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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인류 최초의 문명이 발생했다?

[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 동아시아사 1부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3(Sat)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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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흔들려가는 21세기의 지구. 그 위에 자리한 한반도의 우리는 이 가속적인 변화의 세계 속에서 어떻게 방향을 잡아가야할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인간은 언제나 역사를 되돌아봐왔다. 

 

그런데 역사를 보는 방식도 시대에 따라 달랐다. 문자가 없는 시대와 사회에서는 이야기를 통해 예전에 있었던 일을 전해주었다. 고대 그리스나 인도, 동아시아의 신화에서 아직까지 남태평양 원주민 사회에서 살아있는, 옛날이야기에 노랫가락을 붙여 들려주는 풍습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역사는 항상 스토리텔러의 입에서 현재의 버전으로 새로 탄생했다. 문자가 있는 사회의 기록도 마찬가지로 과거의 일을 현재라는 렌즈에 비추어봤던 것이라는 점, 지금까지 이 연재를 통해서 여러 번 확인했다.

 

21세기의 역사 보기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요즘 많이 들리는 ‘융합의 역사’라는 키워드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구비전승도 무시하지 말고 기록이라고 다 맹신할 일은 아니라는 반성은 20세기 후반부터 역사학의 새로운 트렌드로 커져왔다. 옛 기록 속에서 기후 등 환경조건을 찾아서 새로운 역사 읽기에 통합하려는 환경역사학도 또 다른 트렌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여기 덧붙여 지난 세기 말부터 문자는 물론 구전에도 담겨져 있지 않은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이 밝혀지며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간이 쓴 기록이 아니라 ‘지구가 쓴 기록’, 혹은 ‘지구에 새겨져 남아 있는 기록’을 읽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몇 억 년 전부터 현재까지 있었던 기후변화나 지구자기장 변화의 역사가 선을 보이고 있다.

 

21세기의 역사는 이렇게 새롭게 확장된 인간 지성의 산물까지도 통합한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연재의 기본 전제다.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도 그 전제에 따라 새롭게 읽혀져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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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과 유적으로 해석한 문명발상지론

 

역사학에 있어서 ‘문명발상지론’이라는 게 있다. 인간이 다른 집단사회 생활을 하는 동물들과 구분되는, 인간만이 보이는 특성을 갖는 고도의 문명생활을 시작한 것이 언제 어디서였느냐는 것이다. 19세기말 유럽의 박물학자들에 의해 처음 본격적으로 제기된 이 화두는 이후 새로운 유적지들이 발굴될 때마다 크고 작은 수정을 거치면서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이 키워드로 자료를 찾으면, 상당히 다양한, 때로는 디테일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 콘텐츠들이 난무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의 어떤 사회가 문명생활을 했느냐 아니냐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서도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양하지만, 대체로 도시 형성, 식량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전문직 종사자의 존재, 계급 분화, 국가 수준의 조직 등이 거론된다. 이런 기준으로 지금까지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티그리스 및 유프라테스 강 유역, 이집트 나일 강 유역, 인도 인더스 강 유역, 중국의 황하 유역, 이 4개 지역에서 가장 먼저 문명이 발생했을 것으로 꼽혀왔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부터 한반도 서북부 바깥쪽에 위치한 ‘요하’라는 강 유역에서 고대문명의 유물과 유적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는데, 이런 세계역사학계의 정설들을 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 유물들은 요하 유역에서 인간들이 집단을 이루며 고도의 문화생활을 하며 살았던 흔적을 보여주는데, 그 연대가 기원전 7000년에서 기원전 1000년까지의 것 정도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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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기원전 4500년대에서 3000년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홍산문화의 유물들은 당시 이곳 사람들이 국가 규모의 집단과 사회체계를 이루고 살았다고, 즉 지금 학계의 일반적 기준으로 보아 ‘문명단계’에 이르렀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대체로 인정되고 있는 4대문명 발상지 중 가장 빠른 곳보다 1000년 앞서며, 황하문명보다는 2500년이 앞선다. 제5의 문명발상지가 등장해서, 사실상 제1의 문명발상지임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세계사가 다시 쓰여야할만 한 상황이다.

 

중국 내에서는 역사가 숨 가쁘게 다시 쓰이고 있는 중이다. 오랜 세월 중국의 주류 세력이었던 한족은 적어도 문자기록이 있었던 때부터 황하문명을 자신들의 시원으로 삼고, 자기 나라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보아 ‘중국(中國)’이라고 불렀다. 만리장성 이남에서 양쯔강까지, 역사시대에 한민족 국가들이 자리했던 곳을 중원(中原), 즉 세계 가운데 있는 터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서 동서남북, 즉 현재 만주와 한반도, 몽골, 위구르 자치구, 중국 남부 및 동남아시아 지역을 모두 오랑캐, 즉 야만족이라고 불렀다. 수천 년 동안 한족 중심의 중국사회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이 되어 왔던 ‘중화사상’의 핵심이다.

