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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아웅산 수치가 로힝야족에 등돌리는 까닭

‘로힝야 사태’ 방관해온 정치인 수치에 쏟아지는 세계의 비판

김회권 기자 ㅣ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09.18(Mon) 17: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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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아웅산’은 독립의 상징적 가문이다. 아웅산 수치의 아버지가 미얀마 독립의 상징이라면 그녀는 민주화의 상징이다. 15살 때 해외로 나간 수치는 30년이 지난 1988년 4월 고국 땅을 처음 밟았다.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돌아왔지만, 수치는 1988년 8월8일, ‘8888 민주화 운동’을 직접 보고 겪었다. 8888 운동은 학생들이 중심이 돼 미얀마 군사정부에 반대했던 운동으로 사망자가 나오면서 당시 사회 분위기는 격화됐다. 8888 운동이 지나간 뒤인 8월26일, 양곤에는 학생·승려·시민 등 무려 50여만명이 모였다. 수치는 단상에 올랐고 “아버지의 딸인 나는 이 현상에 더 이상 무관심할 수 없다”며 이들과 함께했다. 이렇게 시작된 민주화 운동은 군부의 계엄령을 가져왔고 민주화 운동의 아이콘이 된 수치는 군부에 의해 21년간 가택연금을 당했다.

 

2010년 11월13일, 마침내 수치는 가택연금에서 벗어났다. 그녀를 둘러싼 환경은 20여 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수치는 비극의 히로인이 됐다. 미얀마 밖에서는 풀려난 그녀의 용기를 칭찬하고 자기 나라에 한 번 방문해주길 기대했다. 미얀마 야권에서는 수치의 복귀가 천군만마였다. 재·보궐 선거에 직접 출마해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수치는 이내 하원의원이 됐다. 수치를 가뒀던 군사정부도 그녀를 풀어준 대가로 경제 제재 해제라는 당근을 얻었기에 윈윈하는 모양새가 됐다.

 

수치는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호명됐지만 가택연금 탓에 직접 상을 받지 못했다. 2012년 6월이 돼서야 노벨상 수상 연설을 위해 노르웨이로 갈 수 있었다. 오슬로에 수치가 도착한 날, 그녀를 취재하던 기자 중 한 명이 물었다. “로힝야족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치의 답은 이랬다. “모른다.” 그때 말했던 “모른다”가 지금까지 수치의 일관된 입장이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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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혈 충돌에 발생한 43만명의 로힝야족 난민

 

미얀마에는 130여개 소수민족이 존재하는데 로힝야족은 국적조차 부여받지 못한 최하층에 속한다. 국제사회는 로힝야족이라고 부르지만 미얀마 정부는 ‘벵골족’이란 단어를 고집한다. 이들은 사회적 차별뿐만 아니라 이주나 고용 역시 엄격히 제한당하고 있다. 미얀마 국적은 없지만 미얀마 법률은 적용받는 존재다. 심지어 로힝야족 가구는 자녀 계획도 미얀마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아이를 2명까지만 낳을 수 있도록 미얀마 정부가 강제한다.

 

이 모든 비극의 뿌리는 종교다.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무슬림인 로힝야족은 적대의 대상이다. 수치가 노르웨이에서 노벨상을 받고 유럽을 순방하며 해외의 러브콜을 즐기던 2012년 6월 당시, 미얀마 서부 라카인 주에서는 로힝야족과 불교도인 라카인족이 충돌해 10만명 이상의 주민이 대피했고 수천여 가구가 불에 타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이웃 나라 방글라데시에 유출된 난민만 20만명에 달했다. 국제사회는 이를 ‘인종 청소’라고 규정했다. 

