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發 사법 개혁 어디로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5 17:59
  • 호수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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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도 개혁 예고한 김명수 대법원장, 권한 나누고 법원 정상화 추진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9월21일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국가 의전서열 3위에 오른 김 대법원장은 9월25일부터 사법행정의 총책임자로 대법관 제청권과 전국 법관 3000명의 인사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됐다.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가 출범하면서 사법 개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김 대법원장 앞에 놓인 과제는 적지 않다. 사법 개혁을 바라는 국민적 열망이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와 방지책을 당장 요구받고 있다. 법원행정처 축소와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는 물론 대법관 증원 등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까지도 손댈 것으로 보인다. 김 대법원장이 강도 높은 사법 개혁을 완성하기 위해선 법원 내부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정치권을 설득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9월12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마이너’ 판사에서 사법부 수장으로

 

비(非)대법관 출신, 기수 파괴라는 파격 인사로 눈길을 끈 김명수 대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강도 높은 사법 개혁을 예고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 개혁에 대해 “두렵고 불안한 감이 있지만 쉬운 일이라 생각했으면 아마 출발을 안 했을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청와대도 인선 과정에서 “김 후보자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법부를 구현해 국민에 대한 봉사와 신뢰를 증진할 적임자”라며 강력한 사법 개혁을 요구했다.

 

김 대법원장의 이력만 봐도 사법부의 변화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김 대법원장은 1988년 진보 성향의 법관 모임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했고, 2011년에는 비슷한 성향의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회장을 맡았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최근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의 중심에 있는 모임이다.

 

김 대법원장은 과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 처분 효력정지 신청’ 파기환송심에서 전교조의 손을 들어줬다. 또 상대방이 곧바로 거부의사 표시를 하지 않더라도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려 군내 여성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에선 ‘종교적 병역 거부’에 대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전제로 입법을 통해 종교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군(軍) 동성애 처벌 문제와 관련해선 “성소수자의 인권도 우리 사회가 다 같이 중요한 가치로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때문에 일부 야당에서 “편향된 정치판사”라며 임명동의안 처리에 난색을 표명하기도 했다.

 

김 대법원장은 가장 우선적으로 법원행정처 수술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법원행정처가 승진 코스가 되면서 법원의 관료화 현상을 빚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논란 과정에서 사실상 대법원장의 비서 조직인 법원행정처 개혁 요구가 빗발쳤다. 때문에 법원행정처 규모를 축소하고, 판사를 배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법원 안팎에서 나왔다. 김 대법원장은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서에서 “법원행정처 비대화 문제는 행정처에 근무하는 판사를 몇 명 줄이는지의 문제에 그쳐서는 해결될 수 없다”며 “법원행정처의 권한을 대법관회의·전국법원장회의·전국법관대표회의 등에 적절한 방식으로 이관하거나 실질적으로 의견이 수렴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원 관료화 꺾고 대법원 정상화 추진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는 이미 가시권에 들어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퇴임 직전 상설화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안’까지 만든 상태다. 규칙안에 따르면, 법관대표회의는 법관 위원을 추천하고, 사법정책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단순한 자문기구가 아닌 의결기구로 격상시키기 위해 법원조직법 개정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 법원의 관료화를 해소하기 위해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인사를 이원화해 승진 제도를 없애는 방안도 검토된다.

 

대법원 정상화도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에 사건이 과도하게 몰려 처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다. 김 대법원장은 상고허가제·상고법원 도입 방안을 내놨다. 사건 처리가 심각하고 중요한 사건만 선별해 심리하겠다는 의미다. 이 제도는 1981년 시행됐지만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 때문에 1990년 폐지됐었다. 김 대법원장은 법원조직법 개정을 통해 대법관 수를 현행 14명보다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제자리걸음 중인 사법부 블랙리스트 재조사 등 법관회의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본격 논의할 방침이다. 다만 이 부분에 있어 김 대법원장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조사위 자료를 전부 보지 못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조사위 발표와 (양승태) 대법원장님께서 추가 조사를 거부한 이유,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추가 조사를 요구한 이유, 모두 검토해서 신중하게 (추가 조사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사법부 내 반발도 적지 않아 구체적인 추가 조사 범위와 방법 등을 놓고 김 후보자가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13기나 낮은 김 대법원장이 법원을 제대로 통솔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소수의 사법부 엘리트들에 의해 장악된 사법부 체질을 바꾸는 과정에서 강한 내부 반발도 마주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대법원장 지명 직후 춘천지법을 떠나며 도종환 시인의 ‘누구나 힘들어하는 길이기에 어쩌면 더 의미 있는 길인지도 모르겠다’는 시구를 인용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 6년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사법부를 만드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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