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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韓商들] 최영태 그리고 NADRI ‘역사를 만들어가다’

세계적 명품 엄선해 소개하는 ‘롤스로이스 REGAL PRESS’ 나드리 주목

미국 뉴욕=감명국 기자 ㅣ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2(Fri) 09:30:00 | 14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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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IN THE MAKING’. 세계적인 명품들만 엄선해 소개하는 롤스로이스 오너스클럽의 ‘2017 YEARBOOK(연감)’은 패션 주얼리 ‘나드리(NADRI)’가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롤스로이스 연감은 최영태 나드리 회장에 대해선 이렇게 설명했다.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나드리가 한국 한 소년의 아이디어로부터 국제적인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가 되기까지 얼마나 발전해 왔는지 Young(최 회장)은 자랑스러워한다. 그는 말한다. “1984년에 시작된 꿈을 우리는 이루어 나가고 있습니다.”’

 

1997년 세계적 패션·쇼핑 1번지인 미국 뉴욕에 홀로 건너가서, 20년 만에 그곳 주얼리 시장을 장악한 최영태 회장에 대한 사연은 이미 KBS1 TV 《글로벌 성공시대》(2013년)를 비롯해 많은 국내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시사저널이 주목했던 건 단순한 그의 창업 성공신화가 아니었다.

 

세계 최고의 명차로 통하는 롤스로이스를 소유하는 ‘롤스로이스 오너스클럽’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들을 위해 제작되는 연감의 타이틀을 ‘REGAL PRESS’라고 붙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은 롤스로이스 오너스클럽이 나드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동차·보석·의류·가구·리조트 등 수천만원, 수억원을 호가하는 세계적 명품들만 엄선해 소개하는 이 책에 불과 몇 만원대, 최고 몇 십만원대에 불과한 패션 주얼리 나드리가, 그것도 자동차를 제외한 chapter2의 맨 첫머리에 소개된 데 주목했다. 그리고 ‘역사를 만들었다’가 아닌 ‘만들어가고 있다’는 제목에 주목했다. 나드리의 미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작은’ 한국인 기업가가 만들어가고 있는 나드리의 미래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뉴욕으로 향했다. 글로벌 경제를 지향하는 ‘세계 속의 한상(韓商)들’, 그 두 번째 주인공으로 시사저널이 최영태 나드리 회장을 현지 취재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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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나드리의 히스토리에 주목한다 했다”

 

8월29일(현지 시각) 뉴욕에 도착한 기자는 나드리 본사를 방문하기 전 뉴욕 맨해튼에 있는 백화점들부터 먼저 찾았다. 나드리의 현지 위상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곳에서 나드리 매장을 찾는 데는 별다른 수고가 필요치 않았다. 1층 가장 눈에 잘 띄는 중심에 나드리가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사에서 만난 최영태 나드리 회장은 “추석 즈음에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 있었는데, 인터뷰를 위해 이렇게 먼 곳까지 직접 찾았느냐”며 미안함과 고마움의 뜻을 동시에 전했다. 기자는 최 회장의 스토리뿐만 아니라 나드리의 스토리를 듣고 싶고, 분위기를 보고 싶다고 했다. 최 회장은 본사 임직원들과의 인터뷰를 주선하기도 했다.

 

기자가 처음 최 회장 방을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선명하다. 국내 기업들의 ‘회장님’ 방과는 사뭇 달랐다. 흔한 고급 소파 하나 없었고, 별다른 장신구도 없었다. 개인 집무용 책상 외에 회의용 탁자 하나가 전부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4면 벽을 가득 채운 큰 세계지도와 빽빽한 나드리 광고 모델들의 사진이었다. 그리고 태극기와 애국가 악보가 인쇄돼 있는 액자가 책상 위에 보였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롤스로이스 연감에 소개된 내용부터 시작됐다.     

 

 

세계적 명품지로 통하는 ‘롤스로이스 REGAL PRESS’의 제일 첫머리에 패션 주얼리 브랜드인 나드리가 등장한다는 게 다소 의외로 느껴졌다.

