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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아직 ‘기회의 나라’다”

[세계속의 한상들] 한인사회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 홍명기 듀라코트 회장

미국 LA=김인욱 LA 우리방송 보도본부장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3(Sun) 16:00:00 | 14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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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아직 기회의 나라다.”

 

미국 최고의 특수 페인트 제조업체 ‘듀라코트’의 대표 홍명기 회장(83). 미주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사업가이면서 ‘M&L Hong Foundation’(M&L 홍 재단·옛 밝은미래재단)을 통해 활발한 자선활동을 하고 있는 한인사회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인 홍 회장이 인터뷰 내내 힘주어 하는 말이다.

 

홍 회장은 한인사회에서 성공한 사업가이면서 M&L Hong Foundation을 통한 한인 차세대 육성과 각종 사회사업뿐만 아니라, 도산 안창호 선생 동상 건립, 대한인 국민회관 복원, 미주한인 100주년 기념사업, 남가주 한국학원 살리기 등 한인사회의 숙원사업에 앞장서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LA에서 60여 마일 동쪽에 있는 리버사이드시에 위치한 듀라코트의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여든의 노신사로부터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과 나눔의 삶을 들어봤다.

 

지난해 11월 한인사회에는 글로벌 코팅제 전문업체인 ‘엑솔타 코팅 시스템즈’가 홍 회장이 경영하는 듀라코트를 인수하기 위한 최종합병계약서를 체결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인수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듀라코트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특수 페인트 기업인 점을 고려하면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듀라코트는 홍 회장이 27년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1986년 51세의 나이에 자본금 2만 달러로 창업해 오늘날 그의 성공신화를 있게 한 회사다. 홍 회장은 미국이 아직도 ‘기회의 나라’라고 힘주어 말한다. 

 

“51세의 나이에 시작해 내가 이뤘다면 누구나 이룰 수 있다. 독특한 아이디어 하나로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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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가 넘은, 다소 늦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을 시작하자고 마음먹은 것은 다니던 회사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인 일명 유리천장을 실감하고부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화학 전공을 살려 페인트 회사에 취직했고, 세 번의 이직을 거쳐 22년간 굴지의 페인트 회사에서 연구소 소장까지 지냈지만, 시간이 갈수록 유리천장의 벽을 느꼈다. 내가 밤잠을 자지 않고 연구해 개발한 제품들이 시장에 나가서 히트를 쳐도 승진에는 제한이 있더라.

 

 

아직도 미국 기업 내에 유리천장이 존재한다고 보는가.

 

내가 회사에 근무할 당시에는 분명 미국 기업체에서 소수민족으로는 어느 정도까지밖에 오를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그 당시보다는 심하지 않을지 몰라도 현재도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청년층 차세대들을 만나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라고.

 

 

그래도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은 고민이 있었을 텐데.

 

회사에서는 더 이상 오를 수 없다고 생각해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이런 결심을 하는 데 당시 간호사였던 아내(홍영옥씨)의 권유와 격려가 큰 힘이 됐다.

 

 

초창기에 어려움은 없었나.

 

컨테이너에서 시작한 사업은 처음부터 쉬운 것이 아니었다. 이전 회사에서 연구하던 것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해야 했고, 연구개발과 판로개척 등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듀라코트의 신제품 샘플에 만족한 스미토모사(社)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성장하게 된 거다.

 

듀라코트는 직원 150명에, 건축용 철근 부식을 막는 ‘세라나멜’을 비롯해 수백 종류의 산업·건축용 특수 페인트를 제조하고, 미국 내 시장점유율 1위, 연 3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성장했다.

 

 

사업 성공의 비결은 무엇이었나.

 

사업을 하는 동안 아이디어와 긍정적인 마인드에 집중했다. 안 되는 줄 알면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어떻게 이겼느냐고? ‘임파서블(impossible·불가능한)’이란 게 있다. 부정적으로 생각할 땐 이 단어가 불가능이 되지만, 그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I’m possible(나는 할 수 있다)이 된다. 나는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안 된다는 걸 가지고 이걸 만들었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롤모델인데, 다른 한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방법은.

 

기회는 주어져 있다. 요즘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 이민을 줄인다고 해서 그 기회란 것이 없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꿈을 이룰 기회는 있다. 그 기회를 잡아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된다. 노력과 끈기가 있으면 제대로 된 판단이 생겨서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나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나를 보라. 50세가 넘어서 독특한 아이디어 하나로 꿈을 이룰 수 있는 건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다.

 

한국에서 홍명기 회장과 관련한 뉴스가 보도될 때마다 그의 이름 앞에 들어가는 수식어 중 가장 많은 것이 ‘미주 한인사회 기부왕’이다. 2001년 사재 1000만 달러를 출연해 밝은미래재단을 설립하고, 한인사회의 차세대 지도자 육성과 장학, 사회복지 등에 1200여만 달러를 국내외에 기부하는 다양한 활동을 해 오고 있다.

