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라인 좌충우돌, 불안함은 국민의 몫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2 15:34
  • 호수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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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 vs. 송영무 국방장관 ‘갈등’ 표면화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와 송영무 국방장관의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현 정부 안보정책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청와대가 직접 송 장관에게 주의를 주면서 상황을 정리했지만, 갈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 두 사람이 안보 관련 사안마다 갈등을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안보라인의 잦은 대립은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불안감만 증폭시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안보라인의 계속된 충돌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결과적으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 밑에서 안보정책과 관련해 부처나 실무자 간 의견을 조율해야 할 일차적 임무를 맡고 있다. 그런 그가 이미 예고됐던 두 사람 간 충돌이 외부로 새어나올 때까지 방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 실장의 사실상 ‘직무유기’로 인해 외교안보 라인이 질책을 받았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 문 특보는 미국에서 ‘한·미 연합훈련 축소’ 발언을 해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에도 정 실장은 뒤늦게 문 특보에게 전화를 걸어 주의를 당부했다.

 

 국회 국방위 한 관계자는 “정 실장이 미국 측의 주장에 지나치게 얽매이면서 제대로 된 정책 노선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 역시 9월12일 페이스북을 통해 정 실장을 직접 거론하면서 “지난 6월 문 특보가 ‘북한 핵동결 시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주장하자 청와대가 ‘개인적 생각’이라고 선을 그었는데, 알고 보니 정 실장이 맥마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만나고 있었다”고 밝혔다. 여당 내 국회 국방위 의원실 관계자는 “송 장관과 문 특보의 대립은 언젠가 또 발생할 것이다. 이쯤 되면 정 실장이 나서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차제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왼쪽)와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설전’은 그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진=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

 

문정인-송영무 정면 충돌

 

문정인 특보와 송영무 장관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 계기는 송 장관의 국회 발언이었다. 송 장관은 9월18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문 특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문정인 교수는 본래 제가 입각하기 전에 한두 번 뵌 적이 있지만, 자유분방한 사람이기 때문에 저하고는 상대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참모들에게) ‘놔둬’라고 했다”고 답했다. 이어 “(문 특보는) 학자 입장에서 떠드는 느낌이지 안보특보라든가 정책특보가 아닌 것 같아서 개탄스럽다”고 말하며 파장이 거세졌다.

 

송 장관이 문 특보에게 날을 세운 이유는 문 특보의 발언 때문이다. 문 특보는 9월15일 한 매체를 통해 송 장관의 ‘참수작전’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김정은 참수작전은) 용어부터 정제된 것을 사용해야 긴장을 완화시켜줄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할 것”이라며 “12월에 창설되는 부대는 ‘참수작전’ 부대가 아니다. 미국의 네이비실이나 UDT와 같은 특수부대인데, 국방부 장관께서 부적절한 표현을 쓴 것 같다”고 말했다. 문 특보 측 관계자는 “문 특보는 상대방의 리더를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평소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참수’라는 용어 사용에 부정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 장관은 문 특보의 비판에 대해 사석에서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9월21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송 장관은 문 특보의 ‘참수작전’ 비판을 접한 뒤 “문 특보가 김정은과 대통령을 동격으로 취급하는 듯한 발언을 한 데 대해 참을 수 없었다”고 사석에서 불만을 제기했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송 장관이 평소 문 특보가 외교안보특보로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 온 것 같다”고 전했다.

 

송 장관과 문 특보는 특정 사안마다 의견을 달리하며 간접적으로 부딪쳤다. 문 특보는 6월16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우드로윌슨센터와 한국 동아시아재단이 공동 개최한 행사의 오찬 기조연설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활동을 중단할 경우 한·미 연합군사훈련 규모를 줄이는 방안을 미국과 협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큰 논란이 일었다. 이때부터 송 장관은 문 특보의 의견에 반대하는 의사를 공공연히 피력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사안은 전술핵 배치와 핵추친 잠수함 도입 문제다. 송 장관은 그동안 전술핵 배치와 핵잠수함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핵잠수함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당시 송 장관은 문재인 대선캠프 국방안보위원회 공동위원장이었다. 하지만 문 특보는 청와대 입성 전부터 전술핵과 핵잠수함 도입에 부정적이었다. 문재인 대선캠프 안보상황실에 근무했던 인사는 “이때부터 송 장관과 문 특보의 의견이 직접 부딪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불씨 여전, 또 다른 사안으로 갈등 예고

 

문 특보와 송 장관의 설전을 바라본 많은 이들은 두 사람에 대해 “결이 다르다”고 표현한다. 학자로 살아온 데다 국방보다는 외교안보 라인에 특화된 문 특보와, 군인으로 지내온 송 장관의 관점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국방부 소식에 정통한 한 인사는 “송 장관은 정치적으로 보면 ‘정무적 감각’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다. 군인 마인드가 강하다. 국회에서 답변할 때도 의원들이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하다 보니 오해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문 특보에 대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부터 줄곧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송 장관과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청와대는 송 장관이 국회에서 문 특보를 비판한 직후 송 장관 측에 엄중 주의 조치했다고 9월19일 밝혔다. 송 장관은 19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발언이 과했던 것 같다.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당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송 장관에게 직접 연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실장이 문 특보, 송 장관 양측과 소통하며 상황을 정리한 듯 보이지만 앞으로도 갈등의 씨앗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 실장이 중심을 잡지 못하면서 혼선이 계속 빚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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