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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지구 위에서 본 근대

[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유럽사 편)]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8(Fri)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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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싸움을 할 때는 몸과 마음이 평소와는 전혀 다른 상태가 된다. 자율신경계가 교감신경체계로 전환되면서, 공격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이 다량 분비되어 신경이 예민해지고 근육의 힘이 증폭되며 마음은 긴장, 경쟁심, 두려움, 분노, 증오 같은 부정적 감성에만 사로잡히는 상태가 된다. 극단적인 교감신경상태가 되어야, 전투 중에 적의 목숨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싸움을 하는 사람들, 즉 극단적인 교감신경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일을 두루 살필 여유가 없다. 그냥 바로 눈앞에 있는 적을 제압하는 데 혼신의 에너지를 집중한다. 뚜렷한 공동의 적이 없을 경우엔, 바로 자기 눈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 엄청난 적대감을 갖게 되며, 따라서 아주 가까운 사이인 사람끼리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아마 소빙하기동안에는 지구촌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상태였던 것 같다. 이 기간 중 거의 내내, 그리고 지구상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그야말로 끊임없이 크고 작은 싸움판이 벌어졌다. 

 

나라 안에서는 서로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싸웠고, 국경을 공유하는 이웃나라 간에는 거의 예외 없이 서로 밀고 밀리는 침략전쟁이 있었다. 심지어는 인류 역사 속에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형태의 싸움도 나타났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로 다른 대륙에 살고 있던 인간 집단 사이의 싸움, 유럽의 식민지 정복전이다.

 

왜 그렇게 싸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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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이상기후였던 소빙하기

 

일단 극심한 한랭기라 먹고 살 것이 빠르게 줄어갔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일 수 있다. 그런데 소빙하기 동안에는 단지 기온만 내려간 게 아니라 정말 기후가 이상했었다. 기록이 잘 남아 있는 유럽의 경우를 보면 한 여름에 우박이 쏟아지고 몇 주일, 심지어는 몇 달이고 해가 나지 않고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가 계속되는가 하면, 오히려 겨울엔 이상난동으로 꽃이 피기도 했다. 『소빙하기: 기후는 어떻게 역사를 만들었는가』를 쓴 영국의 역사인류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시기의 기후는 그야말로 “미친 듯 날뛰었다.”

 

화산폭발도 많았다. 지난 회차에 보았듯이 화산폭발은 주로 환태평양 불의 고리 지역에 집중되었고, 편서풍의 영향으로 그 피해는 남태평양의 동쪽 지역에 집중됐다. 그 결과 유럽-신대륙의 정복-피정복 관계 구도도 형성됐지만, 남태평양 동부 지역 섬나라에 살던 사람들에게도 정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살기 힘든 상황이 몇 백 년 간 이어졌을 것이다. 버려진 섬, 식인풍습 등 지금까지도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고 있는 남태평양 섬들의 스산한 이미지가 생겨난 것도 이런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적지 않게 기인했을 것이다. 

 

(이렇게 기후가 지극히 불안정해지고 화산폭발 등 지각활동이 활발해지는 이유는 기후의 주기적 변화와는 상관없는 또 다른 거시적 환경변화 때문이다. 이 요인은 지구상 모든 지역의 인간을 긴장시켜 교감신경 상태로 만들기에 충분한 힘이다. 다만 앞서도 몇 번 말했지만, 이 부분은 이 연재에서 다루지 않고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아직 우리 사회에 잘 소개되어 있지 않은 담론이라 제대로 다루려면 충분한 맥락과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또 이 연재에서는 기후변화에 초점을 두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러 모로 거시적 환경지표가 불안정해지고, 지구의 생태계의 변화가 점점 더 심해졌다는 것이 소빙하기의 큰 특징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이 시기의 인간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특징은 이 시기동안 점점 더 공격적으로 변해갔던 사람들의 생각 및 행동과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든 이 싸움판의 최종 승자는 유럽이었다. 남미를 제압, 거기서 거둬들이는 부(富)를 발판으로, 유럽은 다른 지역에까지 식민지를 확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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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인류사상 모든 전쟁의 승자가 그랬듯이, 유럽도 자기중심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었다. 언제나 최고의 권좌에는 막강한 이권이 따르는데, 권좌에 앉는 사람은 그 이권을 좌지우지할만한 정통성이 있는 자라는 것을 대중들에게 입증하려 한다. 유럽인들은 자기들 정통성의 근거로서, 과거에 화려한 전적을 보여주었으면서도 자신들과 상당히 유사한 특성을 가졌던 권력집단을 택해서, 연구하고 미화하며 자신들과의 연계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고대 그리스와 로마다.

