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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논리’ 조선업 구조조정, ‘한진 악몽’ 재현하나

현 정부서도 금융위 주도 여전…구조조정 대원칙도 실종

배동주 시사저널e. 기자 ㅣ ju@sisajournal-e.com | 승인 2017.09.21(Thu) 08:03:14 | 14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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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 강기성 성동조선해양 노조지회장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조선업 구조조정 논의 주도권을 여전히 금융위원회가 쥐고 있다는 얘길 듣고서다. 지난해 4월부터 초읽기에 들어간 조선업 구조조정은 1년 넘게 전략적 기조 없이 금융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강 지회장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해도 산업 경쟁력은 감안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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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들어서도 여전한 금융 논리

 

강 지회장의 토로는 성동조선해양이 처한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60만 평(230만㎡) 부지, 3개 야드를 지녔던 성동조선해양은 현재 1개 야드만을 남겨뒀다. 지난해 4월 1999명이었던 정규직 인력은 올해 8월말 기준 1459명으로 27% 줄었고, 협력사 인력은 84% 넘게 감소했다. 당장 돈이 안 되니 간접비를 줄이라는 수출입은행 요구에 따라 움직인 결과다. 정부는 손을 놨다. 앞서 박근혜 정부는 구조조정을 통해 조선업을 적절한 규모로 축소하겠다는 판단 없이 채권자가 내세우는 금융 논리만을 우선순위에 뒀다. 정부가 혈세로 특정 기업을 돕는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조선업 구조조정은 지난 1년 넘는 시간 동안 국가경제를 위한 준비가 아닌, 채권자가 돈을 잃지 않는 금융 논리로 이뤄졌다.

 

새 정부 들어서도 금융 논리가 주도하는 구조조정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정부에서 진행한 조선업 구조조정 협의체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6월 박근혜 정부는 한진해운 사태를 겪은 이후에도 금융위원회가 주도하는 구조조정 컨트롤타워인 ‘산업경쟁력 관계장관회의’를 만들었고, 문재인 정부는 이를 유지하고 있다. 산업경쟁력 관계장관회의는 금융위원장이 기업구조조정분과를 맡아 방향을 설정하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산업구조조정분과를 맡아 경쟁력 제고 방안을 마련하는 구조다. 기재부는 경쟁력강화지원분과를 맡아 실업 등 보완 방안을 마련한다. 이에 자금 지원을 하는 금융위가 구조조정을 주도한다. 산업 경쟁력은 뒤로 밀리고 빚의 회수 방안이 더 많이 논의됐던 이유다.

 

한 산업 구조조정 전문가는 “전 세계에서 금융이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경우는 단 한 곳도 없다”면서 “금융이 나서서 구조조정을 진행할 경우, 해당 산업을 끌고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고, 어떻게 하면 대출한 돈을 손실 없이 회수할 수 있을까만 찾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금융은 산업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산업 없는 금융은 존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금융 논리로 산업이 망가진 최악의 결과는 불과 1년 전에 일어났다. 국내 1위, 세계 7위의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은 지난해 3000억원 대출을 얻지 못해 역사에서 사라졌다. 총수 일가의 부실 경영과 도덕적 해이가 한진해운 위기를 키웠지만, 무엇보다 채권단이 한진해운을 버렸다. 국가 해운 산업 경쟁력에 미치는 한진해운의 위치보다 빚의 회수가 중요했던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금융의 역할이 단순 연명을 위한 자금 지원이 아니라 경쟁력 강화를 유도하는 수단으로 작용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비효율성의 제거라는 구조조정이 돈으로 분석되다 보니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위가 주도하는 구조조정이 유지되고 있다”면서 “관계 부서 회의에서도 조선업 구조조정은 금융위가 주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조선업 구조조정 대원칙이 현재 실종 상태라는 점이다. 산업경쟁력 관계장관회의는 금융 논리 지양 요구 속에서 새 정부 출범 4개월째 회의 한 번 진행한 적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 정부가 만든 체제라는 부정적 인식과 함께 문재인 정부가 우선 과제로 추진하는 일자리 창출 방침과도 상반되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조선해양플랜트과 관계자는 “조선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산업경쟁력 관계장관회의와 동일한 부서가 모여 차관보급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조선업 시황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흘러왔고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포함해, 대형 조선사와 중형 조선사를 어떻게 지원할지를 결정하기 위한 기초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개별 조선사에 대한 채권자 금융 논리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조선업 시황 회복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채권자인 은행은 어느 정도 손실을 보더라도 기존 빚을 당장 회수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권자 판단을 막을 주체가 없고, 정부는 오히려 금융위 주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중형 조선사를 중심으로 금융 논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2010년 24곳에 달했던 국내 중형 조선사는 올해 11개로 7년 사이 절반 넘게 줄었다. 남은 11개 조선사 중 10곳이 자율협약 혹은 법정관리 상태에 놓였다. 중형 조선사가 사라지면 조선 기자재 업체 경쟁력이 저하돼 곧장 국내 조선 산업 위기 심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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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경쟁력 뒷전, 자금 회수 방안에만 몰두

 

정부는 지난해 10월 조선 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내놓고 조선업의 단기적인 수주절벽에 대응하기 위해 공공선박 발주, 선박펀드 활용 등을 통해 2020년까지 50척 이상, 11조원 규모 발주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컨테이너선·유조선 등 상선 발주에 대해선 언급이 없는 상태다. 이에 업계에선 정부 정책의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불거진다.

 

한진중공업은 올해 5월 영도조선소 상선 부분을 폐쇄한 데 이어 6월엔 다대포 공장을 매각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매각한 자산만 4000억원이 넘는다. 박민식 한진중공업 노조지회장은 “방산 물량으로만 운영되고 영도조선소의 상선 부분이 재개되지 않으면 대규모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인력을 잃으면 조선업 미래도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조선업 구조조정 방향부터 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국내 조선 산업은 지난해 기준 연간 343억 달러를 수출했고, 전체 수출의 7%를 차지하는 주요 산업이니만큼 반드시 살려야 하는 산업”이라며 “산업 경쟁력에 기반을 둔 자금지원 이후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조선 산업 위기 이후에 올 호황기에 대비해야 하는데, 현재의 금융 논리로는 대비 자체가 불가능하다”면서 “현장 기능직 인력을 유지하는 고용 구조조정을 통해 다단계 사내 하청을 폐지하는 동시에, 하청업체 대형화를 통해 전문성을 향상시키는 등 산업 우선 관점에서 고숙련·고품질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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