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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치광이’ 자처는 고도의 협상카드

“북한 완전파괴” 트럼프 폭탄선언의 노림수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7(Wed) 07:00:00 | 14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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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로 준비된 ‘미치광이 이론’이다.”

“제어할 수 없는 트럼프가 사고를 칠지 모른다.”

 

9월19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의 첫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만 한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totally destroy)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거의 폭탄선언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행동의 실천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트럼프의 거친 언사가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더욱 부각시킨 것만은 분명하다.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많은 미국 주요 언론들은 즉각 “도가 지나쳤고 호전적”이라며 트럼프의 강경한 발언을 지적했다. 실제로 그동안 트럼프는 주로 트위터를 통해 ‘화염과 분노’ 등을 거론하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 가능성을 피력했지만, 다자 외교 무대에서의 언급은 이번이 처음이다. 준비된 공식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도 있다고 했으니, 그 충격은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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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 전략’으로 몰고 가는 트럼프

 

일부 언론이 트럼프에 관해 “정치인이라기보다는 깡패 두목(mob boss) 같았다”며 혹평을 쏟아낸 것이 이를 잘 말해 준다. 하지만 트럼프가 이러한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그래서 나오는 것이 바로 이른바 ‘미치광이 이론(madman theory)’이다. 상대방에게 공포를 유발해 이것을 무기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이 전략 자체는 행동의 주체들이 실제 ‘미치광이’가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과격한 발언과 극도의 공포 조장은 추후 협상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전략일 뿐, 실제로 전쟁이나 파국을 초래하는 행동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막말의 대가’로 불리는 트럼프가 바로 이러한 ‘미치광이 전략’의 일인자로 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그가 30년 전에 출간한 자서전인 《거래의 기술》이라는 책을 잘 분석해 보면, 트럼프는 막말을 일삼는 허세가 가득한 사기꾼이 아니라, 고도로 치밀하고 대단히 집요한 협상가이자 거래(deal)의 달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실제로 42분간 이어진 트럼프의 유엔총회 연설이 북한에 대한 과격한 발언이 헤드라인으로 부각되기는 했으나, 그의 전체 연설을 찬찬히 뜯어보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기반으로 한 대단히 현실 정치적(real politics)인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세계를 상대로 하는 유엔 연설에서도 트럼프는 마치 미국 내 자신의 지지층을 상대로 하는 국내 정치용 연설을 펼쳤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발언은 실제로 전쟁을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니라, 엄청난 말폭탄을 쏟아냄으로써 북한을 뒤로 물러나게 하기 위한 일종의 ‘도박’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분석은 시기가 문제일 뿐, 북·미 충돌 임계점이 다가올수록 양쪽은 협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더구나 북·미 갈등이 최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현재도 미국과 북한 간에 끊임없이 물밑 비밀접촉을 통한 줄다리기는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지만,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9월1일 러시아 외교관 양성 전문대학을 찾은 자리에서 “미국과 북한 사이에 대화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발언했다. 그는 그 이상의 내용은 밝히지 않았으나, 북·미 물밑 비밀접촉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 재개 등 공식 협상으로 이어질 합의점이 잘 찾아지지 않는다는 뉘앙스였다. 워싱턴의 한 정통한 외교 소식통도 이에 대해 “실제 최근까지도 북·미 고위 실무자급 외교 관계자가 수차례 비밀접촉을 가진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북한은 기존 핵보유 인정을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지만, 미국 측이 이에 난색을 표시해 여러 차례 비밀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극도의 보안 사항인 북·미 비밀접촉 내용이 전부 알려질 수는 없으나, 최근 미국의 전직 고위급 관료들이 북한 핵보유를 인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빈번한 북·미 ‘비밀접촉’

 

대표적으로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 정보기관을 총괄한 제임스 클래퍼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지난 8월13일, 미 CNN방송에 출연해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도 북한의 비핵화를 보고 싶지만, 그것을 협상카드로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핵은 북한의 생존 티켓이라 포기하리라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클래퍼 전 국장뿐만 아니라, 북·미 대결 구도가 격화될수록 미국의 많은 전문가가 이러한 ‘북한 핵보유 인정’ 주장에 동참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핵보유 도미노 현상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마저도 반대하고 있는 이러한 주장이 그대로 실현되기는 어려운 것이 북핵 문제가 가지고 있는 고차방정식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핵무기는 완성할수록 사용할 수 없다는 묘한 역설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공포의 균형’이다. 누구든 사용하면 상대방의 치명적인 핵 보복공격으로 비슷한 피해를 자초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국 본토에 닿을 수 있는 핵무기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북한의 ICBM이 완성된다면 미국 국민이 느껴야 하는 공포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또 미 행정부는 지금까지 ‘미치광이’로 비난해 왔던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갑자기 핵공포를 알고 있는 합리적인 사람으로 미 국민에게 선전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어쩌면 바로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적 옵션의 사용 유혹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국과 러시아가 묵인하고 서울이 보복 공격을 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북한의 핵개발 수준을 과거로 돌려놓을 수 있는 군사옵션 카드가 거론되는 이유다. 하지만 보복공격이나 확전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다. 트럼프가 어쩌면 이러한 ‘사고’를 칠지도 모른다는 것이 한반도의 또 다른 불안 요소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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