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나기 요리 명가의 인기 비결
  • 이인자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4 14:52
  • 호수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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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자 교수의 진짜일본 이야기] 100년 이상 내려오는 양념장과 조리방식, 오랜 역사 안에 숨겨 있는 스토리텔링

[편집자 주]

일본 도호쿠(東北)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는 이인자 교수는 재일교포·묘제(墓制) 연구의 권위자이며 동일본대지진 연구에서 세계 일인자로 평가받는 석학(碩學)이다. 이 교수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후 피해지역을 답사하며 재난에서 살아남은 희생자 유족과 생존자들의 정서적 피해와 복구에 대해 연구해 왔다.

 

입추도 훌쩍 지난 8월 하순인데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입니다. 도쿄(東京) 주택지 중심에 자리 잡은 오래된 상가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더위에 지쳐 있습니다. 상가에 들어서 조금 걷자 달달하고 고소한 냄새가 날아옵니다. 불볕더위에 볕을 가릴 그늘도 없는 가게 앞에 길게 사람들이 줄 서 있습니다. 저도 그곳이 목적지였습니다. 일본의 여름 보양식으로 한국에도 알려진 우나기(鰻·민물장어·이하 장어) 요릿집입니다. 상가라지만 다른 가게들은 한산한데 장어집만 줄 서 있는 사람과 장어를 구우면서 나오는 연기가 상가를 모두 점령한 것처럼 보입니다. 듬성듬성 아예 문을 닫은 상점도 보입니다. 주변 상가의 기분을 잘 알아차린 듯 ‘다른 가게의 입구를 막고 서지 마세요’ ‘아파트 입구입니다. 막지 않도록 해 주세요. 특히 안에 들어가서 계단에 앉아 기다리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등의 벽보가 여기저기 보입니다. 

 

우나기를 숯불에 굽고 있는 모습. 한여름에 숯불 앞에서 종일 굽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매일 옷을 두 번 갈아입는다고 한다. © 사진=이인자 제공

 

가보처럼 여기는 짚신 장식

 

장어는 맛은 좋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 서민들이 자주 갈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특별히 이유가 있어 못 먹는 사람 외에는 장어를 먹는다는 것만으로 설렙니다. 그에 걸맞게 대부분의 장어 요릿집은 입구부터 품격이 있어 보이는 곳이 많습니다. 또한 역사가 깊은 곳이 많아 제가 알고 있는 오래된 집으로 10대째 239년이 된 장어집 가와치야(川千家)도 있습니다. 이런 가게는 맛과 함께 인기 비결로 이어지는 스토리텔링도 잘돼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창업 당시부터 지켜온(100년, 200년 단위로) 비전(秘傳)의 양념장이 맛을 정한다는 것이지요. 100년 넘게 내려오는 양념장이 맛의 비결이라 하면 그야말로 ‘넘사벽’임이 틀림없습니다. 좋은 재료, 훌륭한 기술 등을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100년 이상 내려오는 양념장과 조리방식을 지켜왔다는 점을 손님들은 특별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의 내실은 대체로 다다미방이고, 별생각 없이 보면 앤티크한 가구나 작품으로 보이는 장식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진에도 있듯이 손님이 들어갈 방 안에 금고가 있고 그 위에 부를 가져다준다는 신을 모신 가미다나(神棚)가 있습니다. 알아보는 사람만 알 수 있는 것들도 많지만, 일부러 묻거나 특별한 손님이 아닌 이상 별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저도 가끔 가는 센다이(仙臺)의 장어집 가이세이안(開盛庵)의 현관을 들어서면 짚신이 액자 안에 모셔져 있습니다. 고이 모셔진 짚신이야말로 가게 주인과 종업원들이 가보처럼 여기는 중요한 장식품입니다. 짚신 장식은 1000일 수행을 행한 승려가 마지막 날에 신고 하산한 것이라 합니다. 1000일 수행을 마친 승려를 일본에서는 특별히 아자리(阿梨)라 칭하며 살아 있는 부처를 대하듯 깍듯합니다. 이 액자 안의 짚신에 대해 알게 된 손님들은 아주 귀한 곳에 와서 장어를 먹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자칫 절대자(신)를 세워 의지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맛과는 직접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로워 소개할까 합니다. 이 장어집은 창업한 지 137년이 됐고 여사장인 스즈키 레이코(鈴木禮子)씨는 조부모가 창업해 부모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아 3대에 해당합니다. 사장인 그녀의 중요한 역할은 대외적인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중시하는 것이 종교적 행위입니다. 장어를 살생하기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주 임무입니다. 매달 가까운 절의 스님을 불러 독경을 읊고 설법을 듣습니다. 제사를 마치면 살아 있는 장어 서너 마리를 사장과 요리장이 직접 강가에 방류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매달 조부모 시절부터 다니던 여러 곳의 절에 시주와 함께 특산물을 보냅니다.

