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갑질로 수천억 가치 기술 뺏겼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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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토류 전문가 김유철씨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일진그룹 측 “검찰 조사 지켜보겠다”

 

맨손으로 시작해 자산 3조원대 그룹을 일군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이 또 다시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올해에만 벌써 두 번째다. 허 회장은 지난해 홍콩 페이퍼컴퍼니에 숨겨둔 1292만 달러(한화 146억원)가 들통 나면서 국세청으로부터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다. 국세청은 지난해 말 허 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검찰은 올해 1월 허 회장을 벌금 12억원에 약식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이 검찰의 약식기소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허 회장은 정식 재판에 회부됐다. 신고하지 않은 돈이 100억원을 넘어가기 때문에 약식기소는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4월 허 회장에게 벌금 7억원을 납부하라고 판결했다. 허 회장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1심에서 형이 확정됐다. 

 

법원 판결이 있고 3개월 정도가 흘렀다. 서울중앙지검에 또 다시 허 회장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됐다. “허 회장과 일진그룹의 갑질로 수천억원 가치가 있는 기술과 회사를 강탈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고소인은 현재 “치밀한 계획 하에 회사를 빼앗아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허 회장 측은 “검찰 내사를 통해 이미 면죄부를 받은 사안”이라며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짧게 답했다.  

 

희토류 전문가인 김유철 비즈맥 대표가 9월7일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을 검찰에 고소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허진규 회장, 올해만 두 번째 검찰 조사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계바늘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소인 김유철씨는 2014년 세계 2번째로 고품질의 희토류본드 파우더를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희토류본드 파우더는 전기자동차나 휴대폰, PC, 스마트폰, 가전제품 등의 모터에 사용되는 첨단 자석의 재료다. 원료와 완제품을 합할 경우 시장 규모만 1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희토류본드 파우더의 원료는 그 동안 중국이 독점해 왔다. 김씨가 양산에 성공한 희토류본드 파우더는 기존의 중국산보다 10% 정도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여러 업체들이 관심을 보였다. 현대차와 도요타 등 국내외 완성차 업체는 물론이고,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전자업체, 유럽의 코렉터(Kolecktor) 등 세계적인 모터 업체에도 제품을 납품할 예정이었다. 

 

일진IRM이 2015년 4월 작성한 ‘15년 사업현황 및 추진전략’에 따르면 현재 현대차 연구소 및 유럽 커렉터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각각 360~1400톤 및 150톤 규모의 공급 논의를 벌이는 것으로 표시돼 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허 회장을 소개받아 투자를 받게 된다. 김씨는 “희토류 사업에 대한 허 회장의 관심이 대단했다. 차남인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와 함께 직접 해외 시장을 둘러볼 정도였다”며 “허 회장 지시로 7개월간 투자를 위한 실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2015년 작성된 일진그룹 투자심의위원회 보고서에도 허 회장과 차남인 허재명 대표가 시장 파악을 위해 중국 갤럭시사를 방문한 것으로 표시돼 있다. 

 

양측은 2014년 9월 투자 합의서를 작성했다. 비즈맥이 관련 기술 및 생산라인을 일진에 제공하면 일진그룹이 100억원 투자와 경기도 화성의 일진전기 부지를 임대해준다는 게 골자였다. 얼마 후 양측은 새로 설립된 일진IRM에 비즈맥이 현물 출자하고, 김씨가 신규법인의 지분 49% 받는 방식으로 다시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가 물상보증을 서는 조건으로 일진그룹이 비즈맥의 대출금 10억원을 대여해줬다. 

 

하지만 본격적인 사업을 진행하기도 전에 양측은 갈등을 빚었다. 유상증자 시기나 제3자 투자, 영업 문제로 사사건건 부딪혔다. 결국 일진은 2015년 7월 김씨를 공동대표에서 해임시켰다. 2015년 9월에는 이사회를 통해 일진IRM이 보유한 생산 기계와 기술을 일진머티리얼즈에 사실상 헐값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김씨가 보유한 49%의 지분 역시 일진머티리얼즈에 넘어간 것이다. 

