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론 없는 핵무장 주장, 실현 불가능”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09.11 15:10
  • 호수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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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장 반대론 “국제사회 제재 버틸 수 없어…美도 원치 않는다”

 

북핵 사태가 초래될 때마다 언급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다.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동일한 비대칭 전력을 보유하는 방식이다. 상대가 핵무기를 보유했으니 우리도 핵으로 무장해야만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하면 곧바로 핵 반격을 받게 된다’는 공멸에 대한 두려움은 1945년 이후 핵무기가 실전에 등장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9월3일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핵무장론’이 힘을 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의 핵 도발이 있을 때마다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핵무장론이 제기됐다. 핵무장 주장은 선명성을 드러내는 정치적 형용사로 해석됐다.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선 ‘최후의 카드’ 역할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야권은 물론 여권 일각에서도 유사한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 레드라인을 넘나들자 강경론자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북한이 핵을 실질적으로 보유한 뒤 북·미 협상을 통해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등의 상황을 대비해 자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는 당위성은 있지만, 방법론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핵무기 개발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핵을 보유하기 위해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을지, 국제사회의 반발을 뚫고 핵을 개발할 수 있을지, 핵 개발이 한반도와 동북아에 가져올 영향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논의다. 핵무장론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한국의 핵무장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기 어려워 보인다. 앞서 유엔은 7월7일 새로운 핵무기 금지 협약을 채택했다. © 사진=AP연합

 

“핵무장 선언과 동시에 국제 제재 못 버틴다”

 

지난 7월7일 핵무기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유엔(국제연합)은 미국 뉴욕에서 총회를 열고 핵무기 전면 폐기와 개발 금지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국제협약을 채택했다. 122개국이 찬성했지만, 유엔 회원국 3분의 1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미국과 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 등 핵보유국은 모두 협상부터 ‘보이콧’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스라엘 등 실질적 핵보유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국과 일본도 북한의 핵무기 위협을 이유로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우선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해야 한다. 현실화될 경우 한국의 NPT 탈퇴 선언은 북한에 이어 두 번째 사례가 된다. 당연히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지영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이 핵무장을 한다면 국제사회는 당연히 제재에 나설 것이다”며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묵인해 주지 않는 이상 미국도 제재에 동참해 한·미 동맹이 위태로워질 것이다”고 내다봤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체제는 국제사회의 저강도 제재에도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북한처럼 고립 상황을 버틸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내부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한국은 미국산 핵연료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한·미 원자력협정이 파기되면, 원전 연료는 물론 X레이나 CT 촬영에 쓰이는 의료용 핵물질까지 모두 공급이 끊긴다.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장은 “우리가 핵무장에 나서면 한국에 원전 연료를 판매하는 것부터 국제적으로 불법이 된다”며 “당위를 떠나 지금 상태로는 현실적으로 추구하기에 제한이 많다”고 지적했다.

 

핵 전면금지를 추구하는 국제사회를 일일이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물론 NPT 10조 1항에는 ‘본 조약상의 문제에 관련되는 비상사태가 자국의 지상이익(supreme interests)을 위태롭게 하고 있음을 결정하는 경우에는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돼 있다. 여기에는 모든 조약 당사국과 유엔 안보리에 3개월 전에 통고하고, 비상사태에 관해 설명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북핵 상태가 비상사태라고 동의하는 국가는 현재까지 없다. 안보리에서 설명이 받아들여지면 탈퇴가 가능한데, 실제로 탈퇴가 인정된 사례 역시 아직은 없다. 북한에 이어 한국마저 NPT에서 탈퇴할 경우 NPT 체제가 사실상 붕괴될 수 있다. 핵보유국들은 독점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를 막으려고 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동의가 불가능한 이유다.

 

외교통상부 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자체 핵무장을 하면 ‘북한과 같은 길을 걷는다’는 인상을 줄 것이다”며 “경제적 충격 또한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독자적 핵무장은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미 동맹이나 NPT 탈퇴 등 국제사회로부터 큰 대가를 감수해야 한다”며 부정적으로 봤다.

