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소년법, 어느 쪽이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인가
  • 남인숙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02 15:25
  • 호수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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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과 청소년들의 공감 능력을 비교한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연구진들은 실험 대상들에게 혐오스러운 말들을 불러주고 그에 대한 느낌을 말하라고 했다. 이를테면 ‘바퀴벌레 발로 밟기’ ‘유리를 입에 넣고 씹기’ 등의 말을 듣고는 좋거나 싫다는 대답을 선택해 말하게 한 후, 그 순간의 두뇌 활동을 관찰한 것이다.

 

어른이나 10대 청소년이나 모두 부정적인 대답을 할 거라는 건 상식적인 예상이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두뇌의 움직임을 관찰한 데이터에서는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되었다. 혐오스러운 것들을 싫다고 말할 때 어른들은 감정적인 두뇌 영역이 활성화되었고, 청소년들은 이성적인 두뇌 영역이 활성화됐던 것이다. 청소년들은 경험이 적어 혐오스러운 것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학습만 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판단력을 관장하는 전두엽의 성숙은 아직 멀었고, 나쁜 것을 진심으로 나쁘다고 여기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잘못을 어른과 똑같은 기준으로 단죄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8살 초등생 유괴·살해 사건의 10대 공범(왼쪽)에게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검찰은 29일 오후 인천지법 형사15부(허준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범 A(18)양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무기징역과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실제 시신을 훼손한 주범 B양(17)은 20년이 구형됐다. 사진은 4월 13일 영장실질심사에 나온 공범 A양과 지난 3월 30일 유치장으로 이동하는 B양(오른쪽). ©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필자는 이 실험 결과에서 그들 두뇌의 미성숙 문제보다는, 어쨌거나 부정적인 대답을 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청소년들이 진심으로 공감하지는 못하더라도, 자라면서 학습한 좋고 나쁨을 자동적으로 자기 것으로 삼고 있더라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한 사람의 도덕성은 진심보다는 사회적 규제 범위 안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거리에서 담배꽁초가 사라진 시기는 시민의식의 성숙이 아니라 과태료를 부과하기 시작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로 길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일을 몰상식한 것으로 여기는 인식도 따라왔다. 

 

청소년들의 범죄가 다만 어리다는 이유로 손쉽게 용서받는 현행 소년법은 그들의 부족한 공감 능력과 미숙함이 나쁜 행위에 더 쉽게 접근하도록 부채질하고 있다. 과거의 청소년들은 자신이 저지른 일로 경찰을 만나게 되는 일 자체만으로도 공포를 느꼈지만, 초연결 시대를 사는 요즘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나이가 부여하는 일종의 치외법권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법이 용서하는 잘못의 범위를 숙지하고 부도덕을 공유하는 연대를 쉽게 형성한다.

 

지난 9월20일,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의 주범과 공범이 각각 20년형, 무기징역으로 법적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중형을 선고받은 것은 소년법 손질의 필요성을 느끼는 국민들의 법 감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원이 보여준 성의는 불과 한 살의 나이 차이로 공범이 주범보다 중형을 받게 된 결과를 통해 소년법의 한계를 더 보여준 셈이 되고 말았다. 때문에 현행 소년법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오히려 선의의 또 다른 약자들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저간의 인식이 극단적인 사례를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아동과 청소년의 범죄를 성인과 동일하게 처벌할 수는 없으나, 적용 연령을 낮추고 강력범죄에 한해 차등적으로 예외를 둔다거나 교화 중심의 처벌을 강화하는 등 해외 사례들을 참고하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미숙해서 기회를 다시 얻어야 할 잘못의 수준이라는 것은 탐나는 물건에 손을 댄다거나 친구와의 다툼에서 욱해서 주먹질을 한 번 하는 것 정도지, 살인·강간·폭행치사가 아니다. 반성하기도 전에 미리 용서부터 하는 법이 정말로 당사자의 미래와 그를 둘러싼 사회를 보호하는 것인지 재차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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