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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Insight] “항복 문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도록 수장시켜라”

김정은, 김정일 시절엔 상상하기 힘든 강경발언 쏟아내

이영종 중앙일보 북한전문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7(Thu) 11:00:00 | 14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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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5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강원도 원산에 머물고 있었다. 동해에 접한 갈마반도에서 벌어진 북한군 특수부대의 훈련을 참관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는 백령도와 대연평도 점령을 위한 가상훈련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수역의 남측 최북단 섬을 차지하기 위한 북한군의 훈련을 김정은이 직접 지휘한 셈이다. 대북 정보 관계자는 “서해 섬 점령을 가상한 훈련을 동해안에서 벌이는 것도 특이했지만 가장 관심을 끈 건 김정은의 발언 내용”이라고 귀띔했다.

 

이튿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전한 김정은의 언급은 충격적이다. 그는 유사시 대남 침투의 선봉에 설 특수작전부대에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고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극단적인 대남 비난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김정일은 내부적으로 어떤 호전적 발언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같은 언급을 관영매체로 떠들썩하게 공개하지는 않았다.

 

김정은은 처음부터 달랐다. 2011년 12월 집권한 김정은은 이듬해 3월 서해 최전방 섬 방어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적진을 아예 벌초해 버리라”는 거친 말을 쏟아냈다. “항복 문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도록 수장(水葬)시키라”라는 언급도 했다. 이번 언급은 6년 전보다 훨씬 강도가 높아진 것이란 게 대북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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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라인 넘은 김정은의 ‘혀’

 

김정은이 처음 격렬한 대남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할 때 정보 당국은 그저 젊은 호기에 큰소리를 치는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 김정은의 입에서 온갖 거친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 불바다’ 발언은 물론 ‘통일성전’ 운운하는 전쟁 협박 언급도 더해졌다.

 

지난해 말 한국에서 대통령 탄핵 국면이 전개되자 김정은의 발언은 더욱 노골적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군부대를 방문한 김정은이 “남조선 것들 쓸어버리라”는 말을 거침없이 토했고, ‘미제와 그 졸개들’이란 표현으로 남한을 조롱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발언을 놓고 김정은의 북한이 남한 전체를 적대시하는 노선으로 돌아선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과거에는 북한 관영매체나 김정은이 ‘남조선 집권 세력’ 또는 ‘군부 호전광’ 등의 표현을 동원해 대상을 한정했다. 표면적으로라도 ‘남조선 민중’과 ‘통치세력’을 구분해 비난 대상을 특정하는 방식을 써왔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의 대남 비난은 ‘남조선 것들’ 운운하며 아예 대한민국을 뭉뚱그려 멸절(滅絕)의 대상으로 지목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만큼 김정은이 무차별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북한 매체나 기구들도 공공연히 위협 발언을 내놓는다. 7월31일 북한의 이른바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는 우리 정부의 대북 미사일 대응을 거론하며 “남조선 판도가 쑥대밭으로 화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북한의 크고 작은 선동매체들은 김정은의 발언 수위에 맞춰 ‘핵 불바다’ 등으로 위협하며 대남 비방과 공갈을 일삼는다.

 

이런 행태를 두고 우선 김정은의 대남 콤플렉스가 강경한 대남 발언으로 나타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10대 시절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은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남한 사회의 발전상을 체감했을 수 있다. 김정은이 조기 유학하던 시기는 1990년대 중후반이다. 대홍수로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고 남한으로부터 중국산 옥수수를 지원받아 버티던 시기다. 당시의 체험이 남한 사회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나고 있을 것이란 얘기다.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빅터 차(Victor Cha)는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저서 《The Impossible State》(불가사의한 국가, 2012)에 담았다. 이에 따르면, 당시 김정은이 공부하던 반에는 ‘성미’라는 또래 한국인 여학생이 있었다. ‘박운’이란 가명을 쓴 김정은은 이 한국인 친구에게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이 학교에 소문이 난 상태라 김정은을 상대해 줄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밀어주려던 김정은은 성미가 “하지 말라”며 거절하자 그네를 거칠게 밀어버리고 달아났다고 한다. 서방국가에서 북한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시기의 불편했던 추억이 김정은에게 남한에 대한 열패감을 깊이 느끼게 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국과 미국에 의해 옴짝달싹못하게 사로잡혀 있다는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미 제국주의의 대북 고립 압살 책동’으로 북한 체제가 지난 70년간 정치·경제적으로 고립과 궁핍을 면키 어렵게 됐다는 식의 주장을 통해 북한의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나 김일성 유일 지배의 폐해를 덮어버리는 방법을 구사한다. 27세의 나이에 세습권좌에 오른 자신을 노회한 고령 간부들이 무시할 것이란 생각도 김정은의 감정에 기복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유학 시절, 대남 콤플렉스의 발현”

 

김정은의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있을 수 있다. 북한이 기치로 내걸었던 반미와 자주·주체 등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자신들이 ‘미제 식민지’라고 혐오해 온 한국은 경제발전과 번영을 성취해 가고 있다. 이런 격한 감정에서 김정은은 수시로 “남조선이 발편잠을 못 자게 할 것”이라는 말을 쏟아내고 있다.

 

북한은 한동안 남한 체제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연일 핵 위협과 미사일 도발 드라이브를 걸면서 워싱턴 당국과 담판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 정부가 개입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핵 문제는 북·미 간의 의제”라고 맞받아쳤다. 그러던 북한이 대남 비난의 수위를 올리고 있다. 북한을 비난하는 책자를 소개했다는 이유로 남한의 언론사 기자와 사주에 대해 처형 운운하며 관영매체를 통해 협박하고 나서기도 했다.

 

북한은 지난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제안에 대해 거부 입장을 드러내왔다. 남북 당국 간 대화나 이산상봉 같은 교류행사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비난의 화살을 남한 쪽으로 돌린 북한이 어떤 대남 전술을 구사하고 나설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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