 

 

‘한국→일본→대만’ 동북아판 핵 도미노 우려

 

한국의 핵무장은 곧바로 동북아의 핵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핵 도미노란 한 국가가 핵을 보유하면 인접 국가들 또한 연쇄적으로 핵을 보유하게 되는 현상이다. 과거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으로 이어진 사례가 동북아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64년 중국은 핵실험을 통해 공인 핵보유국 지위를 얻었다. 그러자 이에 자극받은 인도가 1974년 핵실험을 단행하며 핵보유로 나아갔다. 인도와 숙적 관계였던 파키스탄은 1998년 5월말 이틀 동안 연쇄 핵실험을 하면서 인도와 더불어 ‘비공인 핵클럽’에 가입했다. 접경국인 중국-인도, 인도-파키스탄 사이의 상호 갈등과 불신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이 벌어지기 이전인 8월8일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의 이웃들이 더 치명적인 무기(deadlier weapons)의 배치를 고려하고 있다”며 “급속도로 진전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일본과 한국 정치인들이 더 강력한 무기 배치를 밀어붙이도록 만들고 있으며 이것은 역내 군비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곧 현실이 됐다. 실제로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한국만큼이나 일본 또한 핵무장 여론이 들끓고 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잇따라 일본 상공을 통과하면서 불안감이 증폭된 상황이다. 일본은 그동안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견지해 왔다. 다만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에 나설 수 있는 잠재력을 유지하고 있다. 핵연료 재활용을 명분으로 ‘핵연료 주기’를 운용하고 있다. 일본에는 약 6000기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47.9톤, 2015년 12월 현재), 핵탄두 제조 기술이 있고 올해 1월 현재 32번 발사해 31번 성공(성공률 96.9%)한 H2A라는 놀라운 성능의 로켓을 보유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 미·중 간 갈등이 첨예해질 경우 대중국 억지력 확보 차원에서 미국이 주도 또는 용인하는 핵보유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는 동북아 연쇄 핵무장 가능성에 대해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며 “지금은 한국과 일본이 비핵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북핵 위협이 고도화할 경우 핵보유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생성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핵무장론이 현실화된다면 일본·대만으로 핵 확산이 이어져 세력 균형이 완전히 깨지고 각자도생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면서도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고 가능성도 없다”고 전망했다.

 

전술핵 재배치 등이 언급되자 시민단체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전술핵 재배치? 미국이 원하지 않을 것”

 

핵무장론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는 방식과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방식이다. 함께 묶여서 언급되지만 파괴력과 운용범위에서 차이가 크다. 현실화 가능성과 영향도 다르다는 의미다. 그래서 파괴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전술핵 재배치 논란이 오히려 더 뜨겁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데다 상대적으로 현실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효용성 논란 등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한·미 국방장관회담을 계기로 전술핵 재배치 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8월30일 미국에서 열린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과의 회담 과정에서 전술핵 재배치 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 가능성 수준 등을 언급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북한의 6차 핵실험이 이어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실제로 한국에는 1958년부터 1991년까지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가 있었다. 항공기 투하용 핵폭탄도 있었고, 핵탄두 미사일이나 대포용 핵폭탄도 있었다. 가장 많을 때인 1967년에는 950발이 배치돼 있었다고 한다. 미·소 핵 군축협상과 우리 정부의 비핵화 선언으로 전술핵무기는 1991년 모두 철수했다. 미국은 해외 배치 핵무기를 지속적으로 줄여왔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전술핵 자체가 전투기·전폭기에 장착하는 폭탄인데, 그걸 갖다 놓는 것은 억지 효과가 크지 않다”며 “8월 시험발사에 성공한 ICBM 미니트맨3의 경우 30분이면 미국 본토에서 북한을 타격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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