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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버림받은 개인 거대한 집단과 싸우다

공익제보 후 신변위협·인권침해 등으로 고통 겪는 제보자들

구민주 기자 ㅣ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09.15(Fri) 09:30:00 | 14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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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중국에서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유아무개씨는 현지 생산된 가짜 참기름이 한국으로 들어가 국산인 것처럼 유통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유씨는 직접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방문해 이 사실을 고발했고 단속 과정에도 적극 협조했다. 그의 도움으로 식약처는 단기간에 국내 가짜 참기름 제조·유통 업체 5곳을 적발했다.

 

그러나 신고의 대가는 혹독했다. 유씨의 신원은 해당 업체들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한 업체가 ‘신용 훼손’ 혐의로 그를 고발해 출국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유씨는 수개월간 쪽방에 머물며 무료 급식소를 전전하는 생활을 했다. 그의 도움을 받았던 식약처는 이 상황을 외면했고 그를 구제해 줄 국가기관, 법적 장치는 전무했다.

 

유씨의 사건이 발단이 돼 서서히 국민권익위원회를 중심으로 공익 신고자 보호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공공기관 비리 제보자는 ‘부패방지법’에 의해 보호받는 데 비해, 민간 영역 제보자에 대해선 어떠한 보호 장치도 없다는 게 문제로 지적됐다. 2009년 권익위는 이러한 빈틈을 채울 공익신고자보호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오랜 계류 끝에 2011년 9월에야 비로소 법은 시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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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제보 뜯어 말리고 싶다”

 

그 후 6년, 다수의 공익제보자들은 여전히 제보 행위에 대한 후회를 안고 살아간다. 신고와 동시에 시작되는 신변 위협과 오랜 소송전으로, 기본적인 생계와 인권 모두 망가져버리기 때문이다. 10여 년간 셀 수 없는 공익제보자들을 마주해 온 김용환 ‘공익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 대표는 8월23일 기자와 만나 “이젠 그 누구든 공익제보 절대 하지 말라고 뜯어 말리고 싶다”고 털어놨다. 김 대표 역시 2003년 대한적십자사의 오염된 혈액 유통을 내부 고발한 공익제보자로, 당시 정보유출 혐의로 긴급체포까지 당한 바 있다.

 

김 대표는 제보자들을 향한 국가기관의 외면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수사기관과 공공기관에서 이들의 신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묵살하거나, 심지어 사건의 공(功)을 고스란히 가로채려 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기관 담당자들이 애초에 공익제보자들을 우습고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짙다”며 “제보자들은 신고 첫 단계부터 인권을 유린당한다”고 주장했다.

 

공익제보자 신인술씨는 자신의 제보가 수사 과정에서 ‘증발’돼 버리는 일을 겪었다. 그는 그 과정에서 신고한 업체로부터 살해 협박까지 받아 반년가량 도피생활을 하기도 했다. 2015년 경남 창녕의 D업체에서 기름을 운송하는 기사로 근무하던 어느 날, 그는 해당 업체가 아파트 난방유에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값싼 해상용 증유를 섞어 수백억원어치를 팔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약 5개월간 관련 자료를 수집해 부산국세청에 신고했다.

 

부산국세청은 업체가 위치한 동울산세무서로 사건을 이첩했고 이후 울산지방검찰청에도 수사 요청이 접수됐다. 신씨는 두 달간 4차례에 걸쳐 늦은 시간까지 검찰 조사를 받았다. 조사 한 달 후 신씨는 수사 경과를 묻기 위해 검찰에 전화를 걸었다. “사건이 접수된 적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부산국세청과 동울산세무서에도 확인했지만 비슷한 답변을 받았다. 1년 가까운 그의 고군분투는 그렇게 ‘없던 일’이 돼 버렸다.

 

제보는 묵살됐지만 보복은 그를 끝까지 괴롭혔다. 신변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탓에 해당 업체 관계자들은 쉽게 신씨가 제보자임을 알아냈다. 이들은 신씨의 집 앞까지 찾아와 극심한 협박을 가했다.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강원도 정선과 경남 양산의 사찰 등을 오가며 한동안 숨어 지냈다.

 

신씨는 2016년 8월 운 좋게 김용환 대표를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와 연이 닿기 전까지, 막막한 마음에 숱하게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의 지난한 싸움을 “국민으로서 국가를 절대 믿을 수 없도록 만든 일”이라고 규정했다. 신씨는 쫓기는 처지를 권익위와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호소도 해 봤지만 ‘고발해도 어차피 다시 울산지검으로 이첩된다’는 답변만 들었다. 그에게 이 말은 부질없는 싸움을 그만 멈추라는 의미로 들렸다. 그에게 공익제보는 ‘국가에 버림받은 개인과 거대한 집단 간의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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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功)은 무시되고 신변은 쉽게 노출

 

신씨는 지난 4월 권익위로부터 비로소 공익제보자로 정식 인정을 받고 신변보호를 보장받게 됐다. 공익제보 후 약 1년8개월 만이다. 김용환 대표의 도움을 받아 2016년 8월 부산지방경찰청에 다시 고발장을 접수했고 이내 재수사가 시작됐다. 신씨는 불법 기름 유통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미행과 잠복근무에도 동참하는 등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2월 경찰의 수사 발표로 사건은 세간에 알려졌고 관계자들은 법적 처벌을 받게 됐다.

