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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충무로에는 다양한 ‘사소함’이 필요하다

정유미·정은채·문소리 등 실력파 배우 출연한 《더 테이블》 《여배우는 오늘도》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9(Sat) 15:00:00 | 14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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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렉스를 위시한 최근의 극장 풍경은 대작 상업영화 위주로 돌아간다. 영화 규모와 제작비는 날로 치솟고, 대작 영화의 연출과 출연 기회를 잡는 것은 소수의 영화인들에게 국한된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양성은 날로 실종되거나 살아남기 어려운 모양새다. 최근 창작자와 배우들이 적극적으로 활로를 모색하려는 프로젝트들이 시도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더 테이블》과 《여배우는 오늘도》는 적은 예산, 재치 있는 아이디어로 승부수를 띄운다면 새롭고 다양한 작품들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들이다.

 

 

가장 간결한 제작 방식을 고민한 결과물

 

8월24일 개봉한 《더 테이블》은 개봉 일주일 만에 5만 관객을 돌파했다. 하루에도 수십만 관객을 동원하는 상업영화 스코어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다양성영화로는 유의미한 기록이다. 올해 개봉한 다양성영화 가운데 현재(8월31일)까지 관객 1만 명을 돌파한 작품은 열다섯 편이며, 그중 5만 명을 넘긴 영화는 《더 테이블》을 포함해 여섯 편에 불과하다. 관객 1만 명도 모으기 어려워진 다양성 영화 시장에서 이 같은 선전(善戰)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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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배경은 어느 카페의 창가 쪽 테이블. 카메라는 같은 공간에서 오전 열한 시, 오후 두시 반, 오후 다섯 시, 저녁 아홉 시까지 이 테이블에 앉는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담는다. 여배우 유진(정유미)과 옛 애인 창석(정준원), 하룻밤 사랑을 나눈 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서야 다시 만난 경진(정은채)과 민호(전성우), 결혼 사기를 위해 가짜 모녀 행세를 해야 하는 은희(한예리)와 숙자(김혜옥), 다른 남자와 결혼을 앞둔 혜경(임수정)과 애인 운철(연우진)은 만남의 목적에 따라 서로의 마음을 떠보고 실망하고 기뻐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이 영화는 최소한의 제작 규모와 장치들로 완성한 작품이다. 하루 만에 촬영을 마친 세 번째 에피소드를 제외한 나머지 에피소드들은 이틀에 걸쳐 찍었다. 즉 일주일 안에 모든 촬영을 마쳤다는 얘기다. 김종관 감독이 별도의 외부 투자금을 끌어오지 않고도 간결하게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 결과다.

 

개봉 직후부터 포털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잔잔하고 소소한 이야기라 좋다’ ‘매력적인 여배우 네 명에 집중하는 영화라 반갑다’는 관객 평이 주를 이룬다. 특정 사건이 아닌 인물들이 품은 저마다의 사연과 감정 그리고 여백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정적(靜的)인 흐름을 지닌 영화도 관객들에게 얼마든지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정유미, 한예리, 정은채, 임수정까지 스타 배우들의 캐스팅은 영화에 대한 관심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했다. 김종관 감독의 표현에 의하면, 이 같은 라인업은 “한정적인 캐릭터 속에서 고민하던 여성 배우들이 작은 영화임에도 흔쾌히 의미를 둔 덕”에 완성할 수 있었다.

 

‘자력갱생(自力更生)’이라는 말에 이렇게 맞춤옷처럼 들어맞는 영화도 드물다. 배우 문소리가 각본을 쓰고 연출과 주연까지 겸한 《여배우는 오늘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시작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연출제작과에 재학 중이던 문소리가 만든 단편이다. 졸업을 위해서는 세 편의 영화를 만들어야 했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여배우》를 시작으로 문소리는 그간 《여배우는 오늘도》 《최고의 감독》까지 단편 연출작을 쌓아왔다. 이번에 개봉하는 프로젝트는 이 세 편을 묶은 것이다. 영화는 이를 자연스럽게 1막·2막·3막으로 연결했다.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재미는 배우의 자기 관찰과 객관화다. 영화 안에는 연기파 배우라는 대중과 평단의 칭찬, 연기상으로 받은 트로피 개수는 넘쳐나지만 정작 원하는 배역의 러브콜을 받기란 좀체 쉽지 않은 18년 차 여배우의 현실이 녹아 있다. 물론 이 영화는 픽션이지만 문소리의 말마따나 “지금껏 영화 속에서 느꼈던 것과 유사한 감정이 드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결과물에 가까워 보인다.

 

캐스팅을 기대하던 작품에 참여하지 못했을 때의 서러움, 불콰하게 취해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의 태도를 감내해야 하는 곤욕, 여배우인 동시에 며느리이자 아내 그리고 엄마이자 딸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으로서의 피로, 함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애증, 예술에 대한 고민까지 ‘극 중 문소리’를 통해 ‘배우 문소리’의 생각들이 발화되는 것을 지켜보는 경험은 신선하다. 데뷔 때부터 배우치곤 그다지 예쁘지 않다는 말을 종종 들었던 그가 “역시 연기력보다는 외모와 매력”을 운운하고, “여배우로 살기 더럽게 힘들다”라는 푸념을 털어놓는 순간 이 영화는 실제와 극영화 그 중간 어디쯤에 스스로 위치하기를 자처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재미있다. 통통 튀는 대사들과 상황을 리듬감 있게 엮은 연출 솜씨가 발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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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프로젝트들을 향한 기대

 

앞서 이야기한 이 두 편의 영화로 충무로의 어떤 경향성을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 두 작품 모두 감독이 외부 투자를 받지 않은 채 자유롭게 진행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배우는 오늘도》는 몇몇 영화제에 공개됐을 뿐 개봉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다가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잘하고 싶고, 작게나마 정식으로 개봉하면 작품에 참여한 스태프와 배우들에게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아서”라는 문소리의 생각으로 개봉이 추진된 경우다.

 

하지만 가능성은 엿볼 수 있다. 이 같은 영화들이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고 관심을 얻는다면 규모와 제작 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내용의 영화들, 배우 앙상블이 돋보이는 작품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있다.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여배우 중심의 영화 제작에 대한 관심을 한층 촉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더 테이블》과 《여배우는 오늘도》를 프로듀싱한 구정아 PD는 “인기와 티켓 파워를 갖춘 남자배우들은 차기작 이후의 차기작들까지 빼곡하게 정해진 상황이라 기획자들이 현실적으로 기획 가능한 프로젝트들을 시도하려 하는” 일련의 경향이 있음을 지적했다.

 

“멜로와 드라마 장르는 투자가 잘 안 되고 캐릭터 또한 한정적이다. 최근 영화들이 뜨거움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사소함에 집중하는 영화도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김종관 감독의 말대로다. 지금 충무로에는 더욱 다양한 사소함들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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