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병 엘리트 장교’는 왜 배신자로 찍혔나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17 15:26
  • 호수 1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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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지휘관 비리 공익제보한 황인걸 중령…연거푸 진급심사에서 탈락해 내년 11월 전역

 

육군사관학교 헌병대장인 황인걸 중령(51·육사 45기)은 군내의 적폐에 도전하다 불이익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상관의 비리를 투서 형식으로 제보했다가 ‘배신자’로 몰려 연거푸 진급에서 누락됐다. 육사 입교부터 동기생 중 선두에서 질주했지만, 한순간에 뒷전으로 밀려났다. 눈앞의 비단길이 가시밭길로 변했다. 그 뒤부터 그의 군 생활은 외롭고 고독했다. 내년에는 계급 정년에 걸려 군을 떠나야만 한다.

 

1985년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 그는 헌병 병과를 선택했다. 평소 강직한 성격으로 볼 때 보병 지휘관보다는 헌병이 더 적성에 맞을 듯했다. 1989년 헌병 소위로 임관하며 본격적인 군인의 길을 걷는다. 그는 연이어 헌병 병과 내 선호 보직에 발탁됐다.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 소대장, 대통령경호실 33헌병대 제대장, 육군본부 참모총장 경호대장,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과장·범죄정보과장 등을 지냈다. 군내 헌병 엘리트 코스를 두루 거친 것이다.

 

교육 성적도 뛰어났다. 초급장교 시절 헌병OBC(초등군사반)와 헌병OAC(고등군사반)에서는 수석을 차지했다. 소령급 장교가 입교하는 육군 최고의 교육기관인 육군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했다.

 

© 시사저널 포토

 

수방사 헌병단장의 조직적 비리

 

황 중령이 국방부 조사본부에 근무할 때였다. 2008년 말 평소 친하게 지내던 후배 장교 박남일 소령(45·학군 33기)을 만났는데, 그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박 소령은 당시 수방사 헌병단 인사과장을 맡고 있었다. 그의 말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지휘관(헌병단장)인 이아무개 대령(육사 38기)이 자신을 비롯한 부하 장교들에게 지시해 공금을 횡령·유용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상급 지휘관 로비에도 횡령·유용한 돈이 사용됐다고 박 소령은 전했다. 이 대령의 공금 빼돌리기는 헌병단장에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헌병 예산 가운데 현금화가 가능한 것은 모두 동원했다. 실무자들에게 구체적인 항목들을 지정하고 방법과 금액까지 알려줬다. 차후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횡령금은 반드시 현금으로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횡령 항목은 연말 병사 격려금 횡령, 비품 구매비 가짜 영수증 처리, 매월 수사비 유용, 매월 헌병 오토바이 정비비 등이다. 헌병 수사관들의 출장여비 등 ‘사건처리비’도 수사관 개인계좌로 입금한 후 돌려받거나 현금으로 지급한 것처럼 속였다. 이런 방식으로 2007~08년 빼돌린 액수가 확인된 것만 4700여만원에 달했다.

 

박 소령은 지휘관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따랐지만 불법적인 일에 동조했다는 것 때문에 정신적 고통은 물론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황 중령은 군내 범죄 예방과 수사를 하는 헌병 지휘관의 불법 행위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그는 박 소령이 말한 내용을 수첩에 자세히 적었다. 그런 다음 추가로 전화통화를 해서 ‘비리 문건’으로 만들었다.

 

황 중령은 누군가는 불법행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기가 총대를 메겠다고 결심했다. 후배 장교인 박 소령은 끝까지 보호해 주기로 했다. 황 중령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나를 믿고 있어라. 너는 부딪치지 말고 담담하게 본연의 임무수행에 전념하라”고 말했다.

 

황 중령 역시 어디에다 이 엄청난 사실을 하소연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2010년 비리 당사자인 이 대령이 육군 중앙수사단장(준장)에 유력하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그 당시 중수단장은 육군 헌병 병과의 최고 자리였다. 황 중령은 이 대령이 병과장에 오르는 것은 헌병 병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는 작심하고 그동안 조사해서 만든 이 대령의 비리 문건을 꺼냈다. 그런 다음 2010년 11월 중순 육군 중앙수사단장이던 승장래 준장(육사 37기)에게 익명의 우편으로 보냈다. 병과장에게 비위사실을 제출하면 진급을 막고 병과 내부에서 전역 조치로 해결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황 중령은 비위사실에 대한 합당한 조치가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 대령을 향해야 할 중수단의 칼날은 제보자인 황 중령을 정조준했다.

 

 

김관진 장관에게도 제보했으나 무시

 

이 대령보다 1년 선배로서 수방사 헌병단장, 육본 헌병운영처장 직책 전임자였던 승 단장은 제보 내용의 확인이나 검증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는 ‘군 기강 문란 및 이적행위’로 단정하고 제보자 색출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황 중령의 투서에 대해서는 이 대령의 진급을 막기 위한 경쟁자의 음해로 치부했다. 심지어 제보자 색출을 위한 TF(태스크포스)팀까지 만들었다.

 

약 한 달 뒤인 11월 중순 이 대령은 별을 달고 준장으로 진급해 중앙수사단장에 올랐다. 승 단장은 소장으로 진급해 국방부 조사본부장이 됐다. 처벌 대상인 비리 당사자가 육군 수사의 최고 수장에 오른 것이다.