 

최근 로힝야족은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얀마가 민주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세계의 평가가 있지만 로힝야족은 여전히 탄압의 대상이었다. 이러자 핍박받는 동족을 보호하겠다며 미얀마 정부를 향해 항전을 선포한 로힝야족 반군단체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은 8월25일 경찰서 여러 곳을 습격했다. 미얀마 정부군은 이를 테러로 규정하며 즉각 진압에 나섰다. 두 진영 간의 유혈충돌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유혈사태를 피해 방글라데시 등지로 대피한 로힝야족이 무려 43만명에 달했다. 민주화의 상징 같던 인물이 박해받는 누군가를 외면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당사자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면 더 그렇다. 하지만 최근의 유혈사태로 수십만의 난민이 발생한 결과를 두고 수치는 “테러에 대한 정당한 행동”이라고 말했고 국제사회는 그녀의 발언에 실망스런 비판을 내놓고 있다.  

 

수치의 공식 직함은 외무장관 겸 국가자문역이다. 미얀마 헌법은 외국 국적의 배우자나 자녀를 가진 사람의 대통령 취임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다. 원래 수치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이 조항 탓에 개헌하지 않으면 그녀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수치는 옥스퍼드 대학 후배이자 티베트 연구자인 영국인 마이클 앨리스와 결혼했고, 두 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 그래서 만들어진 자리가 ‘국가 자문역’이다. 수치는 미얀마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가진 정치인이다. 2015년 총선에서 그가 이끈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총선에서 압승했다. 당과 내각에서 가장 지분이 큰 정치인은 결국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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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은 동상이몽, 로힝야족 문제는 한편

 

미얀마는 1962년 이후 군사정부가 계속돼 왔다. 지금의 헌법은 군부정권 시절 만들어진 것으로 리더십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였다. 현재 이 헌법에 따라 군인은 의회에서 25%가 넘는 의석을 보장받고 있고 내무부와 국방부 등 핵심 부처를 장악하고 있다. 치안을 유지하는 군과 경찰은 모두 군부의 통제에 따른다. 국방 예산은 의료와 교육 부문의 예산을 합한 것보다 큰데 전체 미얀마 정부 예산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국가방위안보위원회(NDSC) 는 정부의 기능을 멈추는 등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는데, NDSC 멤버 11명 중 6명을 군이 지명한다. 민간 정부가 출범했지만 여전히 군의 힘은 막강하다는 뜻이다.

 

수치가 군의 막강함 탓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적어도 로힝야족 문제를 두고는 군과 같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총선 뒤 수치와 군부는 서로 협력할 필요성을 느꼈다. 수치는 민심을, 군은 실권을 갖고 있었다. 수치가 간절히 바라는 개헌 문제에서는 서로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로힝야족 문제를 두곤 같은 입장을 취했다. 해외 자본을 유치하고 경제 성장에 힘을 쏟는 변화 속에서 사회 안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데 수치와 군 모두 공감했기 때문이다. 

 

정치공학적으로 봤을 때도 로힝야족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하는 게 '정치인' 수치에게는 유리하다. 로힝야족은 투표권이 없으니 선거에서 의미 없는 존재다. 그보다 더 신경 써야 할 곳은 미얀마 대다수를 차지하는 불교도, 그중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버마족의 표심이다. 불교 민족주의자들은 로힝야족을 강경하게 대한다. 미얀마군은 현재 싸우고 있는 로힝야 반군을 외국에서 자금을 얻고있는 테러 조직이라고 얘기하고 있고 미얀마 국민의 대부분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그녀에게 가진 물음표가 실망으로 변화하고 있다.” 수치가 보여준 행동들은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원해온 인권운동가들에게 배신처럼 느껴진다. 정치인으로 데뷔한 수치가 로힝야족 문제에 모르쇠로 일관했을 때, 페니 그린 런던정경대 교수는 인디펜던트 신문 기고문에서 “학살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은 공범이나 마찬가지다. 수치도 그렇다”고 주장했다. 과거 미얀마의 부조리함에 군부가 화살을 맞았다면, 그런 군부가 전면에서 물러난 지금 화살은 수치에게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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