 

또한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교토까지 비행기를 타고 매년 3번은 참배를 하러 갑니다. 교토에 동행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50여 년을 한결같이 공양하고 있는 스즈키씨는 누구보다 아자리 고승들에게 대접을 받는 신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현관 입구에 걸려 있는 짚신은 100년 된 양념장으로 맛을 낸 장어처럼 50여 년간 한결같이 관계를 맺어온 장어집 사장의 정성이 담겨져 있는 귀한 장식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멀리 교토에 있는 명사만을 섬기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지역 신사에서 올리는 축제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합니다. 상가 점주들 모임도 중요한 활동의 하나입니다. 지위가 높은 편인 가게는 지역사회에서 오랜 기간 해 온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시주와 공양 그리고 지역사회에 들이는 정성과 금전을 경비로 따진다면 결코 가볍지 않을 정도입니다. 현대적 경영 방법을 적용한다면 지출 대비 결과가 보이지 않아 젊은 경영진과 갈등을 빚을 소지도 높습니다.

 

우나기 요릿집 안에 있는 가미다나(神棚)© 사진=이인자 제공

 

스토리텔링 많은 가게가 오래 간다

 

앞서 소개한 227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도쿄의 장어집도 비슷합니다. 다다미방에서 보이는 정원에 작은 신사가 차려져 있고 매달 두 번은 공양을 올린다 합니다. 두 달에 한 번 특별한 기도를 드리고 가까운 강에 나가 장어를 방류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또한 상가 안에 있는 절의 행사에도 참여해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지역상인들 내에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일본 각지에 장어묘(鰻塚)나 묘비가 있는데 이곳에서 거행되는 제사에도 참배하러 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와 대비되는 예로 ‘일본은 우동집을 자자손손 5대를 이어 하고 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우동집만이 아니라 초밥집, 장어집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게 일본과자(和菓子)점입니다. 가업으로 이어가는 대표적인 상점입니다. 장어집의 보이지 않는 경영자들의 신앙적 행위를 살피면서 문득 100년, 200년 대를 이어 가게를 운영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일본의 절과 신사는 전통적으로 종교적 기관 이상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절은 지역사회에서 죽은 자의 넋을 기리고 조상을 섬기는 일을 담당해 왔고, 신사는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축제를 담당해 왔습니다. 그러기에 그 지역의 절과 신사가 튼튼한 것은 지역사회에 있어 중요한 일입니다. 이러한 절과 신사를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지역 상점을 지역 사람들은 손님이 되어 찾아오고 가격 대비로 물건을 고르기보다 조금은 비싼 값도 마다하지 않고 치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일본은 상가였던 곳이 쇠퇴해 일명 ‘셔터가(街)’로 변하고 있는 곳이 많아져 사회문제화되고 있습니다. 가격 대비가 가장 큰 물건이 선택의 기준이 된 지 오래입니다. 현대인은 모든 정보를 인터넷에서 입수하고 많은 쇼핑을 인터넷 쇼핑몰에서 하고 있습니다. 몇 백 년을 유지해 온 가게도 가격 대비와 손님들의 만족도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문을 닫을 수 있는 위기가 찾아옵니다. 음식점이라면 당연히 맛이 있어야 합니다. 가격 대비로는 불리하지만 오랜 역사 안에 숨겨 있는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소재가 많은 가게는 그야말로 명가로 거듭나 이 시대에도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무엇에 값을 매기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기분으로 치르고 있는지, 그 치른 값은 무엇이 되어 되돌아오는지, 아님 메아리가 없는 값을 치르고 있는지, 맛있게 구워진 장어를 먹으면서 그런 것들을 탐색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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