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청 98%는 국정원…여군 성폭력·차별 심각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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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사법기관 인권실태 (3)국정원, 기무사(軍)] 인권위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 통신자료 수집은 인권침해”…군 인권센터 “여군, 차별과 불이익으로 ‘2등 군인’ 전락”

 

[편집자주]

‘인권’은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국정운영의 기본방침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의 인권 경시 태도와 결별해 국가의 인권 경시 및 침해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바로 잡겠다”고 천명했다. 이를 위해 위축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을 다시 제고할 방침이다. 각 국가기관들이 인권위의 권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라는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은 사정·사법기관이다. 시사저널은 검찰·경찰 등에서 현재도 반복되고 있는 인권 침해 실태를 조사했다.

 

2016년 3월30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은 국가정보원(국정원)·검찰·경찰·군(국방부검찰단, 육군수사단) 등 수사기관의 기자·PD 등 언론인에 대한 통신자료 수집 실태를 고발했다. 수사기관들은 2015년 3월부터 1년간 언론인 97명의 통신자료를 194차례 조회한 것으로 드러났다. 직종별로는 기자 84명, PD 4명, 영상편집 2명, 엔지니어 1명, 언론노조 중앙사무처와 언론단체 6명이었고 조회 기관별로는 경찰이 101회, 검찰 52회, 국정원 37회, 군 4건 등이었다. 언론노조는 “이번 조사는 일부 조합원들이 참여한 것으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면서 “수사기관이 조회 목적을 밝히지 않고 있는 데다 통신자료 조회만으로도 제보자·공익신고자 등 어떤 취재진과 접촉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 언론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제출받은 ‘2013년도 이후 통신사실 확인자료 및 기지국 수사 제공 현황’ 자료에 따르면, 수사기관에 통신사실 확인자료가 제공된 전화번호 수는 3347만3759건으로 파악됐다. 경찰이 3223만 3437건으로, 전체의 96.3%를 차지했다. 검찰은 104만9929건, 국정원이 1만1209건을 기록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8월3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등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국정원, 국내 정보 수집 권한 폐지해야”

 

문제는 ‘국정원이 국가안보와 아무런 관련 없이 내국인을 상대로 왜 통신 정보를 수집했는가’라는 점이다. 국정원은 언론인은 물론 세월호 참사 유가족, 시민·노동단체 간부, 인권재단 변호사, 야당 의원은 물론 대학 총학생회장의 통신기록까지 조회했다.

 

통신 감청(통신 제한 조치-통신 내용을 확인) 건수에서는 국정원이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2016년 한국인터넷 투명성 보고서’에 따르면, 2012~15년간 감청 건수는 연평균 483건으로 이중 98%는 국정원에 의해 이뤄졌다.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에 대한 시정요구는 2013년 691건, 2014년 1137건, 2015년 1836건으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보고서는 “2015년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에 대한 인지는 모두 관계기관 요청에 의한 것”이라면서 “원 신고기관인 국정원, 경찰 등이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 심의에 역량을 투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6년 3월 통과된 테러방지법(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에 대한 수정안)으로 인해 국정원의 무분별한 통신 사찰의 위험성은 더욱 증가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공개한 ‘2016년 상반기 통신자료 및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 현황’에 따르면, 2016년 상반기 국가정보원·검찰·경찰 등 수사기관들의 감청 집행건수는 2407건으로, 2015년 하반기 대비 83.2%나 증가했다. 국정원은 테러방지법에 따라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상당한 위험이 예상되거나 대(對)테러 활동에 필요한 경우, 긴박한 상황이라면 법원의 허가 없이도 최소 36시간 긴급 감청이 가능하다. 여기서 긴박한 상황이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음모행위, 직접적인 사망이나 심각한 상해의 위험을 야기할 수 있는 범죄 또는 조직 범죄 등 중대한 범죄의 계획이나 실행 등을 말한다. 시민사회에서는 결국 이 법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운용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제동을 걸었다. 인권위는 “개인정보 수집 목적과 대상자 수가 지나치게 넓고, 사전·사후에 사법적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으며, 자신의 개인정보가 제공됐는지 알 수 있는 통지 절차도 없다”면서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에 따른 정보·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수집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소장 장유식 변호사)는 “국정원이 직무범위를 이탈해 국내정치에 불법적으로 개입하고, 국민의 인권을 침해해 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와 탄핵심판 과정에서 국정원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를 사찰한 정황과 고(故)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를 통해 고위공직자 및 정치인·종교인·민간인 등을 사찰한 정황이 드러났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조사된 것이 없다”면서 “국내보안정보의 수집, 작성 및 배포권한은 정보기관이 정치에 관여하는 직접적인 근거가 돼 왔다. 국정원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 온 국내정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국가정보원법을 개정해 국내보안정보 수집 권한을 폐지하고, 국정원을 해외정보 및 대북정보 전담기구로 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무사, 과도한 보안 검사로 인권위 권고 받아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역시 과도한 보안감사로 문제가 됐다. 기무사는 장교 및 부사관 채용 시 신용조회 서류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인권위는 이 서류 중 학교생활기록부는 과도한 개인정보 제출 요구라고 봤다. 인권위는 “학교생활기록부는 성적·출결·행동특성 등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을 기재하는 것으로, 설사 임용이 확정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타인에게 공개될 경우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큰 개인정보”라면서 “총기 등 무기를 다루는 업무를 수행하는 군 간부 업무의 특성상 높은 수준의 윤리관과 투철한 사명감이 요구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학교생활기록부를 장교 등 선발에 활용하는 것은 본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밖에 기무사는 중앙보안감사를 진행하면서 당사자 동의 없이 개인 휴대전화의 메신저 대화방과 갤러리 저장 사진을 보거나, 배우자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던 신혼여행 사진이나 모유 수유 사진 등을 검사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군인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사생활은 합리적인 법적 근거 없이 제한할 수 없고, 보안서약서를 작성하였다고는 하나 이를 사생활의 영역을 제한 없이 공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근거가 없다”면서 “개인 휴대전화 내에 있는 신혼여행 사진, 배우자의 모유 수유 사진을 비롯해서 지극히 사적인 메신저 대화 내용 등을 검사한 행위는 헌법 제17조에서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서훈 국정원장 © 시사저널 박은숙