 

물론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놀라운 문화적 성취를 이루었다. 하지만 문화적 성취만을 따진다면 한때 지중해 전역을 장악했던 페니키아나, 그리스보다 앞서 발칸반도 해안지역에서 화려한 문화를 이룩했던 크레테, 혹은 주로 한랭기동안에 상당한 문명을 쌓아올렸던 이베리아 반도의 문명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다만 후자의 경우 유럽의 오랜 숙적이었던 소아시아계 사람들이 주역이었기 때문에 유럽의 정신적 조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그리스·로마·이베리아 지역보다 위쪽으로는 오랜 역사를 지닌 문명으로 별로 내세울 만한 게 없었을 것이다.

 

 

‘유럽인들의 용비어천가’ 그리스로마신화

 

마치 고려 왕조를 쓰러뜨리고 새로 들어선 조선왕조에서 용비어천가를 만들었듯이, 근대 유럽은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 만들기에 많은 정성을 들였다. 그리스도 로마도 원주민이 살기 시작했던 시기부터 따진다면 상당히 긴 역사를 갖고 있고, 서로 다른 시기에 따라 상당히 다른 문화적 특성을 보여 왔다. 이 중에서도 유럽이 자신들의 정신적 뿌리로 강조했던 것은 고전 고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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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위 그래프에서 붉은 색 타원형으로 두른 부분, 고전 그리스 시대와 로마 공화국 시대에 해당된다. 이 시기의 그리스와 로마에서 공통적인 특징은 한참 대외적으로 식민지를 넓혀가고 있던 시절이라는 것, 그리고 제왕을 꼭대기에 두는 통치체제가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 견제하면서 통치권의 균형을 맞추어가던 시기, 현대 용어로는 민주주의와 비슷한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런 통치체제는 근대기 후반 유럽에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요구되기 시작했다. 중세까지 유럽에서 발달해온 지역별 왕국 단위의 봉건제도는 소빙하기를 거치는 동안 점점 더 위력이 떨어졌다. 안 그래도 먹고 살게 없는데, 왕과 그를 지키는 기사를 부양하고 전쟁까지 치다꺼리 하느라 서민들은 정말 힘들었다.

 

그런 서민 출신 중에 목숨 걸고 식민지를 개척, 경영해서 큰 부자가 된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새로운 파워게임이 불가피해졌다. 기존의 특권을 유지하려는 사람들과 새로 누리게 된 권력을 양보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간의 충돌이다. 공격적인 성향이 강해졌던 근대기, 이 충돌은 꽤 광범위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체로 폭력성을 동반했다. 근대사에서 보통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과정들은 다 여기 속한다.

 

그와 함께 실질적으로 자원을 이용하고 분배하는 활동의 규모, 즉 사람들에게 먹고 살 생계를 제공해주는 기반인 경제가 지구 전체적인 규모로 커졌다. 이전에는 주로 자기 출신지에서 농사나 사냥, 채취 등으로 먹을 것을 구해서, 남거나 모자라는 것을 가까운 지역 사람들끼리 교환하는 가운데 경제가 진행됐었다. 근대 중반부터 남미의 플랜테이션에서 유럽인이 기획해서 재배된 작물이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가공돼서, 세계 전역으로 팔리는 경제 시스템이 갖추어진 것이다.

 

소빙하기, 사람들은 나름대로 힘든 환경여건을 극복하면서 살려고 노력했다. 그 중 유럽지역 사람들이 파워가 커지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세상의 일이 다 그렇듯이 이 문화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었다. 이전 시대보다 평등해지긴 했지만 폭력적이었고, 효율적이었지만 지속불가능한 생활방식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든 이렇게 해서 새롭게 형성된 근대문화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정치적 민주주의, 세계화된 경제와 문화의 토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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