 

“롤스로이스에서 우리한테 연락이 왔다. 본사와 오너스클럽에 소개되는 이어북에 우리 브랜드를 소개하겠다고. 나 역시 선뜻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뭐 그럴 것 있나’라며 거절했다. 이후 내가 출장 가 있는데 또 연락이 왔다고 했다. ‘우리가 나드리를 소개해 주겠다고 하는데 거절하는 이유가 뭐냐’고. 당시엔 왜 그런 명품지에 나드리를 소개하려 하는지에 대해 확신이 안 섰다. 그래서 이렇게 전달하라고 직원에게 일렀다. ‘우리 회사의 미스터 최가 별로 흥미 없어 한다.’ 출장을 다녀온 뒤 롤스로이스에서 내게 직접 연락이 왔다. 두 번씩이나 거절당해 본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솔직히 놀랐다고 하더라. 살짝 자존심이 상한 눈치였다. 그래서 내가 ‘왜 굳이 나드리를 소개하려 하느냐’고 물었다. 나드리의 히스토리에 주목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래? 그럼 하자’고 답했다.”

 

 

나드리의 히스토리에 주목한다는 얘기가 인상적이다.

 

“우리 브랜드를 소개하기로 결정한 후에 장시간 인터뷰가 이어졌고, 책이 발간되기 전에 이런 내용으로 나갈 것이라며 내용을 보내왔다. 그러면서 나드리가 제일 첫 페이지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것과 그 이유를 설명했다. 역사를 새로 만들어가는 나드리의 히스토리가 이 책 중간에 들어가기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 롤스로이스 제안을 받고 패션 주얼리를 소개하겠다는 저의가 뭔지, 세계 최고급의 파인 주얼리를, 진귀한 진짜 보석들을 소개할 책에 왜 가격이 100분의 1, 1000분의 1도 안 되는 나드리를 소개하려 하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그 얘기를 듣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나드리의 히스토리에 주목했던 거다.”

 

 

주얼리 시장은 크게 ‘파인 주얼리’와 ‘패션 주얼리’로 양분된다. 파인 주얼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다이아몬드·에메랄드 등 보석·패물이다. 즉 진품을 말한다. 패션 주얼리는 값비싼 보석과 값싼 도금제품의 중간을 겨냥해 개발된 것으로 플라스틱·유리·모조 보석류 등을 사용해 뛰어난 디자인으로 어필하는 제품이다. 따라서 가격 면에서는 진짜 보석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 최근 ‘브리지 주얼리’도 등장했다. 브리지 주얼리는 파인 주얼리와 패션 주얼리의 중간 틈새시장이다. 패션 주얼리보다 비싼 금속과 보석을 사용하면서 상대적으로 비싸지 않은 가격과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추구한다. 최근 나드리는 이 브리지 주얼리 시장을 공략하면서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고 있다.

 

최영태 회장은 1956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6남매 중 막내였던 그는 유독 어린 시절부터 바다 건너 넓은 세상을 향한 꿈을 키웠다. 그래서 통영수산고등전문학교(현 경상대 해양과학대)에 진학했다. 학교 졸업 후 해기사(海技士)로 바다를 누비며 해외 경험을 쌓은 그는,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무대에  도전해 보겠다는 꿈을 갖고 1984년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처음 ‘나드리(NADRI)’란 이름을 내걸었다. 버려진 나무상자를 뜯어 만든 허름한 가판대 하나의 작은 보석상이 지금 나드리의 첫 시작이었다. 1997년 4월, 그는 홀로 뉴욕 맨해튼을 찾았다.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성공시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지만 뉴욕 맨해튼은 남대문시장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했다. 이미 그곳에는 스와로브스키·지방시·마조리카 등 세계적인 패션 주얼리들이 확실히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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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과 쇼핑의 1번지로 불리는 뉴욕에 진출한다는 게 그 당시로선 꽤 무모해 보였을 텐데.

 

“그렇다고 너무 쉬운 데로 가면 도태될 수 있다. 세계 강자들이 패션의 중심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로 각축을 벌이는 이곳 뉴욕에서 나드리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당시 나로서도 꽤 흥미로운 도전이었다. 설사 나 때에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혼신을 다한다면 기반은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큰 성공은 내 다음 때에 가서 이루면 되는 것이다.”

 

 

회사에 한국 직원이 많은 편인가.

 

“전체의 약 30% 정도 된다. 물론 미국인이 제일 많지만, 우리 회사는 다국적이다. 일본 임원도 있다. 이순신 국제요트대회 유니폼을 입고 싶어도 그 임원 때문에 못 입는다(웃음).”