 

 

미국에는 언제 오게 됐나.

 

1954년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도착했다. 당시 평화신문과 수도극장을 운영하던 부친 덕분에 부유한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 서울대 낙방 후에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국비유학생으로 콜로라도주립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다가 2년 뒤 LA에서 영화 사업을 시작한 부친을 돕고자 LA로 와서 UCLA 화학과에 편입했다.

 

 

평소 ‘UCLA는 나의 은인이다’라고 말했다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병행했는데, UCLA에서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놓고 등록금 200달러를 마련할 길이 없었다. 등록을 하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2년간 영어를 가르쳐준 교수님께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다음날 아침 다시 오라는 거다. 아침에 찾아가니 이 여교수는 나를 데리고 학교 인근에 있는 은행에 가서 US본드(채권)를 주고 받은 200달러를 선뜻 건네주는 거다. 그 덕분에 무사히 등록할 수 있게 됐고, 그 학기를 마치고 졸업을 할 수 있었다.

 

 

그 교수가 은인인 셈이다.

 

자신이 가르쳤지만, 친하지도 않았던 나에게 선뜻 등록금을 건네준 데 감명을 받았다. 그때 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성공하면 이분이 한 그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UCLA는 나에게 은인이다. 그 교수가 없었다면 나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그가 사업가로서 기부문화에 참여한 계기가 된다. 그는 2016년 모교인 UCLA에 200만 달러를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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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사회의 숙원사업들에 앞장서고 있는데, 언제부터 한인사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한인사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는 1992년 LA폭동 때다. 사업하면서 조용히 살겠다고 생각해 왔는데 TV로 폭동을 보면서 우리의 권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폭동 직후에 당시 부시 대통령이 한인타운에 와서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냐고 물었다. 그때 많은 한인 1세들이 영어가 부족한 데다 무엇을 요구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고,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할 차세대 양성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리버사이드 시청 앞 공원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상이 우뚝 세워져 있다. 홍 회장은 인랜드 한인회장을 거쳐 미주도산기념사업회 총회장으로 안창호 동상을 리버사이드 시청 앞에 세우는 등 도산의 정신을 후세들에게 알리는 일에 힘써오고 있다.

 

 

평소 존경하는 인물로 도산 안창호 선생을 말하고 있는데.

 

도산 선생의 말씀 가운데, 미국에서 살려면 정직·성실을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한 말이 와 닿았다. 도산의 말씀처럼 미국 사회에 한국 사람은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리버사이드시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상이 세워진 것 외에도 지난해 연말 안창호 선생이 1904년 리버사이드에 건립한 최초의 한인촌 ‘파차파 캠프’가 사적지로 지정됐다.

 

 

정계에 도전하는 한인들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는데.

 

이제 한인사회도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젊은 세대들을 정계에 많이 진출시켜야 한다. 연방의회에 중국계와 일본계는 있는데, 한인들은 한 명도 없는 실정이다. 시나 주 차원은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고, 이제 연방의회에 반드시 한인을 진출시켜야 한다. 한인 부모들도 자녀들을 의대나 치대·법대에 많이 진학시키려고 하는데, 이제는 정계에도 많이 진출시켜야 한다.

 

데이빗 류 LA 시의원, 미셀 박 스틸 오렌지카운티 슈퍼바이저, 지난 6월 연방하원선거에서 아깝게 낙선한 로버트 안 후보 등 정계에 도전하는 한인 후보들 옆에는 언제나 이들을 후원하는 홍 회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재외동포 기업인을 우리는 한상(韓商)이라고 부른다. 한상들이 지난해 차세대 리더 양성을 위해 설립한 장학재단 ‘글로벌 한상드림’의 발기인 총회에서 홍명기 회장은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한상들이 한국을 돕고, 해외에서 한국을 홍보하는 역할을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 매년 수천 명이 참석하는 한상대회에 지금까지 16년 동안 한국의 대통령 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 한 명만 참석해 축사를 해 줬다며 이 말은 꼭 써달라고 기자에게 당부한다. “국가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이 한상들의 꿈을 위해 한상대회에 와서 격려의 한 말씀 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재단을 통한 기부활동에 적극적이다.

 

밝은미래재단을 지난해 나와 아내의 이름을 딴 ‘M&L Hong Foundation’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보다 많은 자금을 출연하고 거기서 생기는 충분한 기금으로 재단의 장학과 기부 등 사회사업을 좀 더 강화해 자선활동에 주력할 생각이다. 밝은미래재단을 만들 때의 1000만 달러 출연금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홍명기 회장은 앞으로 M&L Hong Foundation에 출연할 금액에 대해 “엄청난 규모의 금액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시기는 듀라코트의 매각이 마무리되는 2019년 1월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홍 회장은 그 후엔 자선활동에 주력할 생각이라고 한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은 벌면 나눌 수 있는 인생,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축복이라는 것이다. 나누면 저절로 선한 일만 생긴다. 서로 나누고 선한 일을 하는 동포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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