 

황 중령은 다시 한 번 이를 악물었다. 이번에는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게 편지를 써서 같은 내용을 제보했다. 1차 제보 편지를 받은 승장래 단장이 음해성 투서로 몰아세우고 있다는 내용도 추가했다. 김 장관은 황 중령의 결혼식 주례를 섰던 인연이 있었다. 도일규 참모총장 때 황 중령이 경호대장(대위)을 맡았었다. 도 총장이 다른 일정 때문에 결혼식 주례는 육본 비서실장이던 김관진 준장이 섰다.

 

황 중령은 김 장관을 굳게 믿었다. 이번에는 바로잡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 말았다. 김 장관도 제보 내용보다는 ‘무기명 음해성 투서’로 보고 제보자를 발본색원하라고 지시했다. 조사본부는 제보자 색출에 급급해 전방위 수사에 들어갔다. 결국 황 중령의 실체가 드러났다.

 

황 중령은 당당하게 이 준장의 대령 시절 비위 문건을 만든 경위를 말했다. 국방부는 제보자가 드러나고 최초 제보자가 수방사 헌병단 박 소령으로 밝혀지자 무마 수순에 들어갔다. 이 준장이 전역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했던 것이다. 실제 이 준장은 2011년 1월말 전역을 신청하고 군을 떠났다.

 

육군은 황 중령에게 당근과 채찍을 내밀었다. 한번은 육군 중앙수사단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올해 진급시키지 않고 징계 회부할 거다. 명예롭게 전역해 1억원의 명예퇴직금을 챙겨라. 3급 군무원 자리를 주겠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황 중령은 그 자리에서 “진급 안 시켜도 53세까지 열심히 군 생활을 하겠다”며 단번에 거절했다.

 

영원한 비밀은 없었다. 4월5일 YTN을 시작으로 ‘투서 내용’이 언론에 연이어 보도되기 시작했다. 문제가 커지자 김관진 장관이 군 검찰에 투서 내용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군 검찰을 통해 황 중령의 투서 내용은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2011년 6월 국방부 검찰단이 발표한 ‘헌병 장성 횡령 의혹 사건 수사 결과’를 보면 “그동안 의혹이 제기된 횡령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으나 대부분 사실임을 확인했다”고 돼 있다. 승 소장의 부실 수사에 대해서는 징계를 의뢰했다. 조사에 따르면 “수사 책임자 승 소장은 이 전 준장의 범죄 혐의를 인지하고도 제대로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장관에게 범죄 혐의 대상자를 의원전역 조치로 사건 조기 종결을 유도하는 부적절한 건의를 했다”며 수사 책임자인 승 소장을 법령준수의무 위반으로 징계하라고 건의했다.

 

하지만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은 흐지부지됐다. 군 검찰은 “군 지휘관의 확인된 예산 횡령 사실에 대해 민간 검찰과 공조수사 후 사법처리로 일벌백계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때뿐이었다. 군 검찰과 민간 검찰로 이원화되는 등의 한계로 인해 이 전 준장은 증거불충분으로 내사 종결됐다. 승 조사본부장도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고 2012년 말 임기를 마친 후 전역했다.

 

군 검찰은 대령 진급심사를 한 달도 남기지 않은 8월 중순 황 중령이 지휘계통과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익명의 투서로 군 기강을 문란케 했다며 ‘군인복무규율 위반’으로 징계를 의뢰했다. 황 중령은 감봉 3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았다.

 

 

포상 대신 징계와 불이익으로 보복

 

그는 명예회복을 위해 항고했고, 국방부 항고심사위원회는 2011년 10월19일 견책으로 징계를 완화했다. 황 중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징계처분취소 소송에 나섰다. 2013년 5월9일 대전고등법원은 “위법한 처분”이라며 황 중령의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음해성 투서자’로 몰렸던 황 중령의 명예는 어느 정도 회복됐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그는 계속 진급에서 누락됐다. 2011년 8월 진급심사 직전 감봉처분을 받아 9월말 심사에서 빠졌다. 국방부 징계에 행정소송으로 맞서면서 3년 동안 징계가 유효한 상태로 진급심사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2013년 5월 항소심에서 패소한 육본 법무실이 상고하는 바람에 징계가 유효한 상태에서 진급심사에서 또 빠졌다. 2014년 9월말 대법원 상고심 승소로 행정소송이 종료됐고, 징계무효명령도 받았으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 뒤에도 진급에서 연거푸 탈락했다. 급기야 지난 9월 진급심사에서 또다시 탈락해 내년 11월에는 군복을 벗어야 할 처지다.

 

정작 비리 대상자는 명예롭게 전역한 후 연금 등을 받으며 편안히 지내고 있다. 그런데 공익제보자인 황 중령은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헌병 엘리트 장교로서 정의로운 길을 택한 군인에게 군은 ‘징계’와 ‘불이익’으로 마치 범죄자 취급을 했다. 2013년 12월 한국투명성기구는 제13회 투명사회상 수상자로 황인걸 중령을 선정했다. 그는 수상소감을 통해 “저를 이렇게 힘들게 했던 것은 소수 악인들의 악행보다 다수 선인들의 침묵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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