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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 달걀’ 양계장 주인의 ‘재기 성공’ 스토리

[이인자 교수의 진짜일본 이야기] 후쿠시마 원전 피해로 재기 불능 상태…거래처·소비자 금전적 도움과 재기 격려로 회생​

이인자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19(Tue) 18:30:00 | 14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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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일본 도호쿠(東北)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는 이인자 교수는 재일교포·묘제(墓制) 연구의 권위자이며 동일본대지진 연구에서 세계 일인자로 평가받는 석학(碩學)이다. 이 교수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후 피해지역을 답사하며 재난에서 살아남은 희생자 유족과 생존자들의 정서적 피해와 복구에 대해 연구해 왔다.

 

유독 일이 많던 날 밤 10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달걀을 사기 위해서입니다. 늦은 밤이지만 달걀 전용 자동판매기가 설치돼 있는 곳입니다. 달걀집 앞 귀퉁이에 저처럼 늦은 밤이나 아침 일찍 달걀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 설치해 놓은 판매기입니다. 맛있는 달걀인데 값도 싸다는 입소문을 지인으로부터 전해 듣고 이용하기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가게 영업시간이 결코 짧지는 않습니다. 아침 7시30분부터 저녁 7시까지, 일본에서는 아주 긴 시간 영업을 하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자동판매기를 가게 옆에 설치한 것은 소비자가 원해서 이뤄진 것입니다. 이 지역 사람은 모두 이 가게에서 달걀을 사 먹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신뢰하고 사 먹는 달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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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고 싶은 걸 만들어 판매할 뿐”

 

이번 호에는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달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앞서 소개한 달걀집은 ‘가케이엔’(花兄園)이라고 합니다. 제가 동일본대지진 재해지역 조사를 한다는 걸 몇 차례 말씀드렸는데 집으로 방문해 인터뷰를 할 경우 선물로 이집 푸딩을 사 갑니다. 맛이 좋아서 그랬는데 제가 푸딩을 재해지역에 선물로 들고 다니면서 알게 된 것들이 참 많습니다. 가케이엔이라는 상표를 보고 “아! 가케이엔의 푸딩이군요. 이 집 달걀이 정말 맛있지요. 우리 아이가 화학물질과민증이 있어 달걀을 못 먹었는데 센다이 소아과에서 이 집 달걀은 먹을 수 있다고 해 알게 됐어요”라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래서 소박하게만 보였던 이 달걀집이 지역 소아과에서 추천할 정도로 유명한 곳인지 알게 됐습니다. 또한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도 먹을 수 있는 닭고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 양계장이 제가 조사하고 있는 재해지역에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이 달걀집의 가장 큰 양계장은 후쿠시마 원전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큰 피해를 입어 재기하기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다른 지역에 원래 있던 양계장과 같은 시스템으로 농장을 완성했습니다. 여러 가지 궁금한 게 있어 지도학생과 함께 미야기현 오자키시에 위치한 농장을 찾았습니다. 사장인 오스가 고다치(大須賀木·84)씨는 제가 평소 ‘달걀집 아저씨’라고 부르는 분입니다. 오스가씨는 달걀집에서 볼 때보다 더 젊고 활기찬 모습으로 농장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농장은 센다이 중심지에서 약 120km 떨어져 있는 곳으로, 한적한 시골마을에 최신식 기능을 갖춘 양계장이었습니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 오스가씨에게 환자나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 사람까지 먹을 수 있는 달걀을 만들게 된 경위를 묻자 “내가 먹고 싶은 걸 만들어서 판매할 뿐입니다”라며 운을 뗐습니다. 병아리 때부터 완전무약(법정 백신은 제외)으로 키워 알을 생산하는 것은 일본 내에서도 아주 드물다고 합니다. 어쩌면 오스가씨 달걀집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양계사업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릴 때 잠시 조부모 집에 산 적이 있는데 그분들은 전쟁 후 닭 300여 마리를 기르면서 생계를 꾸려갔지요. 그 시절에는 300마리도 큰 양계였고 달걀을 짊어지고 멀리 나가 파는 직원들도 있었습니다.”