 

“여군, 67년 동안 사단장 한번 배출하지 못 해”

 

군 내에서 가장 심각한 인권 침해는 여군이나 여군무원 등을 대상으로 발생하는 성(性) 범죄다. 주광덕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2016년 국감에서 공개한 ‘2012년~16년 6월 간 육해공군 소속의 국방여성을 대상으로 한 군범죄 현황’에 따르면, 5년간 모두 312건의 범죄가 발생했다. 2012년 40건에서 2013년 47건, 2014년 81건, 2015년 99건, 2016년 6월 기준 45건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세를 보였으며, 대부분이 강간·강제추행·화장실 몰래 카메라 설치 등 성범죄였다. 육군 범죄 210건 중 113건(53.8%), 해군 54건 중 37건(68.5%), 공군은 48건 중 24건(50.0%)이 성범죄로 나타났다. 지난 5월에는 해군에서 상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여(女)대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군대 내 여성 군인들에 대한 각종 성폭력 등의 인권침해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직권조사를 결정했다.

 

인권위는 군장학생 선발 대상에서 여학생이 배제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을 권고하기도 했다. 군장학생 제도는 장교나 부사관으로 임용되길 원하는 사람을 군장학생으로 선발해 재학기간 중 장학금을 지급하고, 장학금 수혜기간만큼 더 길게 복무시키는 제도다. 그러나 소수의 특수직을 제외하고는 남학생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2015년 기준 군장학생 3623명 중 여학생은 28명이 불과했다. 인권위는 “군인사법과 군장학생 규정 등에서 여성의 지원을 배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자의적인 기준으로 여학생이 군장학생으로 선발될 수 있는 기회를 사실상 박탈한 것은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

 

지난 9월6일은 67번째 여군창설기념일이었다. 2017년 현재 국군의 여군 비율은 5.6%(약 1만여명)으로, 문재인 정부는 여군 비율을 현재 수준에서 약 15%(약 2만5000명)까지 증가시킬 계획이다. 그러나 2016년 9월을 기준으로 육·해·공·해병대를 모두 합쳐 여군 중 장성은 2명(육군), 군의 핵심계층인 영관장교는 823명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군 인권센터(소장 임태훈)는 “이는 여러 가지 차별 요소로 인해 여군이 핵심 직위에 오르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출산휴가·육아휴직 사용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 여군의 지휘관 보직제한·모호한 여군의 보직 제한 규정·접적지역 보직에 대한 여군 인사배제 등으로 여군이 창설된 지 67년이 지났지만 사단장 한 번 배출하지 못했다. 이것이 차별과 불이익으로 얼룩진 ‘2등 군인’ 여군의 현주소”라면서 “지금 이 시간에도 남군과 마찬가지로 임무 수행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여군들이 더 이상 성별에 따른 인사 불이익 앞에 좌절하여 군문(軍門)을 떠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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