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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의 땅 울리는 장가와 마두금의 선율

몽골의 전통민요 장가, 말 머리 모양 악기 마두금과 어우러져

박종현 월드뮤직센터 수석연구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7(Sun) 11:30:00 | 14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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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었다

대초원의 촛불인 

모닥불이 켜졌다

몽골의 악사는 악기를 껴안고 말을 타듯 연주를 시작한다

장대한 기골의 악사가 연주하는 섬세한 음률, 장대함과 섬세함 사이에서 울려 나오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 

모닥불 저 너머로 전생의 기억들이 바람처럼 달려가고, 연애는 말발굽처럼 아프게 온다.

- 박정대 시인의 《마두금(馬頭琴) 켜는 밤》 초두

 

스물두어 살, 필자는 스스로에게 전역 선물을 주기로 했다. 박정대 시인이 노래한 ‘마두금의 나라’ 몽골 여행을 결심한 것이다. 계기는 엉뚱했는데, 또렷이 기억난다. 휴가 중 서점에 들렀을 때 몽골에 대한 민속학 서적이 눈에 띄었다. 책을 펴들었을 때 보이는 사진들 속에서 하늘과 땅이 무한히 넓었다. 그것을 보며 ‘2년의 시간을 좁은 곳에 있었으니 가장 넓은 곳에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을 위해 전역 다음 날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여권을 처음 만들었다. 여덟 달 후 몽골 남부, 고비사막의 한가운데에서 모닥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성인으로서의 첫 ‘싱송로드’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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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음악 연상케 하는 몽골의 장가 곡조

 

지금은 모르겠지만, 10년 전 한국에서 남고비로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일단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로 가야 했다. 기대했던 큰 땅, 큰 하늘, 그리고 교외 지역의 평원을 뒤덮은 수천의 게르(유목민들이 사용하는 이동식 집)들이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눈에 담겼다. 몽골인 친구에게 들으니 사회주의 붕괴 후 지속적으로 상경해 온 유목민들이 교외에 게르를 옮겨 짓고 산다고 했다. ‘유목’이라는 낯선 삶의 형태에 대해 처음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어쩌면 한국이라는, 산이 들보다 많은 작은 ‘섬’에서 태어난 우리만큼 유목적 감수성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있을까.

 

유목의 중심에는 인간과 함께 움직이고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주는 존재들로서 양, 그리고 말이 있다. 양털로 게르를 덮지 않으면 혹한을 버틸 수 없고, 말이 없으면 세계 속을 움직일 수가 없다. 20세기 초 중국 및 러시아 백군의 침략을 버티며 몽골의 독립을 쟁취해 낸 사회주의 혁명가 담디니 수흐바타르(Damdinj Sukhbatar)도, 그의 이름을 딴 대형 광장 한가운데서 여전히 말을 타고 역동적인 자세로 관광객을 맞아준다. 말이 없었다면, 독립된 조국도 없었을지 모를 일이다.

 

내 어여쁜, 날렵한 갈빛 말이

저 멀리에서 달려오고 있다네

 나는 멀리서 기다린다네

결코 지침이 없는 내 사랑으로부터 

- 오르트 사이한(Ort Saikhan)이 부른 장가《내 어여쁜 갈빛 말이》

몽골인들은 양·염소·낙타·말 모양이 새겨진 주사위 넷을 굴려 운을 점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행운을 상징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말 4마리가 나왔을 때다. 그만큼 말은 소중한 존재다. 장가, 혹은 장조라고 번역하는 전통민요 중에도 위와 같이 말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것들이 많다고 한다. 몽골의 작가 달마 바트바야르(Darma Batbayar)는 한국에서도 번역된 짧은 수필 《유목의 정신이 작가의 정신이다》에서 이 장가 음악에 대한 몽골인으로서의 사랑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내 멜로디는 장가다. (중략) 나는 이 아름다운 선율을 가진 시가 있는 노래를 몽골의 초원·고비·항가이·하늘이 듣기 때문에 자라나는 풀이 신성하고, 흐르는 강물이 맑으며, 높은 하늘이 저토록 푸르리라 생각한다.”

가사의 음운 하나하나를 길게 빼어가며 ‘노는’ 것이, 한국 음악에서의 시조 음악을 연상케도 하는 이 장가 곡조를 듣고 있으면, 그 땅을 밟지 않아본 누구라도 너른 벌판과 그 위를 달리는 말을 연상하기 쉬울 거라 감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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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는 종종, 맨 위 시에서도 언급된 악기, 마두금과 함께 불린다. ‘초원의 첼로’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마두금은 한역(漢譯)된 것으로 ‘말 머리 현악기’를 뜻한다. 몽골어로는 모린 후르(Morin Khuur)라 한다. 예전에 한국의 록 밴드 ‘한음파’에서 마두금을 활용한 바 있어 이 악기가 눈에 익은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처음 보면 작은 첼로같이 생겼다. 말총으로 만들어진 두 줄을 활로 마찰시켜 소리를 내는 찰현(擦絃) 악기다. 한국의 두 줄 찰현 악기인 해금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두 악기의 주법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활을 통해 나무통을 울려내는 특유의 느낌이나, 농현(줄의 장력을 이용해 음의 미묘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주법)이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점 때문에 여러모로 비교해 들을 만하다.

 

해금이 소프라노라면, 마두금은 알토다. 악기의 윗머리 부분이 말 머리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래서 마두금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지, 아니면 이름이 먼저이고 장식이 이름을 따라가게 된 건지는 알 길이 없다. 몽골의 설화집들을 찾아 읽어봤지만, 마두금의 유래와 관련한 너무나 다양한 설들이 있어서 차라리 쓰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너른 땅의 노래, 장가가 말 머리를 한 악기와 함께, 또 말을 사랑하고 예찬하는 노랫말들과 함께 유목의 터전을 울려왔다는 것이다. 그 울려온 소리들을 들으며 가 본 적 없는 시공간을 여행해 보시기를 권한다.

 

아, 환상을 깨는 말일지 모르지만, 사실 몽골 사막에서 말보다는 현대의 말, 다시 말해 모터바이크와 튼튼한 소련제 밴들을 훨씬 많이 봤다. 하지만 교통수단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 공간의 장엄함이 바뀌지는 않는다. 장가와 마두금에 어울리는 풍경은 여전할 테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문득문득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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