜레마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한국 상업영화의 이 같은 행보는 남성 중심의 서사만을 관객이 익숙하게 느끼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곧 투자배급사 및 제작사가 받아들이는 ‘대중성’이라는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는다. 남성 서사 중심의 기획에만 투자가 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유다. 이쯤 되자 영화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상업영화 시나리오 단계에서 의무적으로 ‘벡델 테스트’를 시행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푸념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지경이다. 벡델 테스트는 1985년 미국의 여성 만화가 엘리슨 벡델이 남성 중심 서사가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기 위해 고안한 성평등 테스트로 다음의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이름을 가진 여자가 2명 이상 나올 것, 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대화 내용에 남자와 관련된 것이 아닌 내용이 있을 것. 한 해 개봉작 중 여성이 폭력에 노출되지 않고,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는 상업영화 편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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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논란으로 또 불거진 영화 현장 여성 폭력

 

작품 밖으로 눈을 돌리면, 촬영 현장 여성 폭력 문제가 있다.  8월2일 여배우 A씨가 김기덕 감독을 상대로 고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A씨는 지난 2013년 3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 촬영 중 감독이 “감정이입을 위해 필요하다”며 자신의 뺨을 때리는 등 폭행을 저질렀고, 애초 대본에 없던 베드신 촬영을 강요했다며 고소장을 제출했다. A씨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영화노조)을 찾아가 법적 대응을 결정한 결과다. 영화노조가 파악한 사실관계에 따르면, 당시 촬영장에서 김 감독이 배우의 뺨을 2~3회에 걸쳐 때리는 것을 목격한 스태프가 있고, 감독은 사전에 합의하지 않은 채 A씨에게 남자 배우의 성기를 직접 잡는 행위를 강요했다. 논란이 커지자 ‘김기덕 필름’은 다음 날 입장 발표를 했다. 뺨을 때린 것은 “4년 전이라 흐릿한 기억이지만 실연을 보이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었으며 “그 외에는 시나리오상의 장면을 연출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라는 것이다.

 

이에 영화노조·여성영화인모임·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36개 단체와 공동변호인단 등 개인 13명으로 구성된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8월8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이것은 성폭력 사건”임을 분명히 했다. “감정이입을 위해 실제로 폭행을 저지르는 것은 ‘연출’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공대위는 이 사건이 “단순히 한 명의 영화감독과 여성 배우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감독이라는 우월적 지위와 자신이 절대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영화 촬영 현장을 비열하게 이용한 사건이며, 영화업계의 폭력적 노동환경과 뿌리 깊은 인권침해”라는 점을 비판했다.

 

그간 변화의 노력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해 SNS를 중심으로 퍼져 영화계를 포함한 문화예술계 전체를 들끓게 했던 해시태그(#) 운동은 성폭력 논의에 불을 붙였다. 이후 한국영화감독조합(감독조합)은 영화계 내 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특별기구를 만들고 성폭력 예방교육과 성평등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감독조합은 정기총회에서 외부 강사 초빙 등을 통해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한 바 있다. 올해 10월부터는 범영화계 차원의 성폭력 대응 기구가 구성될 예정이다. 김기덕 감독 논란이 일기 전인 지난 4월부터 여성영화인모임 및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오는 10월까지 개봉 기준 3년 이내 영화 작업에 참여한 적 있는 전 스태프와 배우를 대상으로 영화산업 내 성폭력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었다. 실효성 높은 대응 체계 마련을 위해서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제작 사업 지원 대상 작품에 참여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교육을 의무 진행하고, 성폭력 판결을 받은 영화인의 경우 각종 지원 사업에서 배제하는 등의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변화는 더디겠지만 그 방식은 결코 어렵지 않다. 사전에 합의되지 않았던 것을 현장에서 권력으로 강요하는 모든 행위를 범죄이자 폭력으로 인식하는 것.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젠더 문제는 결국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도 여성을 배제하고,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서사를 걸러내려는 노력 역시 꾸준히 필요하다. 한국영화계가 안팎으로 질적 성장을 취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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