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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는 음악까지 갈라놓았다

舊소련 악기 ‘바얀’을 통해 본 냉전과 경계, 그리고 음악의 사회과학

박종현 월드뮤직센터 수석연구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30(Sat) 21:00:00 | 14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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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舊)소련 지역을 여행하다가 ‘바얀(Bayan)’이라는 악기를 사 왔다. 어느 연주회에 갔다가 이 악기가 가진 오묘함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생김새와 원리가 아코디언과 유사해 ‘버튼 아코디언’이라고도 부르지만, 그것은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용어일 뿐이다. 두 악기 사이의 가장 큰 외형적 차이는, 아코디언에 있는 길쭉한 건반 대신 바둑알 모양의 희고 검은 단추들이 바얀의 오른편을 채우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 잘 알려진 ‘반도네온(Bandoneon)’ 역시 우측이 버튼 형태로 되어 있지만, 바얀보다는 훨씬 작고 주법도 다른, 엄연히 다른 악기다. 다만 두 악기가 역사적으로 연관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반도네온도, 바얀의 조상 격으로 알려진 좀 더 단순한 형태의 ‘가르몬(Garmon)’도, 본디는 서유럽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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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얀은 러시아 아닌 소비에트 전통악기”

 

필자에게 중고 바얀을 판 사람은 음악학교에서 바얀을 가르치는 현직 교사였다. “바얀은 정확히 어디 악기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나”라고 물으니 “소비에트 전통악기”라는 답이 돌아왔다. 짐짓 “러시아 악기가 아니고(노어에는 국가·언어로서의 러시아와 민족·문화로서의 러시아를 지칭하는 형용사가 따로 있는데 일부러 후자의 형용사를 썼다) 소비에트 악기야?”라고 물으니 그는 단호히 답했다. “응. 러시아 사람들 것이 아냐. 이건 소비에트 악기야.”

 

앞서 잠시 언급한 가르몬이나 바얀은 러시아 제국 때부터 발전해 분화했고, 동네별·민족별로 변형시킨 스타일의 악기와 주법을 사용하게 됐다. 지금도 그 변이형들을 ‘타타르식 가르몬’이나 ‘모스크바 바얀’으로 칭한다. 그렇게 이 악기들은 드넓은 소비에트 땅 각지에 완전히 녹아들어, 현재까지 민요들의 대표적인 반주 악기로 사용되고, 서구 클래식 교향악단들의 한 파트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왼손으로는 화음을, 오른손으로는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기에 독주 악기로도 쓴다.

 

구소련 땅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전자오르간(신시사이저)이 나오기 전에는 결혼 잔치든 어디든, 바얀 연주자가 와서 돈 받고 연주하고 갔지”라고 회상했다. 지금은 가볍고 음색도 많이 내장된 전자바얀들이 나왔다. 필자가 산 것과 같은 5㎏이 넘는 둔중한 중고 ‘소련제’ 바얀이나 가르몬들은 헐값에 팔리고 있다.

 

한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이렇듯 대중적인 악기를 왜 필자는 지금껏 본 적이 없었을까? 궁금해하며 숙소에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다가 깨달은 바가 있었다. 바얀 선생님의 말에 정답이 숨어 있었다. 그의 말대로 ‘소비에트’ 악기였으니까, 적국 중 하나인 한국 땅에서 발붙일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북한과 옌볜 지역을 포함한 사회주의권, 다시 말해 소련의 친구 나라들 사이에서는 바얀이 대중적인 악기로서 친숙해 있었다. 지금껏 대중 매체 및 오케스트라 무대에서 연주되고 있고, 심지어 북한은 러시아에 바얀을 수출까지 한단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바얀 연주자들이 소수 보이긴 하지만, 소련 붕괴 후 중국 등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냉전이라는 역사는, ‘거시적’인 정치경제적 차원의 경계만을 만들었던 것이 아니라 소리 경관을 포함한 여러 일상 속 감각의 세계들도 경계 지어왔고, 지금까지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강(兩強)의 대치가 대체 ‘어디까지’ 두 진영에 사는 사람들의 귀를 규율했을까? 몸이 있어 상대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악기들과는 달리, 음악에는 몸이 없고 때로 날아다닐 수 있어서, 때로는 그 경계를 유유히 몰래 넘어가기도 한다. 2008년에 개봉해 공식적으로만 1억2000만 명이 관람했다는 러시아 뮤지컬 영화 《힙스터들》(러시아 원제는 스틸랴기, ‘스타일 있는 사람들’ 정도로 직역)이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힙스터》들은 1950~60년대 소련에서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던 적국의 ‘재즈’ 음악을 듣고, 유포하고, 즐기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1955년이 배경이며, 주인공은 당에 대한 충성심이 투철한 모스크바의 대학생 멜스다. 그는 대학 동료들과 함께 가위를 들고 이러한 ‘힙스터’들을 습격해 머리와 옷을 자르고 또 사상비판을 행하는 ‘평범한’ 젊은이였지만, 이러저러한 계기로 재즈의 매력에 차츰차츰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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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그렇지, 두 스텝 앞으로, / 이제 살짝 굽히고 - 그리고 돌아!

부기-우기(재즈의 한 장르명)가 좋아 / 맨날 부기-우기를 추지’

- 영화 속 《힙스터들》 노래 '부기-우기가 좋아' 中에서

영화는 이 역사를 유쾌하면서도 감성적인 방식으로 복권하는데, 서방의 라디오 전파를 몰래 잡아 듣는다든가, 엑스레이 사진을 원형으로 잘라 거기에 녹음을 하는 ‘빽판’ 제작이라든가, 지하 시장에서 트럼펫을 거래한다든가 하는 에피소드들이 섞여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필자가 앞서부터 언급한 냉전과 경계, 그리고 음악에 대한 흥미로운 사회과학의 주제를 다시 한 번 건네준다.

 

다시 바얀 얘기로 돌아가서 얘기를 끝맺어 보자. 필자는 인터넷에 올라 있는 바얀 강좌를 보면서 처음부터 찬찬히 배워보기 시작했는데, 아직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준은 아니지만 매력이 넘치는 악기임에는 틀림없다. 글로 소리를 설명하기 쉽지 않은데, 건반악기와 목관악기의 느낌을 같이 가지고 있다.

 

궁금하신 독자라면 바얀 독주, 특히 바얀 독주로 연주하는 비발디의 ‘사계’를 한 번 검색해 들어보길 권한다. 참고로 필자는 대표적인 초보용 연습곡인 러시아 민요 《카추샤》를 연주하는 정도. ‘열심히 연습해서 언젠가는 포스를 풍기는 연주자가 돼야지’ 하고 이 글을 쓰며 새삼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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