 

그러나 신씨는 자신의 오랜 주장이 ‘팩트’로 인정받는 그 순간까지 수사기관과 공공기관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고 전한다. 그는 “내가 준 증거 자료를 바탕으로 모든 수사가 이뤄졌는데 경찰은 마지막 사건 브리핑 때까지 ‘제보자의 도움으로 사건을 밝혀냈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애초에 자신들이 수사를 시작한 것처럼 말했다”고 밝혔다. 권익위가 공익제보자로 인정한 데 대해서도 “여러 시민단체에서 강력히 요구한 후에야 (공익제보자로) 날 인정해 줬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토로했다.

 

그를 도운 김용환 대표 역시 “이렇게 늑장 처리되는 과정에서 제보자들은 신변에 대한 불안감이 극심해진다”며 “사실을 밝혀내는 과정에서도 이들은 철저히 방치되고 끊임없이 희생을 강요당한다”고 말했다. 조사나 수사를 이유로 수차례 불러내는 일 자체가 이들의 일상을 무너뜨리는 처사라는 것이다.

 

2015년 4월,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제주지부의 보조금 부정사용 사실을 공익제보해 해고된 김은숙씨는 재판 시작 전까지 경찰에 무려 16차례나 출석해 수사에 협조했다. 한 번 조사를 받을 때마다 조사 시간은 평균 7~8시간에 달했다. 세종시에 위치한 권익위에도 비행기로 여러 차례 오갔다. 한번은 용무가 길어져 제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잠잘 곳을 찾아 밤길을 배회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김씨가 손을 뻗은 곳은 시민단체였다. 지난 2월 김씨는 부정한 지시에 따랐다는 이유로 1심 판결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공익제보의 가치를 전혀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이에 참여연대는 권익위에 김씨에 대한 신분보장조치 신청서를 제출하고 김씨의 제보로 사건이 밝혀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언론 등에 알리며 항소 과정을 도왔다. 이러한 도움을 바탕으로 김씨는 8월 열린 2심에서 벌금형으로 감형 판결을 받았다.

 

김씨는 가족에게조차 말하기 힘든 심경을 김용환 대표에게 털어놨다. 김씨는 사건이 마무리돼 갈 무렵 김 대표에게 긴 싸움의 소회를 담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곳엔 “2년이 넘는 고단하고 외로운 길이었다. 자신만만하던 용기는 어느새 꺾여버렸고 정의로울 거라 믿었던 사회는 비난과 비판 속에 나를 가뒀다. 그러던 가운데 대표님의 관심 속에 용기를 얻었다. 감사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제보자 보호 못하는 빈틈투성이 보호법

 

현행법과 국가기관이 못한 공익제보자 보호의 역할은 오랜 기간 시민단체가 대신해 왔다. 공익제보의 시초로 꼽히는 1990년 이문옥 전 감사관의 감사원 감사비리 제보 이후 참여연대, 호루라기재단, 내부제보실천운동 등 다수의 관련 단체가 출범했다.

 

특히 참여연대는 1994년 창립 때부터 ‘내부비리고발자지원센터’를 만들어 23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0년부터 매 연말, 그해 공익제보자들에게 ‘의인상’을 시상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인권의학연구소 등과 함께 법적·심리적 도움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생활 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생계가 어려운 10여 명의 공익제보자들에게 6개월간 매달 100만~200만원을 지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참여연대에 따르면 2011년부터 5년간 공익제보자들에 대한 권익위의 구조금 지급은 4건에 그쳤다.

 

공익제보자들이 많아지고 이들에 대한 시민단체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정치권의 관심도 점차 커졌다. 2011년 공익신고자보호법이 시행된 후 지금껏 수차례 개정안이 발의됐다. 8월22일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익제보자에 대한 권익위의 책임을 강화하고 대통령령으로 정한 위원회를 구성해 이들에게 안정적으로 구조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선 당시 캠프 내 ‘공익제보지원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 공익제보자 권리를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공익제보자와 관련 단체의 눈에 정치권의 요구는 여전히 현실과 먼 ‘빈틈투성이’로 비친다. 현재로선 제보자들은 제보 후 본격적인 소송이 진행된 후에야 제대로 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 전 단계인 신고나 수사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와 신변 위협까지 막진 못하는 것이다. 모든 판결이 끝나고 관련자가 처벌을 받은 이후도 문제다. 유동림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간사는 “소송이 끝나고 복직을 하더라도 사내 따돌림을 받거나 부당하게 인사발령을 받는 2차 피해가 발생한다”며 “국가가 이들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안정적인 재취업을 지원하는 등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익제보자들은 궁극적으로 수사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 이들의 제보를 대하는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익제보자 신인술씨는 “‘당신이 신고했으니 당신이 증거도 모으고 사건도 해결하라’는 기관들의 태도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공익신고자들은 공익 신고가 처음이며, 그곳으로 향하기까지 무수한 갈등을 거쳤다는 사실을 국가와 각 기관이 제대로 알아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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