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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교민 사회 “피눈물을 흘린다”

‘한·중 수교 25주년’, 사드 사태로 기로에 선 韓·中 관계

홍순도 아시아투데이 베이징지국장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9(Tue) 08:00:00 | 14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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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4반세기 전인 1992년 8월24일 이뤄진 한·중 수교는 당시 한국의 상황에서는 역사적 대사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가보안법이 맹위를 떨치던 것에서 보듯 한국 내 레드 콤플렉스가 여전했을 뿐 아니라 중공으로 불리던 중국이 주적인 북한과 혈맹인 공산주의 종주국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여기에 당초 외교관계 개선을 목표로 한 한·중 양국의 접촉이 북한이 전혀 모른 채 극비리에 진행되다 전격 수교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할 경우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의미가 클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한국이 섬 아닌 섬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꼽아야 할 것 같다. 레드 콤플렉스가 꽤 완화되는 계기가 됐다는 사실에도 나름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 같다. 실제로 당시만 해도 공산주의 국가들은 남북 분단의 상황과 맞물려 한국인들에게는 편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 참전 당사국인 중국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의 전격 수교는 공산주의자들이 시쳇말로 뿔 달린 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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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레드 콤플렉스’ 완화 계기

 

수교 이전까지는 애써 외면했던 상호 국가의 동맹을 분명하게 인정했다는 것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수교를 통해 한국은 북·중 관계, 중국은 한·미 관계를 용인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한국으로선 전통적 우방인 대만을 잃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다. 또 중국 역시 이후 북한과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치달으면서 지금의 통제 불능 사태에까지 이르는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 안 됐다.

 

이외에 수교를 통해 한국과 중국은 공히 새로운 큰 시장을 가지게 됐다는 사실, 동북아 평화를 위한 환경 구축에 큰 도움을 가져오게 했다는 것 등 역시 높이 평가해야 할 의미로 손색이 없다고 해야 한다.

 

수교 25주년을 맞은 지금 양국 관계가 엄청나게 발전한 것은 이로 보면 너무나 당연하지 않나 싶다. 공식적인 통계만 놓고 봐도 그렇다는 사실은 별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코트라(KOTRA) 베이징 무역관이 최근 밝힌 바에 따르면, 우선 교역 규모가 지난 25년 사이에 33배나 증가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한국의 가장 큰 교역 상대국으로 부상하게 됐다. 한국 역시 중국의 제4위 무역 상대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인적 교류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폭증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을 정도라고 해도 좋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봐도 양국을 왕래한 양국 국민이 연 1100만 명을 헤아렸다. 한국에 입국한 중국인이 795만 명,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이 365만 명이었다. 수교 당시와 비교할 경우 무려 120배나 증가했다.

 

대륙 곳곳에 한국인 집단 거주지인 코리아타운이 형성되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베이징 차오양(朝陽)구 왕징(望京)을 꼽아야 할 것 같다. 현재 최대 5만여 명, 최소 3만여 명 정도의 교민이 각종 분야에 종사하면서 나름 열심히 살아가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의 시타(西塔),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의 청양(城陽), 상하이(上海) 민항(閔行)구의 훙취안루(虹泉路)와 구베이(古北) 등 역시 중국 내 대표적인 한국인 커뮤니티로 꼽을 수 있다.

 

많은 교민 수에서 보듯 그동안 성공신화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최근 민주평통 중국 담당 부의장에 선임된 이숙순 대일한일국제종묘유한공사 사장의 케이스를 꼽아야 할 것 같다. 수교 직후 한 종묘 회사의 대표로 베이징에 진출한 이후 독립해 대박을 터뜨렸다. 기업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오리온이나 농심이 극강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현실만 봐도 이 점은 별로 어렵지 않게 설명이 된다.

 

반대의 경우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일대가 조선족과 한족들의 거리로 변한 한 가지 사실만 봐도 별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베이징과 서울에서 서라벌여행사를 운영하는 쉬밍다오(徐明道) 사장은 “중국의 교민 사회가 그동안 쾌속 발전했듯 한국 내 중국 커뮤니티 역시 괄목상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커졌다”며 현실을 설명했다. 양국의 외교관계가 2008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수준까지 이른 것은 다 까닭이 있지 않나 싶다.

 

 

‘차이나 엑소더스’ 국가적인 큰 손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이런 양국 관계가 최근 들어서는 휘청거리고 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수교 이후 최악이라는 말도 무색하지 않다.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에 따른 양국 간 갈등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어느 정도 심각한지는 25주년 기념행사를 한·중 양국이 따로 개최했다는 사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베이징 한국대사관 고위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게다가 각자의 행사에 5년 전과는 달리 거물급들도 참석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동 주최의 기념식은 언감생심이었을 뿐 아니라 20주년 당시 주한 중국대사관이 연 리셉션과 비슷한 행사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해 붕괴 조짐을 보이는 교민 사회의 현실 역시 거론해야 할 것 같다. “피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휘청거리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 아닌가 싶다. 개인 사업자들의 매출이 사드 사태 이후 평균 30~40% 떨어진 것만 봐도 이 같은 현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일부 교민들이 귀국하거나 제3국으로 생활 근거지를 옮기는 행보에 적극 나서는 것이 이해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는 기업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각각 영업정지와 매출 반 토막으로 고전하는 롯데마트와 현대·기아자동차가 당하고 있는 횡액만 봐도 그렇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사드 사태는 언젠가는 분명히 끝난다. 그러나 이에 따른 후유증은 상당히 심각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이전처럼 관계가 회복되는 데 상당 기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무리 지금 어렵더라도 정부나 개인, 기업들이 중국을 포기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해야 한다. 전략적 가치를 비롯해 지리적 위치, 문화적 동질감, 여전히 저렴한 인건비 등을 감안할 경우 아직도 중국은 엄청나게 가치가 있는 국가인 탓이다. 여기에 그동안 쌓아올린 각 주체들의 대중(對中) 관계 노하우까지 더할 경우 당장 힘들다고 결행하는 ‘차이나 엑소더스’는 국가적인 큰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사드 사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면서 새로운 3.0 접근법 등을 통해 관계 회복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이를 위해서는 양국 모두 수교 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고 상호 존중의 자세도 회복해야 한다. 이 경우 한·중 관계는 다시 정상 궤도에 진입해 더욱 고도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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