 

 

국내 기업들의 경우, 한 가지 분야에서 성공하면 너도나도 다른 분야로 사업 확장을 많이 꾀한다. 나드리도 그런 계획이 있나.

 

“우리는 여기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아직 여기서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릴 겨를이 없다. 물론 내 눈에도 보이는 다른 분야들이 있다. 솔직히 마음을 뺏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이 분야에 소홀하게 된다. 그리고 할 수 있다고 우리가 다 하면, 그건 우리만 사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더불어 사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솔직히 지금 나드리의 모습으로 만족하는가.

 

“아니다. 그렇지는 않다. 더 가야 할 길이 많다. 하지만 결코 서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나드리가 그래 왔듯이, 굉장히 공격적인 비즈니스를 한 적도 있고, 열정적이었지만, 서둘지는 않으려 한다.”

 

 

여기 오기 전에 맨해튼 유명 백화점들을 보고 왔다. 주얼리 업계에서의 지금 나드리 위치를 어떻게 보고 있나.

 

“미국 내 백화점에서는 나드리가 넘버원이다. 모든 패션 주얼리에서 인지도나 실적 모두가 그렇다. 남의 브랜드를 평가하기엔 그렇지만, 1997년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지방시·스와로브스키 등은 상당한 위치였는데, 지금은 뉴욕 백화점에 나드리가 있는 곳에 스와로브스키가 없다. 미국 백화점들도 요즘 어려운데, ‘그나마 나드리가 있어줘서 상당히 다행이다’고 말한다.”

 

 

주얼리 분야도 뛰어난 디자이너 등 우수한 인재 확보가 매우 중요한 사업인 듯하다.

 

“사람이 제일 귀한 재산이다. 비단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세일즈 마케팅과 품질관리도 마찬가지다. 생산자나 판매자 입장에서 제품을 보지 않고, 무조건 소비자 입장에서 본다. 그래서 생산자들이 상당히 힘들어 한다. 최첨단 유행의 중심이다 보니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진짜 보석 명품도 욕심이 나지 않나. 왜 나드리는 파인 주얼리 쪽엔 진출하지 않는가.

 

“다른 것도 그렇지만, 주얼리도 결국 쓰는 사람들이 쓴다. 나는 주얼리를 입는다고 표현한다. 한국을 보면, 옷은 자주 바꿔 입으면서 막상 주얼리는 그렇지 않다. 패물이나 기념선물 등 어떤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서양은 옷을 바꾸면 주얼리도 그에 맞춰 바꾼다. 주얼리는 패션의 완성이다. 그렇다 보니 미국에서 나드리를 쓰는 분들은 계속 나드리를 찾게 된다.”

 

 

지금 한국에는 취업난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이 많다. 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나.

 

“취업은 최후 수단이지, 최선의 선택은 아니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취업 전에 우리 청년들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설정을 하는 것부터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젊은 시절,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이 사회와 테크닉을 배우기 위해 어느 조직에 가는 게 좋을까. 그리고 거기서 그 일원으로 헌신하면서 열심히 자신을 닦고 키워서 다음 언제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계획을 설정해 놓고 취업한다면, 그것은 최후 수단이 아니라 최선의 선택이 된다. 그런데 그냥 기계적으로 남들처럼, 학교 졸업했으니 취업을 하자, 어느 기업이 복지가 좋다 하니 거기에 들어가자 하는 식은 아닌 듯하다.”

 

 

‘기업가 최영태’를 롤 모델로 삼는 국내 기업인들도 많을 듯하다. 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 줄 수 있나.

 

“젖어 있지 말라는 얘기를 해 주고 싶다. 만약 OEM(주문자가 요구하는 제품과 상표명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일단 사업 기반을 구축했다고 치자. 이후 자기 독자 브랜드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다. 남의 브랜드 생산에만 안주하게 되고, 갇히게 된다. 큰 변화는 위태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결코 새로워질 수 없다. 10년 정도 그 분야에서 열심히 기반을 닦았으면, 10년 후엔 그 기반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 그게 제2의 창업일 수도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 활동할 계획은 없나.