 

그 오랑캐의 땅 중 일부인 요하지역에서 황하문명보다 천 년 이상 빠르고 이미 초기 국가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이는 고도로 정교한 문명의 잔재들이 속속 발굴된 것이다. 수천 년 간 중국인들의 정신적 근간이 되어왔던 중화사상이 뿌리부터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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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발 빠르게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국가전략으로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내세웠다. ‘지금의 중국 영토 안에 있는 모든 민족은 예로부터 중화민족이며 그들의 역사도 중국 역사의 일부‘라는 것이다. ‘동북공정’은 이런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국가가 주도하는 요하지역 연구 프로젝트다. 그 핵심은 요하문명을 중국 문명의 시원으로 확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근본적으로 곤란한 문제가 내재해 있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유물과 유적 중 대다수가 중국의 것과는 판연히 다르며, 한반도 국가들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동시에 이 유물과 유적이 속했던 연대에 이 지역에 있었던 나라를 규명하자면, 동아시아의 모든 기록들을 검토해볼 때 해당되는 국가가 ‘고조선’밖에 없다는 점도 있다.

 

기원전 6000년, 요하문명에서 가장 먼저 형성되었던 사해·흥륭와 문화에서는 빗살무늬 토기와 옥귀걸이가 출토되었다. 이 옥귀걸이와 꼭 같은 모양의 옥귀걸이가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에서도 출토되었다. 기원전 4500년 홍산문화의 여신묘에서는 곰과 관련된 부장품들이 많이 나와서 홍산인이 여신과 함께 곰을 숭배하는 곰 토템족이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바로 우리 민족의 기원 신화인 단군신화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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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는 기원전 2000년이 되면 하가점 하층문화로 옮겨간다. 이 시기 유물로 발견되는 돌로 쌓은 성에서는 ‘치’라고 하는, 성 전면에 돌출된 구조물이 눈에 띤다. 성에 접근하는 적들을 활로 막아내기 위해 궁수들을 배치한 탑과 비슷한 것인데, 중국에는 이런 구조물이 있는 성이 없고, 고구려의 성에서만 발견된다. 

 

이밖에도 요하와 한반도 전역의 연계성을 확실히 말해주는 강력한 증거자료의 하나가 비파형 동검이다. 

 

비파형 동검이란, 칼날 부분이 비파와 비슷한 곡선을 보이고 있어서 그렇게 이름 붙여진 청동의 검을 말한다. 발굴되기 시작한 초기에는 이것이 제사지내는 의례용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됐다. 주로 의례의 장소에서 많이 나왔고 제작하기 힘들어 보이는 정교한 모양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어 한반도 여기저기서 많이 출토되면서 좀 더 실용적인 목적, 즉 무기로 사용됐으리라는 추론이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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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형 동검이 가리키는 역사

 

다른 문화권의 검과는 판연히 다른 비주얼을 갖고 있는 이 동검은 한반도에서는 함경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지금의 랴오닝 성, 즉 요하유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굴되고, 또 거기서 가까운 북경 인근 하이허(海河) 유역에서 소량 발굴될 뿐이며, 그 남쪽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중국인이 최근까지 자기 문화의 시원이라고 했던 중원지역에서 출토되는 검들은 위 그림에서 보듯 비파형 동검과는 전혀 다른 일자형 동검이다.) 

 

비파형 동검 중 가장 연대가 빠른 것은 기원전 1200년 무렵의 것으로 추정되며, 대부분의 비파형 동검이 기원전 8세기 이전의 것이라고 한다. 즉 비파형 동검은 요하 문명의 가장 마지막 시기인 하가점 상층문화(기원전 1500년에서 기원전 1000년까지) 시대에 사용됐던 것이다.

 

이 동검을 기준으로 본다면 동아시아의 과거 판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7000년부터 상당한 수준의 문명을 이루었을 것으로 보이는 요하 강 유역에 살던 사람들은 서쪽으로는 북경 인근 하이허 유역에서 동남쪽으로는 한반도 대부분을 터전으로 살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이허 이남의 중국 지역, 즉 불과 얼마 전까지도 중국인들이 ‘중화(中華)’라고 하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 된 문명 발상지임을 자부했던 지역의 문명보다 2000년 이상 앞선 국가 문명을 이룩했다. 이것은 세계 최초의 문명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자명한 사실은 현재 왜곡되어서 국제사회에 알려지고 있다. 

 

“요하문명은 중국인의 선조가 구축했던 문명으로 중국의 문화적 유산이다. 그것이 나중에 한반도 전체로 확산됐다.” 

이런 이데올로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 주최 국제학술회를 거치면서 다듬어져 영어와 중국어로 온라인 공간을 도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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