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추석에 집에 가지 않는 사람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02 14:42
  • 호수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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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공동체를 다시 생각한다

 

어쩌다 보니 나는 추석에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안 소속이다. 말하자면 사연이 길지만, 남들 보기엔 매우 운이 좋은 기혼여성이다. 제사도 없고 가족도 단출한 것이 운 좋음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니 기묘한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작 나는 추석에 가야 할 곳이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명절이란 한국 사회가 전통과의 연결고리를 놓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근대화가 진행된 불과 30여 년 동안 서구의 300년에 해당하는 물질적·정신적 변화를 겪었다. 추석과 설날을 민족의 명절로 기리고 사흘씩 연휴를 정해 귀성전쟁을 치르는 것은, 그러한 변화로 놓쳐버렸을지도 모를 전통의 미덕을 붙잡아두고자 하는 이유에서가 아닐까. 내 생각에 그 미덕이란 다름 아닌, 사회의 기초가 되는 가족공동체를 유지하고 확인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다. 사랑으로 이뤄진 공동체는 최후의 사회안전망이니까.

 

그런데, 시인 김수영은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말했지만, 정말로 더러운 전통으로 만들어버리는 일들이 점점 많이 발생한다면 문제다. 명절 전후로 앞다퉈 보도되는 명절증후군이라는 기사를 생각해 보자. 명절증후군은 크게 보아 과도한 (여성의) 노동과 가족 간의 갈등이 주원인이라고 다음백과는 정리한다. ‘어머니’와 ‘며느리’의 노동과 갈등으로 점철된 명절이 증후군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 과도한 노동을 어떻게 줄일까를 궁리하며 처방이 잔뜩 등장한다. 차례음식을 사서 쓰자. 남자들이 ‘돕자’. 시댁과 친정에 번갈아 가자 등등.

 

그러나 이것이 정말 페미니즘적 개입이 필요한 여성 문제일까? 나는 명절증후군의 두 번째 항목, 가족 간의 갈등이라는 문제에 더 주목하고 싶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여성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 문제다. 명절증후군의 배후에 가부장적 가족개념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연구다. 어머니 또한 가부장 권력을 집행하는 집행자일 뿐이다. 이런 위계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시공간이 바로 명절이다.

 

‘명절’은 한국 사회에서 가부장적인 요소를 여전히 느낄 수 있는 시공간이다. © 사진=연합뉴스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 간의 간극

 

올 추석에는, 좀 더 본질적 변화를 고민해 보면 좋겠다. 젊은 세대의 가족관과 전통이 요구하는 가족관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명절에 대한 사회통념은 결혼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부딪친다. 결혼을 가족 간의 결합이라고 보는 관점을 받아들이는 젊은이들조차도, 그 결합이 여성이 남성의 집에 편입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 지 오래다. 가족을 보다 큰 가족공동체의 부분으로 보고 그 안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육체적·감정적 심지어 경제적 노동을 요구하는 부모세대와 달리, 자녀세대는 결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결합으로 보고 평등과 상호존중에 기반해 배려하는 노동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결혼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만만치 않다. 가족을 혈연공동체로 여기는 부모세대는 다양한 유사가족을 형성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대의 가족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일쑤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가족이 아니라 공동체가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청춘시대2》라는 드라마에서처럼, 서로 이해하고 공존할 수만 있다면 가족이 무슨 상관인가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명절이니 집에 와야 한다고 말하는 부모는 얼마나 쓸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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