 

“지금은 여기 있어도 한국에 있는 것과 다른 게 하나도 없는 세상이다. 지금 인터뷰도 한국을 위해 하고 있고, 기자도 직접 여기로 찾아오지 않았나(웃음). 지금은 글로벌 자체가 한민족이 살아갈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학생들을 직접 만나서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서로 대화하고, 내 경험을 나눠줄 수 있는 자리라면 언제 어디든지 가고 싶다. 앞서 질문했지만, 다른 사업을 확장하는 데는 솔직히 내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라는 학생들이 앞으로의 꿈을 위해 어떤 경험을 얻고자, 길을 얻고자 한다면, 그래서 내 얘기를 듣고자 한다면, 그럴 땐 오히려 내 가슴이 더 뜨거워진다.” 

 

 

신라 금관의 디테일한 기술에 뿌리 둔 나드리의 역사

롤스로이스 이어북 ‘한국 문화유산의 정교한 공예술에서 영감’ 소개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지만, 롤스로이스는 벤틀리·마이바흐와 함께 세계 3대 명차로 꼽힌다. ‘영국 왕실 의전 차’의 자존심으로 통한다. 지금도 전 세계 왕족과 부호들이 갖고 싶어 하는 1순위 차로 롤스로이스를 말하는 이들이 많다. 1906년 영국에서 설립됐고, 지금은 독일 BMW에 인수됐다. 수백, 수천 대로 한정해 제작하는 수제 자동차의 명가로 통하는 탓에 국내에도 불과 몇 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롤스로이스 오너스클럽’은 그런 롤스로이스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회원들로 구성돼 있다.

 

그들을 위해 제작되는 롤스로이스 이어북의 타이틀을 ‘REGAL PRESS’라고 붙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책에 패션 주얼리 브랜드인 ‘나드리(NADRI)’가 소개된 것은 다소 의외였다(왼쪽 사진). 그것도 모든 명품들을 제치고 사실상 제일 첫 장에 소개됐다. 패션 주얼리 나드리는 뒤에 소개되는 세계적 명품들에 비하면 가격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 나드리를 첫머리에 소개한 이유에 대해 롤스로이스는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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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롤스로이스 연감은 나드리의 정교한 공예술에 주목한다. 이를 신라시대 금관의 우수성과 접목시키고 있다. ‘한국 문화유산의 정교한 공예술에서 영감을 얻어 뉴욕시에 위치한 나드리가 영속적인 품질의 우아한 주얼리를 창조한다’고 첫머리에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나드리의 특징을 이렇게 말한다.

 

‘한국의 고대 왕국 3개 중 하나인 신라를 기원전 57년부터 약 1000년간 통치한 왕조는 그들의 장인들이 최상의 품질로 제작한 주얼리들과 함께 묻혔다. 그들의 무덤은 금으로 제작된 섬세한 왕관·검·반지, 그리고 목걸이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이로 인해 신라의 기술자들은 금을 가공하는 전문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당시에 그들은 알 수 없었지만, 2000년 이상 지난 후, 그들이 만든 장신구들은 또 다른 한국인의 삶을 이끌어 나드리라는 주얼리 왕국을 세우는 것을 도왔다.’

 

한국에서 출발해 미국 뉴욕 시장을 장악한 나드리의 뿌리를 신라시대 금관을 만든 장인들에 맞추고 있는 그들의 통찰력이 놀랍다. 롤스로이스 이어북은 2000년 전 신라 금관과 지금 뉴욕 백화점에 진열된 나드리 주얼리의 연관성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드리 창립자인 Young(최영태 회장)은 한국 경주에 위치한 국립박물관으로의 감명 깊은 여행을 기억하고 있다. “저는 아름답고 섬세한 주얼리에 매료되었습니다”라고 Young은 말한다. (중략) 나드리를 처음 시작할 때, Young은 디자인에서부터 제조, 그리고 판매까지 모두 혼자 했다. 현재는 뉴욕 본사에 전문 디자인팀을 두고 있다. 모든 디자이너들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일류의 아트 스쿨을 졸업하고, 영감을 얻기 위해 세계를 여행하며 패션·미술·자연, 그리고 전통 있는 주얼리들을 경험한다. (중략) 나드리의 모든 컬렉션은 완벽을 추구한다는 ‘황금률’로 연결돼 있다. 각각의 디자인은 큐빅 지르코니아부터 연마된 보석을 하나하나 손으로 세팅하는 방법을 포함하는 파인 주얼리 제조 공정으로 생산된다. 이런 과정들은 기원전 57년에 초기 (신라) 장인들이 디테일에 집중했던 정신에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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