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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 테러’ 이후 대학원가 “허공에 ‘권리장전’ 선포했나”

구속력 없는 ‘보여주기식’ 도입으로 학내서도 실효성 의문

손구민 인턴기자 ㅣ koominsohn@gmail.com | 승인 2017.08.29(Tue)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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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3일 오전 9시께, 검은 옷을 입은 경찰특공대가 대학교 캠퍼스에 등장했다. 정문을 통과한 이들은 연세대 1공학관 건축학과 연구실로 곧장 향했다. ‘연세대 텀블러 폭탄’ 사건 당시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서 연출된 낯선 풍경이었다. 

 

폭탄 테러가 피해자 교수에 반감을 가진 제자의 범행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연세대는 발칵 뒤집혔다. 대학 측은 사건 수습에 박차를 가했다.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추진했다. 학생들이 권리를 보장받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였다. 대학 측은 교내 윤리인권위원회와 대학원 총학생회가 협의한 뒤 9월 중에 권리장전 선포식을 가질 예정이다. 권리장전 선포와 함께 상담서비스도 확대하기로 했다. 기존 대학원생 상담센터들을 통합해 인권센터를 신설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 같은 학교 측의 노력에도, 연세대 대학원 학생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아무런 법적 구속력 없는 권리장전이 지금의 뒤틀린 사제관계를 개선시킬 것이라고 보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 한국의 대학원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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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권리 보장하는 권리장전 선포? 달라질 것 없다”

 

연세대 일반대학원생 정아무개씨. 정씨에게 대학원 생활은 출퇴근이나 다름없다. A 교수의 연구조교인 그는 연구보다 행정업무를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와 지도교수와의 교류는 업무적인 것 외엔 거의 없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도교수는 각종 업무 지시를, 조교는 명령 하달만 하는 ‘갑’과 ‘을’의 관계인 셈이다. 

 

6월 ‘텀블러폭탄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정씨의 지도교수는 별다른 얘기가 없었다. A교수를 지도교수로 둔 연구실 소속 대학원생들의 삶도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그들에게 연대 폭발물 사건은 그저 가십거리에 불과했다. 대학 측의 권리장전 추진 소식 역시 그들과는 거리와 먼 뉴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권리장전이 무용지물이란 사실은 대학원생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교수와 학생 간의 변질된 관계를 ‘갑질’ 교수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가 조교로 일한 2년 동안 지도교수가 정씨의 개인적 연구를 도와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정씨는 말했다. 정씨 개인 연구에, 지도교수를 위한 각종 행정 뒤치다꺼리를 하지만, 최소한의 급여도 없이 일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지도교수가 학생의 학점, 인건비, 심지어 취업까지 좌우하는 비정상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며 “견제장치가 없다면 교수의 ‘갑질’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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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되는 대학원생 권리장전…실효성은 ‘글쎄’

 

연세대 텀블러 폭발물 사건을 계기로 대학원생에 대한 교수들의 인권침해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여타 대학교들도 권리장전을 선포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8월20일 노웅래 의원실에 따르면 카이스트를 시작으로 지난해 11월까지 2년간 권리장전이 만들어진 곳은 총 61곳. 고려대와 이화여대, 서울대 등이 대학원 권리장전 준비 중에 있다. 하지만 권리장전의 실효성을 둘러싸곤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선언문에 언급된 권리 보장은 권고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미 권리장전을 선포한 대학 현장에선 “강제력․구속력 없는 권리장전은 무용지물”이라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서강대는 6월15일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도입했다. 선언문엔 대학원생의 평등권, 학업 및 연구에 관한 권리, 공정한 논문심사를 받을 권리 등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발표 당시 서강대학교 측은 “대학원생 권리장전이 지금보다 더 나은 학문연구 풍토를 만드는 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과연 그럴까. 대학 측의 말처럼 학생들이 효과를 체감하고 있는 것일까. 서강대 공학대학원을 재학 중인 강아무개씨는 “뭐가 바뀌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실에 있는 다른 학생들과 권리장전에 대해 같이 얘기하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권리장전 선포식이 ‘보여주기식’일 뿐 실질적으로 학생들의 처우가 달라진 건 없다는 얘기다. 그가 다니는 공학대학원과 같이 폐쇄적 환경에선 교수의 부당한 행태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조차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며 “권리장전에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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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 인권센터 설치해 징계로 이어질 수 있어

 

학교 측은 권리장전을 통해 대학원생들의 인권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서강대학교 본부 관계자는 “권리장전을 통해 학생들의 권리를 명문화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교수가 권리장전에 명기된 학생의 권리를 침해할 경우 교내 징계조치나 사법처리까지 하는 등 구속력을 부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권리장전을 근거로 교수에 대한 향후 징계 조치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권리장전 위배가 실제 징계로 이어지기까진 갈 길이 멀다. 일단 교내에 인권센터가 설치돼야 한다. 교수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은 학생이 인권센터에 제보하고, 인권센터가 권리장전 위배 여부를 확인한 뒤 교내 징계위에 해당 인사를 회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리장전 구속력 부여에 적극적 의지를 내비친 서강대의 경우, 교내 인권센터 신설부터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학교 이사회가 교내 인권센터 신설을 승인해야 하는 데, 일부 교수들이 반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학생의 허위제보 등으로 인한 교육권의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기에 인권센터가 오로지 학생의 제보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어 알려지지 않은 인권 침해까지 전반적으로 근절시킬 권한은 없다는 문제도 있다. 더군다나 문제가 된 교수에 대한 징계나 처벌도 솜방망이에 그친다는 학내 불신이 강한 상황도 극복해야 한다. 대학원생들 사이에 팽배한 ‘잘못 제보했다간 학계에 발을  못 붙일 수 있다’는 두려움도 인권센터 활성화에 걸림돌이다. 대학원생 강씨는 “동종학계 내에서 학생이 구설수에 오르게 되면 그 사회에서는 끝장”이라며 “교수의 ‘갑질’ 문제가 징계나 법적 조치로까지 이어지면 학생 본인이 2차 피해를 입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대학교별로 권리장전과 인권센터 설립을 권고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입장이다. 조정희 인권위 조사관(아동청소년인권과)은 “대학원의 자율성 차원에서 학교가 권리장전에 강제성을 부여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며 “학교가 인권센터 운영하는 것을 교육부의 학교평가항목에 넣는 방법 등으로 관리, 감독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권 침해를 당한 대학원생에 대한 구제절차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교수와 학생의 기울어진 권력관계 개선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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