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회된 사립유치원 휴업, 교육부가 축배들 일 아니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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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한유총 갈등 속에 정작 학부모 권리는 온데간데 없어

 

9월18일로 예정됐던 사립유치원 휴업 사태가 일단락됐다. 그동안 휴업을 주도해온 사립유치원 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학부모를 볼모로 잡은 이기적 행태”란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도 9월12일 “학부모를 볼모로 한 휴업은 불법”이라고 못박았다. 그런데 사립유치원을 향한 교육부의 압박 속에 정작 학부모의 권리는 묻혀버렸단 지적이 나온다. 

 

한유총의 고위관계자는 9월19일 시사저널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의 주장은 ‘유아교육비를 학부모에게 지급함으로써 국공립 유치원과 사립유치원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학부모에게 돌려주자’는 것이었다”면서 “하지만 교육부의 무소불위한 권력이 그와 같은 선택권을 앗아갔다”고 꼬집었다. 유아교육법 24조에 따르면, 유아교육에 드는 비용은 유아의 보호자에게 지원하는 것이 원칙이다. 관계자는 “교육부는 처음에 한유총이 제안한 협상안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춘란 교육부 차관이 9월16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룸에서 사립유치원 집단 휴업 철회 취소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교육부의 무소불위 권력이 교육 선택권 앗아갔다”

 

이 관계자는 그 근거로 ‘정부 협상안’이란 제목의 문서를 건넸다. 한유총 투쟁위원회가 정리한 최종 협상목표 9가지가 담긴 문서다. 여기엔 ‘학부모에게 선택권을 주는 유아학비는 학부모에게 직접 지급하라’고 나와 있다. 이 내용이 9월15일 교육부와 한유총 지도부의 간담회에서 논의됐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비공개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당시 간담회에선 합의안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간담회 직후 “휴업 철회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한유총 투쟁위는 반발했다. 그러나 지도부는 결국 떠밀리듯 9월17일 휴업 철회를 공식 인정했다.

 

아이에 대해 무상교육을 받을 학부모의 권리는 당연히 실종됐다. 유아교육법 24조는 ‘초등학교 취학 직전 3년의 유아교육은 무상으로 실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무상교육의 실행 기관에는 국공립과 사립의 구분이 없다. 

 

 

무상교육도 불가… “국공립과 사립은 법적 근거 달라” 

 

이와 관련, 한유총은 지난해 5월 발표자료를 통해 “공립유치원 지원금의 1/2만 사립유치원에 지원하면 전국 모든 유아에게 완전 무상교육을 할 수 있다”면서 “추가로 내야 할 세금은 없다”고 주장했다. 한유총 관계자는 “교육부는 국공립 유치원을 설립해 밥그릇을 늘려야 하니, 무상교육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사립유치원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 하유경 과장은 9월21일 “국공립 유치원과 사립 유치원은 일단 법적 근거가 다르다”며 “국립기관과 사립기관을 국가 경영상 똑같이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교육부는 앞으로 사립유치원이 반대해온 ‘국공립 유치원 취원율 40%까지 확대’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9월18일 국회에서 “사립유치원 위치 등을 고려해서 국공립 유치원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도 우호적이다. 강원도교육청이 9월2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강원도에 사는 학부모 가운데 88.6%가 국공립 유치원 확대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국공립 유치원에 보내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학비가 공짜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한 ‘유치원 정보공시개요’(2016년 10월 기준)에 따르면, 국공립 단설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는 월 1만3000원을 낸다. 반면 사립유치원 학부모는 18만 2000원을 내야 한다. 

 

교육부가 '사립유치원 휴업 철회'를 발표한 9월1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유치원에서 어린이가 보호자와 함께 하원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국공립 유치원은 공짜가 아니다”

 

하지만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9월21일 시사저널에 “국공립 유치원은 공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학부모는 매달 약 1만원만 내면 된다고 느끼겠지만, 국공립 단설유치원을 짓고 운영하는 데는 원아 1인당 매달 114만원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국 나머지 113만원은 국민 또는 법인이 나눠서 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부모 본인이 다른 형태로 추가 납세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설립비만 따졌을 때 국공립 유치원 하나에 들어가는 비용은 80억~100억원 정도로 예상된다. 2019년 세종시에 들어설 국내 첫 공립 유치원인 ‘새빛 숲 유치원’의 경우 91억8000만원이 투입될 계획이다. 한유미 호서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설립비 외에 지속적으로 들어가게 될 운영비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유총 관계자는 “국공립 유치원 취원율을 40%까지 올리려면 5년 동안 6조6000억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는 재원 마련 계획에 대해선 밝히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를 교육부의 승리로 봐선 곤란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있다. 한유총이 다시 휴업 카드를 꺼낼 가능성 역시 여전히 남아있다. 한유총 관계자는 “휴업 철회는 한유총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물러선 결과일 뿐, 일부 투쟁위 회원들은 뜻을 굽힌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교육부의 승리?… “일부 투쟁위는 휴업 굽힌 적 없어”

 

이와 관련해 시사저널은 최정혜 한유총 이사장과 이덕선 부이사장이 9월16일 낮 12시경에 통화한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을 입수했다. 두 사람은 각각 지도부와 투쟁위를 이끌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화일인 9월16일은 교육부가 지도부와 간담회를 갖고 ‘휴업 철회’를 발표(9월15일)한 다음날이다.

 

녹음파일에 따르면, 최 이사장은 처음에 ‘(유치원 건물의) 용도변경’에 대해 언급한다. 뒤이어 “(한유총) 회원들에게 내가 획득한 걸 다 못 알렸는데, (이덕선) 부이사장님이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겠느냐”고 말했다. 유아교육법에 따르면, 사립유치원 건물은 유치원 이외의 용도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용도가 바뀌면 매매가 가능하다. 용도변경 관련 내용은 한유총의 ‘정부 협상안’에 없는 내용이다. 

 

한유총이 정부와 협상하려고 한 내용이 담긴 '정부 협상안' 문서의 일부. © 사진=한유총 관계자 제공


 

한유총 간부들, “이젠 본분에 집중하려 한다”

 

이후 대화는 10여분 동안 이어진다. 통화가 끝날 때쯤, 이 부이사장은 “싸워보자. 우리가 상처 입었는데 겁낼 거 뭐 있겠나”라고 말한다. 이에 최 이사장도 “알겠습니다”라고 답한다. 통화가 끝나고 약 4시간 뒤인 9월16일 오후 4시, 투쟁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휴업 강행 의사를 밝혔다. 통화 내용과 관련해 한유총 관계자는 “최 이사장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른 일(휴업 철회 결정)은 투쟁위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통화 당사자들은 내부갈등과 관련해 더 이상 거론하길 꺼려했다. 최 이사장은 9월20일 시사저널에 “용도변경에 대해 교육부와 얘기한 적이 없다”면서 “나는 협상 테이블에 앉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본질이 왜곡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제는 유치원 원장으로서 본분에 집중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이사장 역시 “이젠 갈등을 끝내고 각자의 역할로 돌아갈 때”라며 “최 이사장이 개인적 욕심을 내세웠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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