 

일진 측은 현재 구체적인 언급을 꺼리고 있다. “오너와 관계된 일이기 때문에 세부적인 내용은 알지 못한다”는 말만 기자에게 반복했다. 일진그룹의 한 관계자는 “몇 년이 지난 사건인데다, 사업을 담당했던 직원들도 모두 퇴사했다”며 “검찰이 조사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짧게 답했다.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하지만 김씨 측은 “지분이 넘어간 사실도 뒤늦게 알았으며, 일진 측으로부터 어떤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는 “내가 물상보증을 선 10억원을 문제 삼는다고 해도 지분을 넘길 때는 통보를 해야 한다”며 “내용증명을 통해 일진그룹과 허 회장 측에 경과를 물었지만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허 회장 측이 치밀한 계획 하에 자신을 해고하고 지분까지 빼앗아간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최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김씨의 지분이 일진으로 넘어간 과정이 얼마나 투명하게 진행됐는지 여부가 향후 검찰 수사의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씨는 지난해 서울서부지검에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유야무야 넘어갔다. 이번에도 검찰이 ‘혐의 없음’으로 사건을 처리할 경우 허 회장은 구설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검찰 조사 과정에서 또 다시 불법 사실이 드러날 경우 허 회장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차남 밀어주려 ‘깡통 회사’ 만들었는지도 주목

 

7월 말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이 검찰에 고소되면서 주목되는 점은 또 있다. 기존에 희토류 관련 사업을 하던 일진IRM이 사실상 청산되고, 생산시설과 인력, 자산 등이 일진머티리얼즈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일진머티리얼즈는 현재 일진그룹 지배구조의 한 축이다. 허 회장은 2013년 11월 지주회사 격인 일진홀딩스 지분 전량(15.3%)을 장남인 허정석 일진홀딩스 대표 측에 몰아주면서 사실상 후계구도를 마무리 지었다.

 

차남인 허재명 대표의 경우 일진머티리얼즈를 통해 나머지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허 대표는 이 회사의 지분 62%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도 한다. 이 회사로 최근 일진IRM이 보유한 희토류 관련 생산시설과 자산 등이 모두 넘어가면서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

 

일진그룹 지배구조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일진머티리얼즈는 2011년 3월 코스피에 상장했다. 오른쪽 두번째가 허진규 회장의 차남인 허재명 대표다. © 사진=연합뉴스

회사 경영 상황이 좋기 않았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일진그룹은 2015년 9월 이사회를 통해 일진IRM의 생산기계를 생산원가 이하로 일진머티리얼즈에 넘겼다. “사실상 고철값이나 다름없었다”는 게 고소인 김씨의 주장이다. 

 

당시 김씨는 “3개월간 한시적으로 모든 경비를 부담하고, 제고를 40억원 이상에 매각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안산 공장의 생산을 모두 중단하고 일진머티리얼즈의 익산 공장으로 모든 설비를 옮겼다”고 말했다. 

 

이후 일진머티리얼즈는 제품 생산을 재개했다. 김씨는 “내가 대표이사에서 해임되고, 생산설비까지 차남 회사에 넘어갔다”며 “치밀한 계산에 따라 차남에게 희토류 관련 사업을 넘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14년까지만 해도 회사 자산이 144억원이었다. 2015년 12억원의 적자를 냈다고 해도 1년 만에 자산이 10억원대 회사로 둔갑했다”며 “차남에게 승계하기 위해 일진IRM을 깡통 회사로 만든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희토류 본드 파우더는 전기자동차나 휴대폰, PC, 스마트폰, 가전제품 등의 모터에 사용되는 첨단 자석의 재료다. 최근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희토류를 얼마나 확보하는 지가 그 나라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열쇠가 됐다. 

 

일례로 중국과 일본은 지난 2012년 다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당시 중국이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면서 순식간에 희토류 가격이 치솟은 바 있다. 

 

전기자석의 원료가 되는 희토류. © 사진=연합뉴스

첨단 자석의 원료가 되는 희토류. ©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고율의 관세 부과를 비롯해 보호무역 조치에 나서면 중국이 스마트폰 등 전자 제품에 쓰이는 ‘희토류’의 대미 수출을 중단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자동차와 반도체가 주력 수출품인 만큼 희토류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설 “남한의 쌀과 북한의 희토류를 맞교환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김씨가 최근 상황에 대해 아쉬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사업 초기만 해도 ‘대단한 기술이다. 누구한테도 보여줘서는 안된다’고 허 회장이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욕심을 부리며 사업에서 나를 배제했다”며 “당초 약속한대로 인도에서 재료를 받아 희토류 본드 파우더를 생산했다면 수천억원대의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국가적으로도 큰 이익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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