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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B급 예능’이 자랑인 시대

방송사들, 아예 ‘B급 코드’를 프로그램 정체성으로 내세우기도

하재근 문화 평론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30(Sat) 17:00:00 | 14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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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에서 《나 혼자 산다》 등을 연출했던 이지선 PD가 JTBC로 이적해 처음 선보인 예능이 《밤도깨비》다. 이적 후 첫 작품이니만큼 상당히 심혈을 기울여서 기획했을 것이다. JTBC 입장에서도 《밤도깨비》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그동안 JTBC는 《비긴 어게인》이나 《효리네 민박》을 통해 일요예능 전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모두 밤 시간대 작품들이었다. 가장 경쟁이 치열하며 주목도가 높은 일요일 저녁 시간대에선 큰 성과가 없었는데, 《밤도깨비》가 바로 일요일 저녁 6시30분에 새롭게 편성됐다. 그러니 방송사의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이렇게 PD의 개인적인 차원과 방송사 차원에서 모두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프로그램이 내세운 흥행 포인트가 바로 ‘B급 재미’다. 이수근의 말마따나 ‘별 명분 없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을 하기 위해 출연자들이 쓸데없이 밤을 새운다. 그 속에서 자기들끼리 알아서 게임도 하고, 상황극도 벌이는 ‘무근본 무대책’ B급 예능이다. 과거의 예능은 제작진의 사전 기획에 따라 흐름이 철저히 통제됐고 정제된 표현이 나왔지만, 이 프로그램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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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근본 無대책’ B급 예능 전성시대

 

프로그램은 시청률 3% 정도로 ‘중박’ 정도 성적이 나왔다. 여기서 흥행 결과와 상관없이 눈길을 끄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기획인데 ‘B급’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과거엔 이렇게 대놓고 B급을 내세우지 않았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떴을 때, 이를 두고 B급 콘텐츠라고 하자 우리 네티즌은 ‘왜 세계적인 명작을 B급으로 폄하하느냐’며 공분했다. B급이라는 평가가 명예훼손처럼 느껴지던 시절이다. 그러더니 거꾸로 ‘이젠 B급의 시대’라며 B급 찬양론이 득세하기도 했지만, 《젠틀맨》 뮤직비디오의 노골적인 B급 코드엔 다시금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방송사 프로그램이 드러내놓고 ‘우린 B급’이라고 내세우진 않았던 것이다. 2016년에 JTBC 《아는 형님》이 아직 자리를 못 잡고 있던 당시 간담회에서, 여운혁 PD는 프로그램이 B급을 지향하는 것 같다는 평가에 “B급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B급 소리를 항상 들어 그렇지 메이저를 지향하는 사람이다”라며 B급 꼬리표를 부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밤도깨비》처럼 방송사 차원의 기대작마저 B급을 대놓고 내세우는 시대가 됐다.

 

MBC에브리원의 《비디오스타》도 그렇다. 《비디오스타》라는 제목부터가 B급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오리지널의 아우라’가 없기 때문이다. 《라디오스타》의 유사품이라고 아예 제목에 명시해 놓은 셈이다. 네 명의 MC가 진행하는 돌직구 토크쇼라는 구성도 똑같다. 그런데 케이블 채널이기 때문에 지상파의 《라디오스타》보다 더 독하다. 《라디오스타》가 이미 B급 예능이었는데, 《비디오스타》가 더 강한 B급으로 갔다. 방송 1년 만에 MBC에브리원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1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유정 PD는 차별점이 B급 정서라며 “B급 정서를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B급 코드를 프로그램의 정체성으로 내세운 것이다.

