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위에서 본 근대
  •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8 10:0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유럽사 편)]

 

사람이 싸움을 할 때는 몸과 마음이 평소와는 전혀 다른 상태가 된다. 자율신경계가 교감신경체계로 전환되면서, 공격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이 다량 분비되어 신경이 예민해지고 근육의 힘이 증폭되며 마음은 긴장, 경쟁심, 두려움, 분노, 증오 같은 부정적 감성에만 사로잡히는 상태가 된다. 극단적인 교감신경상태가 되어야, 전투 중에 적의 목숨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싸움을 하는 사람들, 즉 극단적인 교감신경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일을 두루 살필 여유가 없다. 그냥 바로 눈앞에 있는 적을 제압하는 데 혼신의 에너지를 집중한다. 뚜렷한 공동의 적이 없을 경우엔, 바로 자기 눈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 엄청난 적대감을 갖게 되며, 따라서 아주 가까운 사이인 사람끼리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아마 소빙하기동안에는 지구촌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상태였던 것 같다. 이 기간 중 거의 내내, 그리고 지구상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그야말로 끊임없이 크고 작은 싸움판이 벌어졌다. 

 

나라 안에서는 서로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싸웠고, 국경을 공유하는 이웃나라 간에는 거의 예외 없이 서로 밀고 밀리는 침략전쟁이 있었다. 심지어는 인류 역사 속에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형태의 싸움도 나타났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로 다른 대륙에 살고 있던 인간 집단 사이의 싸움, 유럽의 식민지 정복전이다.

 

왜 그렇게 싸웠을까?

 

18세기 초 네덜란드의 무명화가가 그린 ‘스페인 계승 전쟁’. 근대에는 유럽의 왕조들끼리 이권과 자존심을 놓고 싸우는 일들이 많았는데, 그 중 한 장면이다. © 위키미디어 제공

 

 

‘미친’ 이상기후였던 소빙하기

 

일단 극심한 한랭기라 먹고 살 것이 빠르게 줄어갔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일 수 있다. 그런데 소빙하기 동안에는 단지 기온만 내려간 게 아니라 정말 기후가 이상했었다. 기록이 잘 남아 있는 유럽의 경우를 보면 한 여름에 우박이 쏟아지고 몇 주일, 심지어는 몇 달이고 해가 나지 않고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가 계속되는가 하면, 오히려 겨울엔 이상난동으로 꽃이 피기도 했다. 『소빙하기: 기후는 어떻게 역사를 만들었는가』를 쓴 영국의 역사인류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시기의 기후는 그야말로 “미친 듯 날뛰었다.”

 

화산폭발도 많았다. 지난 회차에 보았듯이 화산폭발은 주로 환태평양 불의 고리 지역에 집중되었고, 편서풍의 영향으로 그 피해는 남태평양의 동쪽 지역에 집중됐다. 그 결과 유럽-신대륙의 정복-피정복 관계 구도도 형성됐지만, 남태평양 동부 지역 섬나라에 살던 사람들에게도 정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살기 힘든 상황이 몇 백 년 간 이어졌을 것이다. 버려진 섬, 식인풍습 등 지금까지도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고 있는 남태평양 섬들의 스산한 이미지가 생겨난 것도 이런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적지 않게 기인했을 것이다. 

 

(이렇게 기후가 지극히 불안정해지고 화산폭발 등 지각활동이 활발해지는 이유는 기후의 주기적 변화와는 상관없는 또 다른 거시적 환경변화 때문이다. 이 요인은 지구상 모든 지역의 인간을 긴장시켜 교감신경 상태로 만들기에 충분한 힘이다. 다만 앞서도 몇 번 말했지만, 이 부분은 이 연재에서 다루지 않고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아직 우리 사회에 잘 소개되어 있지 않은 담론이라 제대로 다루려면 충분한 맥락과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또 이 연재에서는 기후변화에 초점을 두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러 모로 거시적 환경지표가 불안정해지고, 지구의 생태계의 변화가 점점 더 심해졌다는 것이 소빙하기의 큰 특징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이 시기의 인간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특징은 이 시기동안 점점 더 공격적으로 변해갔던 사람들의 생각 및 행동과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든 이 싸움판의 최종 승자는 유럽이었다. 남미를 제압, 거기서 거둬들이는 부(富)를 발판으로, 유럽은 다른 지역에까지 식민지를 확대해간다.

 

식민지를 가졌던 나라들과 식민지가 되었던 땅을 표시한 지도. 20세기 초 식민주의가 정점에 달했었다. © 위키미디어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