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미래 결정할 중차대한 시기”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09.1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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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원장 직선제’ ‘자승 퇴진’ 물결 이룬 범불교도대회

 

서울 조계사 앞에 ‘적폐청산’이 적힌 깃발이 휘날렸다. 9월14일 오후 4시부터 조계사 앞 우정국로에서 ‘청정승가공동체 구현과 종단개혁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 주관으로 ‘조계종 적폐청산과 종단 개혁을 위한 범불교도대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엔 전국 각지에서 주최 측 추산 3000여명의 참가자들이 모여 10월로 예정된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의 직선제 실시와 현 자승 총무원장의 즉각적인 퇴진 등을 요구했다. 

 

이날 대회 참가자들은 ‘자승 OUT’이라고 적힌 조끼와 ‘적폐 청산·자승 퇴진’이라 적인 피켓을 나눠 갖고 조계사 앞 통제된 차도에 모여 앉았다. 이들은 1700년의 역사를 가진 불교가 지난 8년 자승 총무원장 체제 안에서 망가져버렸다며 ‘비정상의 정상화’를 주장했다. 자승 체제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폐단 중 하나로 2013년 8월 벌어진 적광스님 폭행사건을 거론하기도 했다. 당시 종단 소속 적광스님이 자승 총무원장의 도박 등 비위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하려다 조계사 내 지하실로 끌려가 호법부 스님들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한 일이다. 그 때의 기억으로 적광스님은 지금까지 정신병원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 

 

자승 총무원장 체제 하에서 줄곧 종단의 폐해를 비판해온 명진스님은 지난 4월 종단 비하 발언 등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종단으로부터 제적을 당하기도 했다. 최근엔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에서 당시 봉은사 주지였던 명진스님을 사찰한 의혹까지 제기된 바 있다. 지난 8월18일부터 조계사 앞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을 벌이다 쓰러져 9월4일 병원으로 옮겨졌던 명진스님은 이날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 참가자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았다.

 

9월14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앞에서 승려와 신도 수천명이 모인 가운데 조계종 적폐청산과 종단개혁을 위한 범불교도대회가 열려 '총무원장 직선제' '조계종 적폐청산' '자승 총무원장 퇴진' '재정 공영화 및 투명운영' 등을 요구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10월12일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주최 측과 참가자들은 이날 행사가 어떤 방향으로든 향후 조계종단의 미래를 결정할 중대한 기폭제가 되리라고 입을 모았다. 현재 자승 총무원장과 가깝다고 알려진 후보가 출마 선언을 한 상태라 일각에선 ‘이대로 진행되면 사실상 자승 체제 연장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자승 체제를 반대하는 측에선 당장 직선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나온다. 

 

명진스님에 이어 열흘 넘게 단식을 이어가던 대안스님은 취재진과 만나 “중앙종회의원 등 300여명이 간선제를 통해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람을 원장 자리에 앉혀오면서 이런 병폐가 생긴 것”이라며 “지금도 자승 총무원장의 아바타들은 백년대계를 꿈꾸고 있어 상황이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대안스님 역시 종단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40년 간 몸담던 조계종에서 제적됐다.

 

 

10월 선거 때까지 신경전 치열할 듯

 

이날 본격적인 행사 전부터 조계사 일대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찰은 참가자들의 무분별한 진입을 통제하기 위해 조계사 주변을 감쌌다. 이에 반발한 일부 참가자들이 “신도를 막는 절이 어디 있냐”며 고성을 지르는 등 소동이 일어났다. 조계사가 스피커를 통해 큰 소리로 경전을 틀어놓으며 행사 진행을 방해하자, 진행자가 무대 위에 올라 당장 소리를 끌 것을 요구하는 등 한동안 신경전이 오가기도 했다. 

 

지난 5월부터 조계사 앞에서 가장 먼저 1인 시위를 시작했던 문영숙씨는 “1인 시위를 하는 동안 조계사에서 호법부 스님을 동원해 시위 중단을 무섭게 경고하거나 나를 향해 물을 뿌리는 등 많은 방해를 했다”고 주장했다. 문씨는 “수년 전부터 종단의 적폐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왔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며 “터질 때가 돼 터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먼발치서 현장을 바라보던 조계사 소속 한 스님은 “불교에 먹칠하는 행위”라며 대회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종교의 일을 바깥으로 갖고 나가 타 종교인들과 시위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판을 키우는 건 적절치 않은 처사”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이 모든 싸움의 과정을 지켜봐온 근처 불교용품점 주인들은 하나 같이 골치가 아프다며 고개를 저었다. 조계사 바로 옆에 위치한 상점 주인은 “지금과 같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하루 이틀 새 끝나지 않을 것 같지 않아 더 이상 얘기도 꺼내기 싫다”며 한숨지었다.  

 

주최 측과 참가자들은 이날 조계사 앞에서 대회를 마친 후 청계천광장으로 행진해 저녁 7시부터 1시간 30분가량 문화제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 대해 종단은 이렇다 할 입장을 내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한 달여 남은 총무원장 선거 전까지 이들의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행사 주최 측은 “종단의 미래를 위해 결코 져선 안 되는 싸움”이라며 “적폐청산을 위한 요구들을 종단이 수용하기 전까지 싸움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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