 

MBC는 최근 《마이 리틀 텔레비전》 시간대에 《세상의 모든 방송》을 편성 이동했다. 개편 후 첫 방송에서 B급 감성과 ‘병맛’ 코드를 제대로 살렸다는 평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은 원래 일요일 《일밤》의 한 코너였는데, 당시엔 B급 감성을 강하게 살리지 못했다. 《일밤》이 가족예능이기 때문이다. 편성 이동 후 제작진은 “마이너한 감성을 살리겠다”고 했다. B급으로 가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신정환이 7년 만에 복귀했다.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탁재훈과 함께한다. Mnet 《프로젝트 S: 악마의 재능기부》다. 두 사람이 사람들의 신청을 받아 행사를 해내는 내용인데, 처음 내세운 홍보 전단지는 변두리 나이크클럽의 포스터 분위기였다. 이 역시 노골적인 B급 코드다. 두 사람이 앞으로 하게 될 칠순잔치·개업홍보 등의 행사도 B급 행사다. B급 전략에 올인했다고 할 수 있다.

 

B급 영화는 과거 미국에서 동시개봉용 싸구려 오락물을 뜻했다. 이로부터 자극적이고, 품위 없고, 고급스럽지 않고, 일탈적인 것들을 B급 문화라고 통칭하게 됐다. 옛날에 변두리 이발소에 걸려 있던 선정적인 포스터 등이 전형적인 B급 코드다. 요즘은 B급이 꼭 싸구려를 뜻하지만은 않는다. 주성치 영화, 《영웅본색》 같은 홍콩 누아르부터 쿠엔틴 타란티노의 칸영화제 수상작과 마블 히어로물에 이르기까지 B급 코드는 흥행 세계의 주류 위치에 올랐다. 한국을 대표하는 박찬욱 감독도 B급의 계보를 잇는다. 일반적 감성에서 벗어나는 자극적인 설정을 많이 활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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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잖은 기성 메이저 문화에 대한 반발

 

이 땅에서 B급 문화, B급 코드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계기는 《강남스타일》 신드롬이었다. 하지만 그 전부터 엽기(獵奇)를 비롯한 인터넷 유희 코드가 이미 B급 정서였다. 별명이 엽기 가수였던 싸이가 B급의 선도자가 된 건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인터넷 문화는 점잖은 기성 메이저 문화에 대한 반발이었다. 권위주의 시절 우리 지도자들은 자신은 화려한 밤 생활을 즐겨도 국민에겐 도덕을 강요했기 때문에, 우리 제도권 문화는 아주 모범적이었다. 마광수 교수가 거기에 반기를 들었지만 돌아온 건 구속과 해직이었다.

 

인터넷은 기성문화에서 벗어날 기회의 땅이었다. ‘딴지일보’가 나타나 세상에 ‘똥침’을 날리며 B급의 깃발을 세웠다. 젊은 네티즌은 열광했다. 김구라는 욕설을 난사하며 B급의 파도에 동참했다. 제도권은 결국 새로운 흐름에 문을 열어줬다. 김구라가 지상파에 들어가 욕설보다 순화된 독설을 날리는 《라디오스타》를 이끌었다. 점잖은 기성 토크쇼는 떼죽음을 당했다. 사람들은 보다 솔직하고 자극적인 것을 원했고, B급 코드가 거기에 부합했다.

 

지상파는 다양한 세대를 상대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젊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유료 채널의 득세가 B급에 날개를 달아줬다. 《SNL코리아》 등이 섹드립으로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가 하면, 《음악의 신》이 ‘병맛’ 개그의 신기원을 열고, 《아는 형님》이 ‘B급 드립’으로 강호동을 부활시켰다. 점잖은 척하는 태도는 이제 ‘핵노잼’의 ‘올드패션’이 되었다. ‘근본 없다’는 말이 과거엔 비하였지만, 《아는 형님》 이후엔 저마다 ‘무근본’을 표방한다. 자연스럽게 제작진들이 B급을 내세우게 됐다. 시사대담조차도 《나는 꼼수다》 스타일의 자극적인 정치예능으로 바뀌어간다. 다시 옛날의 정제된 형태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B급 코드의 득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문제는 B급 표현 형식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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