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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만 남기고 비극적으로 떠난 50조원 슈퍼리치

고독한 말년 보내며 사망한 ‘로레알 상속녀’ 릴리안 베탕쿠르

김회권 기자 ㅣ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3(Sat)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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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으로 꼽히는 프랑스 화장품 기업 로레알의 상속녀 릴리안 베탕쿠르가 9월20일(현지시간)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포브스가 집계한 베탕쿠르의 보유 자산 추정액은 약 447억 달러로 우리돈 50조9000억원에 달한다. 서거 직전 그녀는 세계 부호 순위에서 13번째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외동딸인 프랑수아즈 베탕쿠르 마이어스는 “어머니가 프랑스 파리에 있는 자택에서 돌아가셨다. 편안한 마지막이었다”고 밝혔다. 베탕쿠르는 1907년 로레알을 창업한 유젠 슈엘러의 외동딸이자 유일한 상속인으로 로레알 주식의 33%를 보유하고 있었다. 랑콤, 키엘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로레알은 베탕쿠르가 대주주로 있는 동안 전 세계 8만930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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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간 재산 갈등, 불법 정치자금 사건으로 번지다

 

 

세계적인 부호지만 그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미담의 주인공이 아니라 막장드라마를 연상하게 하는 스캔들로 전 세계의 시선을 끌었다. 2007년 베탕쿠르의 외동딸인 프랑수아즈가 베탕쿠르의 절친한 친구인 프랑수아-마리 바니에를 고소하면서 드라마의 막이 열렸다. 바니에는 프랑스의 유명한 사진작가이기도 했다. 프랑수아즈는 “바니에가 베탕쿠르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인 걸 이용해 10억 유로 상당의 현금과 피카소와 마티스의 회화 등을 챙겼다”고 주장했다. 


프랑수아즈는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기에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 힘들다며 재산을 지키기 위해 후견인을 지정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딸의 요청을 들은 베탕쿠르는 오히려 딸을 맹비난했다. “딸의 괴롭힘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구하기 위해 변호사를 통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오히려 딸을 고소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베탕쿠르는 딸이 아닌 바니에를 유일한 상속인으로 지정하려고 했지만 프랑수아즈의 반발로 없던 일이 됐다.

프랑스 슈퍼리치 모녀의 다툼은 이처럼 막장드라마였지만 어느 순간 정치드라마로 변화를 꾀했다. 베탕쿠르는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일부 직원이 프랑수아즈의 편에 붙었다며 그들을 해고했다. 그리고 이 조치가 시발점이었다. 베탕쿠르의 집사였던 파스칼 본푸아는 진작부터 베탕쿠르의 상태를 걱정했고 2009년부터 그녀의 사무실에 녹음기를 설치해놨다. 그 역시도 프랑수아즈 편이라며 해고됐는데 본푸아는 CD 25개 분량에 해당하는 녹음 파일을 프랑수아즈에게 건넸다. 그리고 이 파일들은 고스란히 수사 중인 경찰에 전달됐다. 여기에서 바니에 뿐만 아니라 베탕쿠르의 재산관리인 등 측근들 역시 베탕쿠르를 속여 이익을 취한 정황이 포착됐다. 

그런데 의외의 얘기가 테이프에서 흘러나왔다.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의 최측근인 에릭 뵈르트 노동장관의 아내를 고용했다는 얘기가 녹음에서 흘러나왔다. 프랑스의 대부호와 유력 정치인의 유착 정황이 나오자 경찰의 수사는 한층 강해졌고 새로운 증언이 주변에서 터져나왔다. 베탕쿠르가 해고한 한 회계사가 “현금 봉투를 정치인에게 전달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었다”고 증언했다. 

“정치인은 모두 베탕쿠르에게 봉투를 받으러 왔다. 그 액수가 10만~20만 유로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뵈르트 노동장관이 2007년 대선 직전 베탕쿠르에게 불법 대선자금을 받아 갔다는 증언이 나왔다. 사르코지의 당 재정담당자가 직접 80만 유로를 받아갔다는 얘기도 있었다. 프랑스 선거법은 개인이 기부할 수 있는 정치후원금 한도를 4600유로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베탕쿠르와 연관된 정치인들은 모두 선거법 위반에 해당했다.

모녀의 재산 다툼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프랑스 국민들은 거부들의 막장드라마를 다시 한 번 자세히 들여다봐야 했다. 일반인이 상상하는 정치인과 재계 거물의 흑막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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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탕쿠르의 스캔들로 추락한 사르코지 전 대통령

 

베탕쿠르를 둘러싼 불법 선거자금 스캔들은 사르코지 정부의 집권 후반기를 힘들게 만들었다. 2012년 6월15일 사르코지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그의 면책 특권은 사라졌다. 바로 다음달인 7월에 프랑스 경찰은 베탕쿠르 스캔들과 관련해 사르코지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대통령 명찰을 떼자마자 사르코지는 치욕을 맛봐야 했다. 사르코지는 불법 선거자금 혐의로 기소됐지만 2013년 10월이 돼서야 겨우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의 정치적 명성은 이미 땅에 떨어진 뒤였다.

베탕쿠르는 판단능력이 정상이 아니라는 딸의 주장을 줄곧 부인해오다 2011년 알츠하이머 진단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법원은 결국 견원지간인 딸, 그리고 손자를 후견인으로 지정했다. 베탕쿠르의 절친인 바니에는 베탕쿠르를 정신적·도덕적으로 통제했다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징역 3년과 35만 유로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베탕쿠르는 말년에 잃은 것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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