 

도쿄에서 태어난 오스가씨는 4형제 중 둘째였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쿄에서 예술가였던 아버지의 벌이로는 가족이 생활하기 곤란하다고 느껴 둘째인 오스가씨를 조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에 맡긴 것입니다. 그렇게 몇 해를 살다 도쿄로 돌아와 대학에 진학하게 됐는데 경제적 이유로 국립대학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희망했던 대학은 일류 사립대였지만 결국 어릴 때 접했던 닭을 떠올리면서 도호쿠대 농학부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대학에서는 유전자에 관한 연구를 했고 졸업한 후에 가축 관련 대기업 식품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주로 가축의 사료 배합을 담당했는데, 항생제와 항균제를 다량으로 넣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60여 년 전이기에 가축에게 투여한 항생물질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확히 판명되지 않았지만 왠지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1965년부터 일본은 병아리를 미국에서 수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일본 고유의 종자를 보호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젊은 오스가씨는 회사에 유전자뱅크를 만들자고 건의했고, 회사가 전면적으로 지원해 부서까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1960년대 당시 1억5000만 엔을 투자해 설치한 유전자뱅크의 농장은 5년 동안 심한 적자를 냈고, 결국 부서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회사를 그만둔 그는 닭 계량종을 개발하던 처가 일을 도우면서 자신의 양계장을 운영하게 됐습니다. 회사에 있을 때부터 걱정했던 항생제와 항균제를 사용하지 않고 닭 기르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수확후무농약(PHF) 옥수수를 수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안전한 식품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완전무약을 실천해 왔지만 2011년 3·11 대지진으로 70% 이상의 계사(鷄舍)를 잃는 등 재건 불가능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지진이 난 다음 해에 스트레스로 위에 구멍이 나 병원에 입원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그런데도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빚을 갚지 못해도 재촉하지 않았고, 돈을 지불하지 못해도 병아리나 사료를 대주고, 꼭 재기해야 한다고 격려해 주는 거래처·소비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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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 달걀 만들 사람을 사회가 어떻게 길러내나

 

10만 단위로 양계를 하면서 완전무약을 실현하는 양계장 주인 오스가씨는 오히려 약을 많이 사용해 병을 없애려 하는 행위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지진과 원전 사고로 재기 불능 상태에 놓였던 사업을 다시 일으키고 완전무약 양계장을 완성해 낸 힘은 젊은 사람도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빚을 갚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난달 배상을 받아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새로 재기한 사업을 위해 다시 은행융자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제 그만 사업을 접어야 하는데 자신이 그만두면 이 일을 할 사람이 없어지니 다시 하게 됐다고 합니다.

 

지진 피해로 생산이 중단된 많은 식품가공 업체들이 나라의 보조금으로 공장을 재가동했지만 거래처를 잃어 도산한 회사가 많습니다. 거래처도 지진으로 인해 공급에 어려움을 겪을 때 새롭게 제품을 제공해 준 업체를 잘라내기는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오스가씨의 주거래처였던 생협은 그가 제공할 수 있는 적은 양의 달걀만으로도 기다려줬던 겁니다. 또한 성금을 모아 금전적인 도움도 주고 재기할 때까지 많은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달걀이 일본에 있습니다”라는 게 아닙니다. 이런 달걀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을 한 사회가 어떻게 길러낼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혹시 자녀들에게 너는 공부를 잘하고 능력이 있으니 이러저러한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교육하지는 않는지요. 오스가씨는 자신이 추구한 가치를 실현하면서 의미 있는 사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부인께서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능력 없는 남편”이라고 비난을 합니다만. 한국의 달걀 사태를 겪고 보니 오스가씨의 존재가 더 커 보이고 이런 사람을 키워내는 사회 시스템이 부럽기까지  한 건 저뿐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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