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메시’ 꿈 접고, 냉엄한 현실 속으로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30 09:38
  • 호수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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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떠나는 삼총사의 운명은

 

2010년 한국 축구팬들은 흥분에 휩싸였다. 세계 최고의 클럽인 FC바르셀로나가 한국인 유망주를 셋이나 영입했기 때문이다. 2010년 백승호, 2011년 이승우·장결희가 차례로 바르셀로나와 유스 계약을 맺었다. ‘라 마시아(스페인어로 농장을 의미)’로 불리는 최고의 유스 시스템 안에서 리오넬 메시, 차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카를레스 푸욜 등 축구사에 길이 남을 선수들을 배출한 바르셀로나였다. 때문에 한국인 유망주들의 성장에 대한 기대는 특별했다.

 

지난 6년 넘게 성인 선수 이상의 폭발적 관심을 받았던 바르셀로나의 한국인 삼총사는 2017년 여름 운명의 갈림길에 섰다. 그리고 하나둘 바르셀로나를 떠나고 있다. 더 이상 잠재력이라는 우산 아래서 보호받을 수 있는 유스 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이승우, 백승호, 장결희 © 사진=연합뉴스

 

성인이 된 삼총사, 프로 계약 현실 앞에 서다

 

올해로 백승호는 만 20세, 이승우와 장결희는 만 19세가 됐다. 성인 계약을 맺어야 하는 시기다. 13세를 전후해 팀에 합류한 이들은 유스 시스템에서 인정을 받고 착실히 계단을 올랐다. 가장 돋보였던 선수는 백승호다. 2016년 여름 성인 2군 팀인 바르셀로나B로 승격했다. 거기서 인정받으면 성인 계약을 통해 1군으로 갈 가능성이 컸다. 실제로 백승호는 루이스 엔리케 전 바르셀로나 감독의 기대 속에 1군 훈련에 합류하기도 했다.

 

이승우와 장결희는 성인팀 바로 아래인 후베닐A(18세 이하 팀)까지 올랐다. 그중에서도 이승우는 유스판 챔피언스리그라 할 수 있는 유럽축구연맹(UEFA) 유스 리그에 참가하는 주전급으로 분류됐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국제대회에서도 두각을 보였다. 17세 이하 월드컵과 20세 이하 월드컵에 모두 참가했다. 두 선수에 비해 기대감이 떨어진 장결희는 측면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하며 자신의 경쟁력을 보여주기 위한 적극적인 도전에 나섰다.

 

올여름 세 선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성인 계약을 맺고 B팀에서 경쟁하며 1군 진입을 넘보거나 팀을 떠나는 것이었다. 바르셀로나 출신 유망주들에겐 익숙한 일이다. 메시처럼 1군으로 올라서 세계적인 선수로 도약하는 케이스도 있지만, 보얀 크르키치(스토크시티), 지오반니 도스 산토스(LA 갤럭시)처럼 1군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떠나는 선수도 수두룩했다.

 

두 가지 문제가 한국인 삼총사의 발목을 잡았다. 우선 세 선수 모두 기대만큼의 성장을 하지 못했다. 2014년 4월 바르셀로나는 FIFA로부터 유망주 영입과 육성 과정에서 위법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FIFA는 어린 선수들의 교육과 인권 보호를 위해 18세 이하의 선수 이적을 금지하고 있다. 외국인의 경우 축구 관련 업무에 종사하지 않는 부모와 함께 현지에서 생활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비유럽 출신 10명의 유망주가 기숙사 생활을 하며 규정 위반을 했다. 그 대가로 해당 선수 10명은 2016년 1월까지 공식 경기에 나설 수 없었다. 선수로서 가장 중요한 성장 시기에 실전 경험이 멈춰버린 것이다. 세 선수 모두 인터뷰에서 이때를 가장 아쉬운 시기로 꼽았다.

 

 

바르셀로나 삼총사의 도전 2막

 

백승호와 이승우는 동 연령대에서 세계적인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잃어버린 2년으로 인해 기술적 성장이 둔화됐다. 지난 5월 열린 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순간적인 재능은 보였지만, 유럽과 남미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이용수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과 20세 이하 대표팀에서 그들을 지도한 신태용 국가대표팀 감독도 입을 모아 “한국 축구의 큰 손실이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기회는 기존 계약 안에서, 혹은 성인 계약을 새로 맺은 뒤 B팀에서 검증을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변수가 발생했다. 스페인 3부 리그 소속인 바르셀로나 B팀이 2부 리그로 승격한 것이다. 3부 리그는 국적과 관계없이 자유롭게 뛸 수 있다. 유망주 육성을 위한 바르셀로나의 기조와 맞았다. 반면 2부 리그부터는 비유럽 선수 보유와 출전에 제한이 있다. 결국 바르셀로나 B팀은 비유럽 국적 선수 상당수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3군 격인 C팀을 부활시켜 3부 리그에 참가시킨다는 소문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 B팀의 2부 리그 승격은 사실상 한국인 삼총사에게 스스로 길을 찾으라는 방출 통보나 다름없었다.

 

이제 자신이 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기준의 팀을 찾아야 하는 시기다. 가장 먼저 길을 찾아 나선 것은 장결희다. 일찌감치 B팀 승급 불가를 통보받고 바르셀로나를 떠난 그는 그리스 1부 리그의 아스테라스 트리폴리스로 이적했다. 계약 기간 2년에 1년 연장 옵션이 있다. 상대적으로 눈높이를 낮추고 입단 테스트를 거치는 적극적인 도전으로 유럽 내 성인팀 계약에 성공했다. 리그 개막전에는 결장했지만 1군에서 훈련을 이어가는 만큼 기량 회복에만 성공하면 곧 데뷔전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다음은 백승호가 바르셀로나를 떠났다. 8월21일 프리메라리가 승격 팀인 지로나FC로 이적했다. 3년 계약이며 첫 시즌은 B팀인 3부 리그 소속의 페랄라다-지로나로 임대된 뒤 2년 동안 뛰는 조건이다. 지로나는 창단 88년 만에 처음으로 1부 리그로 승격한 구단이다. 맨체스터 시티의 유망주를 임대하는 형태로 프리메라리가에서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백승호도 그런 팀의 가능성을 주목했다. 지로나는 백승호가 머물던 바르셀로나 인근 도시여서 적응도 수월하다.

 

남은 선수는 이승우다. 그 역시 새 소속팀을 찾아 올여름 떠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유력하게 언급되는 팀은 이탈리아 세리에A의 헬라스베로나다. 협상 속도는 느리지만 유럽 상위 1부 리그와의 1군 계약을 추진 중이라는 점에서 세 선수 중 무게감이 가장 크다. 베로나는 현재 이승우 영입에 대비해 한 자리를 비워둔 상태다.

 

한국인 삼총사의 도전은 이제 2막을 앞두고 있다. 슈퍼클럽의 유망주라는 온실을 떠나 성인 선수로서 유럽 무대에서 생존해야 한다. 이제 그들이 보여줘야 하는 것은 유럽에서 수년간 버텨온 강한 적응력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량뿐이다. 유럽 축구의 들판 한가운데에 선 그들의 도전은 어떤 결말로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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